밑줄긋는시간
VIP 사업은 토건 사업일 수도, 정책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세종시 건설, MB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인 토건 VIP 사업이다. 둘 다 대선 공약에서 비롯됐다. 충남 연기군 일대에 인구 50만 명의 행정수도를 만드는 세종시 건설 계획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6년 첫 삽을 떴다. 4대강 사업은 MB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11월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끝났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VIP 사업에 ‘최소 20조 원 든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 세종시 건설에 투입된 공공자금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예산 포함 22조5000억 원, 4대강 사업에 쓴 사업비가 약 22조 원이었다. 한 예산 당국자는 “민의로 뽑힌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반영해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할 때 그 정도 비용이 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직전 문재인 정부도 정책 분야에서 VIP 사업이 있는 것 같다. 5년 내내 추진한 소득주도성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2개월 만인 2017년 7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1번 과제로 소득주도성장을 무대 위에 올렸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 실업급여 증액, 건강보험 보장 비율 70%를 제시했다. 지금 되짚어 보면 문재인 정부의 이후 5년은 그때 내건 구호를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이었다.
- [광화문에서/박재명]윤석열표 대표 정책, 여전히 안 보인다 中 발췌 / 동아일보
“원숭이가 서로 짝지어 새끼를 낳고/ 그렇게 자손이 늘자 산은 비좁아졌지요./ 산에는 초목이 무성했고/ 뿌리와 열매 풍성했지만/…/ 뭇 원숭이 죄다 배부르고 살찌자/ 산은 이내 민둥산이 됩디다./ 서로 밀치고 다투어야 한번 배부를 수 있으니/ 거둬들여 저장할 일, 도모할 겨를이나 있었겠습니까.” <민둥산(禿山)>
한번은 왕안석이 임지로 가는 길에 바다를 건너게 됐다. 그런데 멀리 한 섬의 민둥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른 섬의 산은 우거졌는데 그 산만 민둥산이었던지라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그 사정을 말해주었다. 이 시에서 산과 원숭이는 각각 중국과 통치계층을 가리킨다. 통치계층이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채 당장의 욕망에 매몰되어 산의 자원을 마구 착취했고, 그 결과 다른 산과 달리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곧 중국이 몰지각한 통치계층 탓에 황폐해졌다는 얘기다.
- [김월회의 행로난] 원숭이와 민둥산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