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생 Aug 04. 2020

저는 아싸가 아니라 내향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이렇게 태어났으니 이렇게 살다 가려고요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성적임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가끔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크게 문제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애초에 작은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나보고 어쩌란 것인가.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 더 이상 아래층에 같이 놀던 브릿지 염색을 한 오빠는 없고 술주정뱅이 할아버지만 있었다. 밤마다 술을 마시고 어찌나 욕을 퍼부어대던지, 한 방에서 자던 온 식구들은 밤새 뒤척였고, 할아버지는 가끔 하모니카 자장가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창원의 2층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전에 살던 집에는 피아노도 있고, 집 앞 놀이터에는 지압판도 있고, 슈퍼에는 달고나 기계도 있었는데.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감은 할아버지의 씨발과 함께 씨가 말랐다.


처음 간 유치원에서,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새로 산 도시락 통을 꺼내면 사람들이 나에게 새 도시락통 샀냐고 물을 까 봐, 책상이 아닌 무릎 위에 올려두고 먹었고, 새 실내화를 꺼내면 선생님이 새 실내화 샀냐고 물을 까 봐, 일주일 동안 가방에 넣어두고 맨발로 다녔다. 집으로 가는 내내, 유치원 차 안에서 ‘말 걸지 마라’하고 혼자 주문을 걸었고, 수업에서 질문하기도 전에 대뜸 울음부터 나왔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 아주 좁은 새장에서 이제 막 나온 아기새가 방 안을 나는 중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상태가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기 시작하면 정신이 줄행랑을 쳤다. 작은 발표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고, 몸이 벌벌 떨렸다. 그래도 전보다는 나았다. 새 필통을 가방에 처박아놓고 헌 연필만 달랑 들고 다니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 해에는, 겨드랑이에 난 종기의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도 생겼고, 내 귓가에 ㅇㅇ이랑 놀지 말라고 넌지시 알려주던 친구도 생겼다. 혼자 방 안을 날던 새가 친구를 만나니, 너무 기뻐 거기에 쩔쩔 매기 시작했다. 500원이 귀하던 시절, 나는 4000원짜리 슈가 슈가 룬 수첩을 친구 생일 선물로 바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나는 ‘쟤네들이랑 같은 바람막이 입어서 찍히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그 ‘잘 나감’에 대해 동경했었다. 반 친구들을 휘어잡고, 복도에 무더기로 모여 낄낄대는 일진들이 부러웠다. 친구의 친구를 거쳐 우연히 그 아이들과 도서관을 간 적이 있었다. 이유 없이 앞에 앉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고, 주변에 방해가 될 만큼의 소음이 생겼다. 우리 학교 일진이 그러더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지역 일짱 먹은 사람이야. 내가.” 난 그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그래도 난 우리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일진과 나는 내 마음속에서 ‘우리’가 되어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그들과 함께 도서관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일 학교에 가면 나에게 인사를 건네줄까 하는 부푼 기대감은 정확히 다음날 오전까지만 유효했다. 그들에게 난 ‘우리’가 아니었다. 복도에 무더기로 모여있는 일진들을 지나 조용히 내 책상에 앉아, 도서관에서 한 장도 넘기지 않았던 책을 꺼냈다. 그래도 나 정도면 ‘잘 나가는 부류’에 속하지 않냐며 연필을 꺼내 들었다.


어렵고, 복잡했던 시간들이었다. 수없이 고민하고, 한없이 진지했던 나날들이었다. 민감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 남들보다 세상을 믿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세상에 속하기 위해 부지런히 친구들을 따랐다. 그 시간의 나를, 지금의 나만큼이나 존중한다. 시간 지나면 다 쓸모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시간이 안 지났는데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 각자의 고달프고, 안쓰러운 인생을 살아간다. 나는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기꺼이 존중하려 한다.


그렇게 친구를 찾았던 나는 지금 친구가 별로 없다. 관계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관계에서의 상처가 두려운 것은 아니다. 세상에 완전한 진실은 없고, 언제나 균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인생은 원래 고되고, 행복은 이따금씩 찾아온다. 나는 그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견디는 것이 버겁다. 자주 침식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나에게 사람들은 실망하고, 지쳐 떠나간다. 나의 잘못임을 알지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해를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성적임을 지향한다. 가끔씩은 완전한 혼자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고, 눈물이 난다. 그럴 때는 산을 올라 주위를 둘러본다. 나는 그저 이 넓은 세상의 하나 일 뿐, 그 어디에도 완전한 혼자도 완전한 공생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저 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만나게 되는, 또 사라지는 행복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관계에 대해 많이 돌아보았다.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지기 직전이길래, 사람 없는 곳에서 자주 산책을 했다.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얼까. 불어나는 술값과 술배, 피로와 숙취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물론 돈을 준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긴 한다. sns에 자랑하고 싶은 친구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너무 연약해서 다른 사람들의 좋아요로 멱살 잡고 끌어야 하는 관계는 에너지 소비가 너무 컸다. 타인의 sns에 올라온 완벽한 몸매를 뽐내는 여행사진을 보면서 배 아파할 시간에, 귀여운 고양이 영상 보면서 헤실헤실거리는 게 더 행복했다. 남들이 뭘 하든,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었고, 마찬가지로, 내가 뭘 하든, 남하고는 전혀 상관없었다.


너무 좁은 방 안에만 갇혀 살았다. 그것마저도 미지의 공간이었기에 겁이 났고, 어느 정도 알았다 싶을 때는 낙오될까 불안했다. 작은 것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배를 멀리 타고 나가면 낭떠러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구는 둥글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고, 사람은 많았고, 할 일도 많았다. 세상이 무섭고,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렵고, 관계를 소화해낼 수 없을 때, 눈을 감고 나에게 말한다. 세상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살아만 있는다면, 내 세상이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또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이렇게 공들여서 적어놓으면 뭐해 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나는 내가 또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불쾌한 농담에도 어설프게 웃고,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는 말을 슬프게 내뱉을 것이란 걸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래야만 한다’는 건 원래 도움이 안 되니까. 뭐든 균형이 중요하다. 많이 먹은 다음날 소식하는 것처럼, 눈칫밥을 많이 먹었다 싶을 때는 평소보다 더 오래 잔다. 배가 꺼질 때까지 누워있다가, 다시 잘 살아가면 된다고. 나는 오늘도 나를 다독이며 살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난스러운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