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hena Swan: 모든 아테네들을 위하여

과학계에서의 성 평등은 어디까지 이루어졌을까

by 채유나

2018년 10월, 케임브리지에서의 삶을 갓 시작한 신입생이었던 나는 학과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Athena Swan Award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보낸 4년간의 학·석사 생활 동안 조금 더 전문적인 이력을 가진 여성 과학자, 여성 화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 Athena Swan이라는 제도와 그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Athena Swan이란 HE sector (Higher eduation; 고등교육 부문)에서의 성 평등을 위해 2005년에 도입된 평가적 지표인데, STEM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and Medicine; 영미권에서 흔히 '이공계'를 언급할 때 사용하는 단어) 분야 내에서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격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조금 더 확장된 의미로써 여성이 사회의 진출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애물뿐만 아니라 기회적인 부분에서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우리 학과 같은 경우에는 1년에 세 번, 각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석사과정의 학년 대표가 학과 커리큘럼을 담당하시는 교수님들이 모이신 위원회 (teaching committee)와 미팅을 통해 교과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여기에는 각 학년의 대표가 여성 1명과 남성 1명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 위원회 내에서 목소리를 내시는 여교수님들도 계셨고, 육아 휴직을 끝내고 바로 복직하신 여교수님도 계셨다. 또한, 영국 같은 경우에는 세계의 다양한 날들을 크게 기념하는 편인데,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학과 내의 여성 과학자들을 위한 모임의 기회도 마련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노력들이 사소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소위 physical science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는 이 사소함조차 매우 감사했다.



2022년 2월, 우리 칼리지의 과학 동아리 (Pembroke College Science Society)에서 물리학자이자 처칠 칼리지 (Churchill College) 최초의 여성 마스터 (Master) 이신 Professor Dame Athene Donald 님을 초청해 진행되는 강의에 참석했다. 이 강의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내용은 고등교육 부문에서 보이는 성비의 불균형은 사회경제적, 문화적, 또 환경적 문제가 융합되어 사회에 피력하는 영향력의 산물이라는 내용과 그 예시였다. 왜 수학을 많이 사용하는 이공계 분야 (화학, 물리, 수학, 공학)에서는 수학을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하는 분야 (심리학, 생물)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낮은가. 교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여자 아이들에게 바비인형을 사주고, 남자아이들에게는 레고 블록을 사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인식이라고 설명하시며 이러한 사회적 ‘여성성’과 ‘남성성’의 영역을 나누는 것이 고등교육 분야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성비 불균형이라는 '현상'을 초래하는 미디어 노출, 윗 세대로부터 대물림되는 사회적인 인식, 문화적 요소 등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복합적인 요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KakaoTalk_20221027_165359115.jpg Professor Dame Athene Donald 교수님의 강연 중 발췌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영국의 통계자료를 보며 곰곰이 되짚어보니 이 현상이 참 기묘하게 느껴졌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심화 수학 과정을 이수하는 여학생의 수는 남학생의 수에 뒤처지지 않지만, 대학 진학에서는 수학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이공계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의 수가 현저히 적어지니까 말이다. 이는 비단 영국과 유럽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영국 교육과정을 따르는 한국의 국제학교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내가 경험한 것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학 심화과정 (IB Maths HL)을 이수하는 학생의 성비가 거의 1:1이었고, 여학생들의 성적이 남학생들에게 절대 뒤처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물리, 수학, 과학, 공학 분야의 전공을 선택하는 여학생의 수는 남학생의 수보다 현저히 적었다.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절부터 촘촘히 우리를 옭아매어온 수많은 관념과 통제들을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과연 우리의 의지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정 성별이기에 강제로 포기당한 권리의 격차는 교수님이 내 나이였던 시절에 비해 확실히 많이 줄어들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격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교수님들 중에서는 여성이 수학을 하는 것이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1 저자인 논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한 남성 과학자보다 능력을 폄하당하고 추천서를 좋지 않게 써주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고 Donald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성비의 불균형은 여성을 수적으로 소수집단으로 만들고, 소수집단에 속하게 됨으로써 불편함과 부당함을 이야기할 힘이 약해질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영국에서, 특히 백인으로 가득 들어차 있던 케임브리지에서 동양인, 유색인종 여성이라는 소수집단으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불편함과 억울함이었을 것이다. 특히 코로나 기간 동안 유학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정책들에 대한 반발의 의견을 피력해도, 학교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내가 수도 없이 겪었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토로해도,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골칫덩어리에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영국 특유의 굳건한 고지식함을 교수님도 계셨다.



Athena Swan이라는 제도는 절대 만능이 아니다. 내가 느끼기엔 이 제도는 그저 문제 인식의 시발점이자 개선을 위한 주축의 역할 정도를 할 뿐이다. 이렇게 다른 문화권의 제도를 경험하면서,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우리의 사회는 이 문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아니, 이 현상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을까?

이전 03화대학원생은 노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