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남짓 우리 집에 머물렀던 강아지와 일 년 만에 재회하며 느낀 사랑
몽글이가 우리 집에 잠시 머물렀던 게 벌써 거의 일 년 전이다. '임시보호'라는 표현을 썼지만, 일반적으로 이 표현을 쓸 때처럼 입양자를 찾기 전까지 돌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몽글이에게는 이미 견주분이 있었고 그분의 이사 일정이 어그러져 잠깐 생활할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동안 같이 살았고 몽글이는 곧 집으로 돌아갔다. 매주 면회를 오는 주인을 온몸으로 반갑게 맞이하고 그분이 돌아가면 현관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몽글이 뒷모습을 보며, 난 몽글이가 날 주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데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고. (몽글이 입장에서 혼란스러울 테니까.) 몽글이가 우리 집을 떠날 때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쏙 빼기는 했지만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몽글이를 다시 볼 기회를 몇 번 놓치면서 몽글이와 동거했던 기억도 옅어졌다. 동거인이 코로나에 걸려서, 내가 북페어에 나가서 엇갈리고... 아주 잠깐, 몽글이 주인분이 우리 동네에 놀러 오셨을 때 인사를 나눴지만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근 일 년 가까이 몽글이를 인스타그램 사진 속 디지털 강아지로만 소식을 접하다가 오늘 제대로 시간을 내어 오랜만에 만났는데, 세상에. 몽글이가 우리를 알아봤다!
야자수 모양 꼬리를 프로펠러마냥 힘차게 돌리며 나와 나의 동거인을 반기던 몽글이. 우리의 손과 몸통 냄새를 열심히 맡더니 머리를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위 사진상으로는 내가 몽글이 머리통을 잡고 당기는 것 같아 보이는데 절대 아니다. 전 동물을 해치지 않아요) 고양이 네 마리에게 면박 듣던 게 일상이었던 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강아지의 사랑에 흠뻑 취했다. "몽글아, 언니 오빠 알아봐 줘서 고마워.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내내 쓰다듬고, 간식도 주고, 잠깐 산책도 시키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인사가 튀어나왔다. "우리 몽글이 사랑해, 또 만나자."
사랑한다니! 우리 집 고양이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질투심에 눈을 멀어 나의 오장육부를 찢어버릴 거라고 확신한다.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그래주길 바란다. 얘들아 나... 사랑하지?) 물론 고양이들이나 나의 반려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 무게로 고백한 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피자를 사랑한다거나 느지막이 일어날 수 있는 주말 아침을 사랑한다는 감정과는 또 달랐다. 지나가는 강아지가 아무리 걸어 다니는 솜사탕같이 귀여워서 무릎을 꿇고 싶어져도 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몽글이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 마음은 뭘까.
나 자신에게 놀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들여 곰곰이 고민한 뒤 난 마음대로 이런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몽글이와 나는 아주 먼 친척, 그러니까 갓난아기여서 일가친척의 이쁨을 온몸으로 받던 시절에 몇 번의 강렬한 명절을 함께 보내고 자란 뒤에는 왕래가 끊긴, 고모할머니와 조카손녀 같은 관계인 거다. 실제로 지난달에 결혼식을 올렸을 때 거의 30년 만에 고모할머니를 만났었다. 죄송하게도 난 내게 고모할머니가 있는 줄도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반가움에 가득 찬 얼굴로 나의 손을 부여잡고 와다다다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내가 너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야, 품 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았다. 이불 위에다가 올려놓고 네 아빠가 통통 튕기면 아주 까무러치게 좋아했는데, 기억 안 나나? 안 나겠지, 갓난쟁이였는데... 하이고, 그때 보고 이제 이렇게 다 커서 결혼할 때 보네."
이상하게도 난 믿을 수 있었다. 30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아기에게 쏟았던 사랑이 그대로 보존된 채 세월을 건너서 전해질 수 있다는 걸. 그건 매일 살을 비비며 때로는 물고 뜯고 싸우기도 하는 직계가족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감정과는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덜 가치 있거나 덜 진실된 사랑은 아니었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 존재에 대해 자연히 갖게 되는 마음, 나는 찍힌 기억이 없는 가족사진 속 친척들의 만개한 잇몸이 증명하는 애정의 존재. 그런데 몽글이는 날 기억해주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오늘의 난 기억력이 아주 뛰어난 조카손녀의 고모할머니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느낀 거였다. 비록 혈연 관계도 아니고 종도 다르고 몽글이나 몽글이 주인분의 허락을 받은 적도 없지만 말이다.
결혼을 하며 나의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회사에서 맺던 의무적 인간관계를 벗어나 마음의 결이 맞는 동료를 사귀며 세상 도처에 서린 사랑을 찾아내는 눈이 생겼다.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좋아서 좋아하는 마음은 마치 내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하기에 충분한 가족의 사랑과 닮아있었다. 내가 독점하거나 언제나 중심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느슨하지만, 분명하고 힘찬 응원을 주고받는 유대 관계. 그 가운데에서 예기치 못하게 솟아나거나 모종의 이유로 잊히는 인연들, 거기에 진한 잔상처럼 남는 애정의 기억. 몽글이도 나의 인연 중 하나다. 심지어 오직 동물만이 줄 수 있는 무조건적 사랑을 듬뿍 주었던 인연. 그러니까 몽글아, 앞으로 너를 나의 아주 먼 가족처럼 사랑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