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이 그러더군요

2023.3.14



오랜만에 올레 여행을 떠났다. 보통 두 달에 한 번은 꼭 갔는데 이번에는 5개월 만에 길을 나섰다. 겨울이라서, 비행기 값이 비싸서, 아이들이 방학이라서 등등 여러 핑계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뜸했다. 올레가 만약 사람이라면, 아니 애인이라면 '이제 사랑이 식었냐고, 마음이 변한 거냐고, 너무 뜸했다고, 보고 싶어서 마음이 문드러졌다고' 하소연하지 않을까? 웃긴 상상을 해봤다. 오랜만에 다시 제주의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늦게 와서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새벽바람이 아직 쌀랑했다. 3월의 육지는 봄을 기다리는 이들을 애태우기로 작정한 듯 꽃샘추위가 자주 다녀갔다. 추웠다가 안 추웠다가 하는 며칠 동안 두꺼운 바람막이를 챙겨야 할지, 경량 패딩 점퍼를 입어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그런데 공항에 내리자 고민이 무안하게 제주는 벌써 봄이었다. 바람은 살짝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공항 게이트 문이 열리면서 훅 들어오는 바람이 말은 건다. '왜 이제 왔어' 내가 지금 여기 제주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람이다. 어디에서도 맡아볼 수 없는 바람의 냄새, 제주 바람의 냄새.

'너무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



3월의 제주는 노랗다 못해 아주아주아주 샛노랗다. 달리는 길가 옆은 온통 유채꽃 세상이다. 신호를 받아 잠시 차가 서고 눈을 돌리면 멀리든 가까이든 유채가 보인다. 하늘에서 보면 섬 전체가 노랑색일 것 같다.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 팡팡 터지듯이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빈 땅만 있으면 씨를 날려 세력을 확장하고 사람들을 꾀고 마는 유채꽃. 유채의 노랑색은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그래도 사진에 담는 것보다 눈에 담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제주가 그리워질 어느 날 눈을 감고 유채꽃을 떠올리기 위해서이다. 삼삼하니 눈앞에 가득 채워지는 유채의 노랑이 내년 봄에도 분명 나를 부추길 거다. 빨리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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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쫙 펼치듯이 꽃들이 있는 힘껏 탐스럽게 피었다. 밭을 가득 채운 모습은 '흐드러지게 피었다'라는 말 말고는 다른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자잘한 꽃들이 한데 모여 참 소담하다. 바람이 잔잔하면 노란 얼굴들도 잔잔해진다. 바람이 불면 여기는 벌써 봄이라고 재잘댄다. 이번 올레는 유채꽃 때문에 더 기분이 산뜻해진다. 노랑색이 주는 신선한 느낌 덕분이다. 우리가 걷기로 한 1코스는 시흥리에서 출발해서 종달리를 거쳐 성산일출봉을 지나 광치기 해변에서 끝난다. 해가 일찍 뜨는 곳이라 그럴까. 이맘때 제주는 온통 유채 세상이지만 유독 동쪽은 더 일찍부터 피어나고, 더 많이 핀다.




한참을 걷다가 돌담 밖으로 한줄기의 흔들리는 노란 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유채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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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어쩌다가 돌담 밖에 혼자 피어있는 운명이 되었을까?'


'무리 틈에 있지 않아 외롭지는 않을까? '


'바람이 불 때 옆에 친구가 없어서 많이 흔들리겠다. 부러지면 어떡하지?'


원하지도 않는 걱정을 사서 하고 있다.




유채꽃은 혼자 피어난 한 송이 보다 꽃밭에 함께 있을 때 더 환하다. 사람도 사람들 틈에 있을 때 더 빛날 때가 있다. 한데 어울릴 때에 얻는 행복이 있다. 흔들리는 바람에 조금 힘들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바람이 지나간 후에 나는 또 바로 설 수 있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도 꼭 필요하다. 사람들은 외로운 감정이 싫어서 고독을 멀리하곤 한다. 고독 속에서 생각을 하고, 글감을 찾고, 가끔 삶의 이치를 배우기도 한다. 언제 혼자이고 싶은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둘 중 무엇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 둘 다 좋으니까 둘 다 하고 싶다. 나는 한 번 뿌리내리면 그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유채꽃이 아니니까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같이 그렇게 인생을 살고 싶다. 오늘은 혼자 글을 쓰면서 제주를, 올레를, 유채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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