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된 와인의 라일락과 솔잎 향
어릴 때 화사한 꽃향기를 뽐내던 아로마틱 와인을 몇 년 뒤 다시 열었을 때, 섬세한 꽃향기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차분한 나무나 솔잎 같은 새로운 향이 나타나는 경험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그 향기로운 변신의 중심에는 바로 알파-테르피네올(α-Terpineol)이 있습니다. 이 화합물은 포도 자체에서 오는 1차향이 아니라, 와인이 숙성되는 시간 속에서 다른 터펜 화합물들이 변화하여 만들어지는, 세월의 흔적과도 같은 향기입니다.
알파-테르피네올(C₁₀H₁₈O)은 모노터펜 알코올(Monoterpenoid alcohol)의 일종으로, 네 가지 이성질체 중 와인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됩니다. 이 화합물의 핵심적인 향기 특성은 신선한 꽃향기의 리날로올(Linalool)과는 전혀 다른, 차분하고 서늘한 솔잎(Pine-like)과 약간의 흙먼지(musty) 뉘앙스입니다. 때로는 라일락(Lilac)과 같은 부드러운 꽃향기나 시트러스(Citrus) 향으로도 묘사됩니다. 와인 내 감지 역치(Odor Threshold)는 약 250 ng/L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파-테르피네올의 이야기는 와인이 병에 담긴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신선한 포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주로 와인의 산성 환경 속에서 리날로올(Linalool)이 화학적으로 재배열(acid-catalyzed cyclization)되면서 생성됩니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날로올이 점차 알파-테르피네올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효모에 의해 제라니올(Geraniol)이나 네롤(Nerol)이 전환되거나, 리모넨(Limonene)이라는 또 다른 터펜이 산화되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귀부균(Botrytis cinerea) 역시 리날로올을 알파-테르피네올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하여, 귀부 와인의 복합미에 기여하기도 합니다.
알파-테르피네올은 리슬링(Riesling)과 같이 리날로올 함량이 높은 와인의 숙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리슬링 와인의 리날로올 농도가 3년 안에 80% 이상 감소할 때, 반대로 알파-테르피네올의 농도는 증가합니다. 이는 와인의 주된 아로마가 화사한 꽃에서 차분한 솔잎 향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알파-테르피네올은 시네올(Cineole)이라는 화합물로 한번 더 변환될 수 있는데, 이는 와인에 약간의 그린 노트(Green Note)를 더하기도 합니다.
주요 연관 아로마:
꽃(Floral): 라일락(Lilac), 오렌지 블라썸(Orange Blossom), 프리지아(Freesia)
허브 & 스파이스(Herb & Spice): 소나무(Pine), 아니스(Anise), 카다멈(Cardamom)
과일(Fruity): 라임(L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