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지 못하는 마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작은 설렘이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 싶다. 누군가를 좋아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 생기면 결과를 떠나 할 수 있는 시도는 모두 해보고, 끝까지 가 본 뒤에야 포기한다. 할 만큼 다 해서 후회가 없는 게 아니라, 더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단념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엔 그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서글프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탓에 엮인 게 많은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그려지는 앞날이 두렵다. 해피엔딩이 쉬운 게 아니니까. ‘결국 결혼하지 않으면 다 헤어지는 것이잖아.’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답답해 이렇게 글을 쓴다.
30대가 되고 나니 사랑에 대한 시행착오가 쌓였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할 때의 내 모습이 어떤지 잘 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그때의 나는 결국 짝사랑으로 끝냈다. 한 번 실패했으니 두 번째는 덜 다쳐야 하는데, 이미 감정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며칠 전, 소개팅을 했다. 이제는 ‘선’이라 불러야 할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소개팅’이라 부른다. 상대는 작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분쯤 늦게 도착했고, 급히 오느라 더웠는지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선풍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낯을 가리는지 굳은 표정이었고, 대화 내내 선풍기를 만지작거렸다. 그 부산한 손놀림에 시선이 자꾸 갔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눈앞의 그보다 내가 좋아한다고 느끼는 ‘그’가 계속 떠올라서 집중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눈앞의 ‘그’도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건 숨기려 해도 새어 나오기 마련이니까.
메마른 일상 속에 생긴 작은 설렘이 반가웠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루가 생동했지만, 남녀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아프다는 걸 알기에, 이제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처음이 아닌데, 매번 처음처럼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두근거림을 주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하루빨리 지우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는 그게 맞다. 그런데 왜, 정작 마음은 이성적이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