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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an 28. 2021

익숙하면서도 낯선 광경

글의궤도 3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오늘은 관객의취향이 오픈한지 1045일차 되는 날이다.

사실 이제는 이 숫자를 세지 않지만 어플로 확인 할 수 있어 필요할 때만 들여다본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진짜 설레는 날이었다.

너무 설레어서인지 또 악몽을 꾸었다. 나는 가게를 생각하다가 잠이 들면 꼭 악몽을 꾼다. (코로나 이후 생긴 현상이다)

거의 두 달만에 2층에 손님이 음료를 마시며 머물렀다갈 수 있게 되었다.

카페가 그리웠던 손님들이 몰려들지 않을까? 브런치를 직접 먹어보고 싶어서 몰려들지 않을까?

상상하며, 우유를 그럼 이제 더 많이 시켜야하나? 하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온 우유사장님은 내게 "여긴 거래량이 너무 적어서 이제 배달 안해줄거에요. 다른 곳 알아봐요." 라며 나를 내치셨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러다 꿈에서 깼다.

아, 꿈이었네.

우유 시켜야겠다. 하며 사장님께 문자를 전송했다.

다행히 현실에서 사장님은 매우 빠르게 우유를 배달해주셨다.

두달간 취식이 금지되면서 손님이 당연히 줄었기에 우유배송을 두달 간 중지했었다. 배송이 가능한 최소수량이 있는데 우리가게는 그의 반의반의반도 못 쓰고 유통기한때문에 계속 폐기처리를 했었다. 그래서 배달받는 우유는 중지한 채 마트에서 작은 팩 하나를 사와 그걸로 일주일을 영업했다. 그나마 2주전부터 브런치와 음료 배달을 시작하며 우유배달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두달간 주문이 없다가 2주간 일주일에 한번씩 우유를 배달시키니 사장님은 우리 가게가 안 망하고 뭐 좀 하려나보다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 잘 나가네! 라고 덕담을 하곤 떠나셨다.

사람들이 몰리지않을까? 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불행하게도 현실에선 여전히 손님이 없었다.

그래도 12시간동안 홀에 6팀을 받았고, 배달을 3건 했으니 지난 주에 비하면 엄청 나아진 실적이다.

아, 오늘은 다른 때보다 배달이 줄어 아쉽긴했다.

이런 날이 있으면 또 저런 날도 있는 법이니 그냥 오늘은 저녁에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여유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일은 일주일동안 고민한 큐레이션 도서들이 배송된다. 무슨 책이 올줄도 모르고 책을 골라달라고 주문해주신 손님들께 책을 고르는 과정을 편지로 담아 마음을 전한다. 나는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 즐겁다. 아무래도 펜팔을 해야할 것 같다.

손님이랑 책과 영화에 관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획도 준비중이다. 신청해줄 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 어디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9시까지 영업이 가능해지니 손님들이 8시가 되도 온다. 밥 먹고 커피 마시러 온다.

세상에 이 광경도 정말 몇 달만인지... 너무 귀하다.

또, 두달간 테이크아웃만 하다보니 음료주문이 오면 계속 종이컵과 플라스틱컵만 쓰다가 오늘 정말 오랜만에

유리잔과 머그잔을 사용해서 서브를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습관적으로 종이컵을 뽑아들었다가 이내 머그잔을 꺼냈다.

세상에.

그동안 테이크아웃용기 사용으로 인해 죄책감도 너무 심했는데 이렇게 다시 예쁜 잔들을 사용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오늘은 그렇게 모든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들이었다.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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