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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18. 2021

루틴은 진짜 나의 시간을 만든다

글의궤도 4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프리랜서로 살다보면 루틴이 굉장히 중요하다. 루틴이 중요하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기 까지 나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오랜시간 프리랜서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스무살 때부터 나만의 루틴이 늘 있었다.

공적인 시간 외에는 꼭 나만의 사적인 시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루틴의 원칙이었다. 하고 싶고 해야하는 일은 많은데 시간은 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해야하는 것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스무살엔 학교에 가기 전에 영어학원을 다녔고, 학교가 끝난 뒤엔 늘 알바를 했다. 휴학을 해서 풀 타임 근무를 할 때도 일을 하지 않는 앞뒤 시간에는 늘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배웠다. 그땐 그게 나의 욕망이고 재미기도 했지만 내게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이 없어도 아침 8시 이전에는 일어났고,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는 늘 잠이 들었다. 운동도 다니고 책도 읽고, to do list를 지워나가는 하루로 매일을 보냈다. 물론 생활계획표처럼 루틴을 강박적으로 지키는 것은 아니었다. 내겐 부지런함은 있어도 완벽주의는 없었다. 저녁약속이 생기면 저녁과 2차와 3차와 4차를 달리기도 하고, 그 다음날엔 10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10시에 일어났다고 자책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한달에 몇번 없는 날이니, 그려려니 했다. 그치만 그런 특수한 날을 제외하곤 대부분 일찍자고 일찍일어나서 이것저것 할 일을 해왔다.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되어서는 정말 프리랜서였기때문에 밤낮없이 7-8개월을 일하다가 갑자기 3-4개월 백수가 되었다. 그런 패턴으로 일이 있다 없다를 반복하다보니 루틴이라는 것은 너무 중요했다. 언제 누군가에게 미팅연락이 올지 모르니 항상 낮에 깨어있어야하기도 하고, 돈도 못 벌면서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노는건 너무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할 때 할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읽고 보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꾸준히 하려면 계획을 세우고, 기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스터디플래너로 온 학창시절을 다 보내온 세대이니 무언가를 할 때 계획과 기록,복습은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너무 당연해서 루틴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야할 필요를 못느꼈다. 남들도 다 그럴 줄 알고.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았다. 재택근무로 균형감을 잃어 휘청거린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놀라웠다. 대부분 어딘가에 계속 소속되어 살아온 사람들에게 아침의 자유함이 매우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게 가게 일도 하고, 회사 일도 하고, 개인 시간도 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었다. 나는 그리 하루를 빡세게 보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는 칭찬을 너무 많이 들어서 누군가에게 비법이라도 전수해야하나 고민했는데,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에서 김미경 강사가 나와서 자신의 시간활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비법전수는 필요없겠다 싶었다. 이미 그리 살고 있는 사람도 너무도 많던데, 나 같은 쪼랩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법전수는 의미 없겠지만 루틴을 가지면 좋은 점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루틴을 가지면 스스로를 경영할 줄 알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 생긴다. 나는 주기적으로 약간의 변형을 주긴 하지만 요즘의 아침 루틴은 이러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차를 마시며 to do list를 쓰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한 뒤 인증샷을 올리고, 운동을 한다. 운동 후에 복순이를 산책시키고 아침을 간단하게 차리면 남편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남편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혼자서 나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 것이다. 이미 오늘 내게 삶의 주도권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으로 남편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남편이 깨어난 뒤 부터는 나만의 시간은 사라진다. 남편과 대화를 나눈 뒤에, 나는 가게로 출근을 하거나 회사로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생업이 시작되면 나만의 시간은 없다. 가게 사장으로서의 시간, 회사원으로서의 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 삶이지만 내 삶의 주도권이 없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나 혼자만이 보내는 아침 2시간은 4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데, 다른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8시간은 너무 짧다. 내겐 어떤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보내버린 느낌이든다. 

그 시간이 길던 짧던 루틴을 가지면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하루에서 유일하게 내 것인 단 몇 시간. 그것이 퇴근 후가 될 수도 출근 전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시간에는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보내는 것이다. 순수한 나의 욕망과 즐거움을 위해.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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