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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r 01. 2021

한강 야경

글의궤도 5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그저 한여름 밤에 치맥을 먹기 좋은 한강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지 2년이 되어간다. 내가 사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한강이 나오고, 30분 가량 걸어가면 여의도 한강공원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몇 년을 살았다. 한강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잘 몰랐었다.


처음 만난 날에 그는 생각할 게 많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저녁에 혼자 한강에 와서 한없이 걷는다고 했다. 나에게 한강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끄러운 곳이었는데, 그에게는 마음의 휴식처 같은 곳인 거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날씨가 좋을 때면 저녁에 한강에 갔다. 예전에 내가 알던 한강처럼 자리를 깔고 고성방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와 걷는 한강은 고요하게 느껴졌고 한강야경은 그 어떤 불빛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론 한강에서의 치맥은 여전히 최고다)


해결방법도 답도 없는 생각과 고민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면 같이 한강에 간다. 한 번 다녀오면 왕복으로 약 10km를 걷는다. 집에 돌아오면 다리가 엄청 아프곤 하지만 걷는 순간에는 그저 머릿 속 생각들을 한강물에 흘러보내는 기분이 들 뿐이다. 많이 걷는다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 마음 속으로 끙끙대며 괴로워하던 무언가를 공유하고나면 한강 공원의 공기처럼 마음이 시원하고 상쾌해진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한 명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 아닐까 고민의 무게가 가벼워지기도 한다.


오늘 저녁 날씨가 오랜만에 별로 춥지 않아서 오랜만에 한강에 다녀왔다. 아직 겨울이어서인지 사람도 거의 없고 바람도 불지 않아 물결도 고요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여전히 빛나는 한강 야경을 보며 걸었다. 머릿 속 질문과 마음 속 불안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긴 길을 함께 걸으며 진심어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다시 힘이 났다. 오늘도 한강 야경은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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