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비행기에 나는 어떤 '나'를 싣고 돌아올 수 있을까.
승객들을 모두 태우고 출발 준비까지 마친 다낭 국제공항행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 한 채 30분 넘게 엔진만 그렁거리며 서 있었다. 밤 아홉 시가 넘어가는 시각. 관제탑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웅성거리는 기내 승객들 말소리에 섞여 들었다. 세상은 암흑 속에 잠겨있고 활주로 라인을 따라 작은 불빛들이 점점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작은 불빛 사이에 고래처럼 거대한 비행기는 갈 길이 아득하니 멀다.
너무 지체된다 싶어 질 때쯤 활주로를 따라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거침없는 엔진 소리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달음박질하다 곧, 롤러코스터처럼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들며 둥실 떠올랐다. 마지막 바퀴가 지면과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공항을 뒤로하고 얼마 가지 않아 비행기는 암흑 속에 삼켜졌다. 날개에 달린 조명등만이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바다 위를 날고 있다. 작은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거센 돌풍이 부는지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승객들은 좌석에 앉아 잠이 들거나 각자의 볼일을 볼뿐이었다. 바람을 뚫고 나아가는 비행기 안에 안락한 이들. 잠시 눈을 붙일까 했지만 좁은 좌석에 묶이듯 앉아있으니 마음도 꽁꽁 묶인 듯 갑갑해 깊게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눈자위가 거친 돌멩이가 된 것처럼 눈꺼풀 안쪽을 긁어댄다. 전자책 리더기에 담아 온 책을 절반 가까이 읽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지 시각 밤 12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이 늦다. 한국은 벌써 새벽 2시 반.
시간을 거슬러 온 것 같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순간의 선택이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 건지 새삼 궁금하고 놀라웠다. 같은 비행기에 올랐던 이백여 명의 사람들은 또 어디로 어떻게 흩어질 건지. 입국심사에서 앞 차례에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백발의 노인은 내 앞자리였던가. 아니, 대각선 자리였던가. 헷갈린다.
공항을 벗어나 마주한 풍경은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탄 일행을 찾는 듯한 여행사 관계자들로 시작됐다. 택시 기사들과 폭주하듯 달리는 오토바이 몇 대. 풀냄새가 섞인 약간은 따스하고 약간은 서늘한 공기. 그리고 이곳에 덩그러니 놓인 나. 그제야 실감이 난다. 비행의 끝에는 난생처음 보는 풍경과 현현한, 살아있는 ‘그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은 항상 여행의 시작점에 있다. 바다 위를 날거나 대륙 위를 날거나 오랜 시간을 날거나 오래 걸리지 않아도 꽤 먼 거리를 날거나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의 설렘은 이제 남아있지 않지만, 앞으로의 여행이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감을 가득 품고 있자면 모든 비행은 신비롭고 고마운 것이 된다.
중요한 건 여행의 끝에서도 비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바다와 같은 대륙 위를 거꾸로 날아오는 과정에서, 구름이 발아래에 깔린 하늘 위에서 나는 어떤 기억과 감정들을 곱씹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여행이 항상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여행은 사막 속 오아시스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니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익숙한 곳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일상의 굴레 없이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경험은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내가 밉거나 나의 삶이 미워지면 여행을 간다. 여행을 가면 오랜 고민이 해결되고 굉장한 용기를 얻고 돌아올 것처럼 자신하지만, 결국 다시 ‘나’로 돌아온다. 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전보다는 더 일상을 사랑하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용기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여행의 시작은 이러했다. 끝은 어떨까. 돌아가는 비행기에 나는 어떤 ‘나’를 싣고 돌아올 수 있을까. 타국의 밤공기에 취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