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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Nov 10. 2019

사랑에 관하여

'사랑'이야기를 쓴다면, 가장 첫 페이지에 쓰고 싶은 이야기.

  사랑받은 기억에 대해, 나는 간지럽고도 포근한 연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랑’, 단어를 입에 머금기만 해도 마음이 어딘가 둥실 떠오르고 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랑에 관하여 쓴다면, 나는 엄마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내가 평생 동안 받은 사랑의 8할은 엄마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다. 내 몸에 사랑의 흔적이나 향기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엄마에게서 묻어온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다면 그건 모두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몸이 약해서 내가 고등학생 때 까지도 병원에 자주 입원했다. 그때마다 엄마의 곁을 지키는 일이 많았는데, 엄마는 간이침대를 두고도 좁은 침대에 같이 누워서 자자고 했다. 병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고요했다. 엄마는 옆에 누운 내 손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같이 누워있으니 좋네. 언제 또 딸하고 이렇게 누워있어 보겠어.” 했다. 이미 다 커버린 나와 같이 누워있을 일이 없었다.


  내가 더 어렸을 때 거칠고 제멋대로 구는 아빠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을 엄마지만, 항상 나를 먼저 살폈다. 아빠의 큰 목소리의 메아리가 집구석구석에 배어있는 것만 같았지만 엄마는 그런 집에서 나를 눕히고 가슴을 토닥토닥하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나는 그 노래가 사무치게 슬펐다. 아마도 엄마가 영영 어딘가로 가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무룩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떠도 엄마는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땐 그토록 엄마 곁에 누워있는 것이 좋았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컸다. 과분한 사랑이었다. 엄마는 내게 사랑을 준 줄도 모르고 사랑을 줬다. 그런 사랑을 그래도 뱉어내거나 잘못 삼키지 않고, 꿀떡꿀떡 잘 받아먹고 컸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음식에 그 마음을 넣은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다. 유독 기억에 남는 음식들이 있다. 딸기와 우유를 넣고 믹서기에 갈아낸 달달한 딸기우유와 바나나 우유에 식빵을 적셔 구워낸 프렌치토스트,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싸주던 김밥과 고기를 좋아하던 나를 위해 자주 해주던 불고기와 고추장 삼겹살 볶음. 음식에 담긴 사랑이, 그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눠 먹은 시간들이 내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하고 또 낫게 했다.


  어떨 때는 엄마의 사랑이 나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쉽게 아프다는 말을 못 하게 했다. 힘들다는 말, 외롭다는 말을 엄마의 사랑과 함께 목구멍으로 자꾸만 삼켰다. 엄마도 아픈데, 엄마도 힘든데, 나까지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자꾸만 삼키다 보니 속마음을 툭 터놓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엄마는 가끔 나를 보면서 넌 찔러도 피가 안 나올 것 같다고, 과장해서는 파란 피가 나올 것처럼 냉정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번 무너지면 영영 못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도 말 한마디 못 하고 눈물만 줄줄 쏟던 여린 아이는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 덕분에 나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고, 덧난 상처도 잘 이겨냈다.


  그래서 어른이  나는 엄마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한다. 파란 피가 아닌 빨간 피가 몸에 돌게 됐을  진짜 괜찮아진 거니까. 엄마 앞에서   웃고, 귀여운 척도 잘하고, 사랑한다는 애정표현도 잘한다. 어느 순간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을 어떻게  전할  있을까, 아득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오늘부터 말해도   갚을 마음이었다. 내가 ~렇게 사랑한다고. 이렇게  사랑을  갚아나가고 싶다고. 그리고 통화 마지막에 엄마에게 “엄마는?”하고 묻는다. 그럼 엄마도  이기는  “나도 우리  사랑해.” 한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몸에 빨간 피를 데우고  데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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