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투명인간 1

나는 동생과 친하지 않다

by yuriana

"우리 죽으면 너희 둘 뿐이야"


30대가 되기 전 나는 꼭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미루던 숙제 같기도 했고,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행에 목말라 있던 나는 직접 차를 몰고 어디든 떠나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져 있었다.


그러나 첫 도전부터 쉽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기계치였다. 친구들이 운전하는 걸 보면 내가 너네보다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실전에서는 바보 그 자체였다. 몸은 뻣뻣하게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고,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확인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져서 앞만 보고 가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게 금방 딸 줄 알았던 운전면허는 브레이크 미숙, 신호 위반으로 계속 떨어졌고 어느 우중충하고 비 오는 날 드디어 간신히 합격을 했다.


그러나 늦어지는 면허를 따기도 전에 나에게는 차가 있었다. 마음 급한 나는 당장 차부터 사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동생 명의로 차를 구입했다. 동생과 공용으로 사용하려는 생각이었기에 내 명의가 아니고 동생 명의여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들떠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힘들게 얻은 자동차였고 앞으로 내 삶의 활력소가 될 거 같아 흥분되고 기대됐다. 그러나 나의 기쁜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동생과 나의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운전도 잘하고 차를 잘 아는 것에 반에 나는 초보였고 차에 대해 몰랐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였다. 동생은 사사건건 나를 다그쳤다. 처음엔 내가 잘 모르니까.. 하면서 동생의 말을 좋게 넘겼지만 어느 순간 도를 넘었고 나의 자존심까지 마구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심지어 의자 조정, 사용시간 등 사소한 문제들로도 계속 갈등이 생겼다.

그렇게 한번 상하기 시작한 마음은 별거 아닌 말로도 큰 의미가 돼버려 가슴에 콕 박혔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에 '내 차'라는 단어를 붙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왜 그 말이 그 순간 튀어나와 싸우게 된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단어가 우리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었고 서로 말꼬리의 꼬리를 잡다가 피 터지게 싸운 기억이 생생할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동생을 상대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정이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왠지 아무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 날 이후 어떤 매듭도 짓지 않은 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야말로 남남처럼 지냈다. 4년이 넘게 동생과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마치 투명인간 대하듯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대했을싶지만 그때는 배신감과 실망감이 극에 달했고, 한 번씩 치미는 감정을 누르는 길은 그 방법뿐이었다.


동생은 지금도 내가 그 일 때문에 감정이 상해서 입을 꾹 닫았다고 생각하지만, 난 계속 올라오는 마음을 누르며 참고 있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거고 때마침 동생이 다이너마이트에 불씨를 붙인 거다. 내 입장에서는 터질 게 터진 것뿐이었다.


처음엔 동생에게 몹시 화가 났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그렇게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화해를 꼭 해야 하나 싶게 그런 사이가 익숙해졌다.


화해할 타이밍을 놓친 거다.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가며 4년을 넘게 지냈다.


사실 그렇게 지내는 우리보다 부모님이 중간에서 힘들어하셨다. 매년 명절 기도 제목이 우리의 화해였을 정도로 두 분은 우리가 화해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셨다. 그러나 내 마음에 잠긴 자물쇠는 절대 풀리지 않고 단단히 묶여있었다. 첫째가 먼저 손 내밀기를 바라셨지만 그 일만큼은 들어드리기가 힘들었다.

틈만 나면 부모님은 나에게 '우리 죽으면 너희 둘 뿐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소리가 강요나 협박으로 들렸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자식끼리 사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불효인 줄 알았지만 들어드릴 수 없는 일이었다.


나와 달리 동생은 풀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몇 번의 화해 시도를 해왔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다가오면 퉁명스럽게 대했고, 손을 뿌리치기 일쑤였다.


그런 어느 날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실 그때도 줄기차게 오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분의 오래된 핸드폰을 바꿔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동생의 전화를 끊지 않고 끝까지 귀담아 들었다. 어떤 말을 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을 생각해서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풀렸던 거 같다.


그 이후부터였다. 동생과 몇 마디씩 나누기 시작한 것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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