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작년이 나에겐그러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그렁 그렁해지고 표정에서 드러나는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런 내 마음을 염려한 지인이뜻밖에도 글 쓰는 모임을 추천해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글을 쓰고 싶다기보다는 터놓을 곳이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힘듦을 한두 번 얘기할 수는 있어도 계속되면 피로이고 공격받는다고 여길 거 같아 오히려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글 쓰는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그곳은 기꺼이 내 대나무 숲이 되어 주었다.
나는 소설, 에세이 등 내 마음을 여과 없이 담아냈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치는 것처럼 그동안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배설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형편없는 글들임에도 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스스로 전혀 알 수도 없던 장점까지 하나하나 찾아주었다. 사실 칭찬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로서 너무 어색했지만 나중엔 즐겼던 거 같다.
그러면서 점차 저 밑까지 추락해있던 내 자존감들이 조금씩 세워지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옥의 시간들이 이들로 인해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완벽하진 않지만 힘듦의 무게가 작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여전히 글 쓰는 것 또한 멈추지 않았다.
시의 매력에 빠지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을 글로 옮겼다. 그러면서 좋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픈하고 있는가 싶기도 하고 왠지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쓸 때면 점점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 분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뭔가 내 마음을 툭 건드린 것처럼 오묘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새로웠다.
그 뜻을 일일이 다 설명하지 않아도 단어와 문장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신선하고 좋았다. 그때부터 시의 매력에 빠져 무작정 잘 쓰고 싶어 졌다. 그러나 생각보다 시는 어려웠고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너무 큰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 잘 쓰는 그분과 무작정 친해지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대책 없지만, 내가 뭔가 잘하고 싶은 게 처음이기도 했고 마음이 급했다.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나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모임에서 던져주는 주제로 머리를 맞대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내용을 생각하고 그것을 어떠한 한 단어나 문장으로 함축해 비유해서 쓰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지만 그러다가도 번뜩이는 단어가 떠올려 시가 완성되면 마치 어려운 숙제를 푼 것처럼 묘한 쾌감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말 시라기보다 시를 흉내 낸 애매한 글들이 나와서 속상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못써도 1년을 꾸준히 했다. 최근에 뭔가 꾸준한 적이 있던가 할 정도로 시 쓰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마음을 숨기다
누군가 내 시를 읽고 그 마음을 헤아려 주면 기쁘다. 그 마음을 알기 위해 몇 번이고 내 글을 읽었을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벅찬 감동이다.
언젠가 그런 말들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언니는 에세이를 쓸 수 있어서 좋겠다고. 본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것이 힘들어 시 뒤로 마음을 숨기고 시를 쓴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친구와 같은 계기로 쓰게 된 건 아니었지만, 시 뒤에 마음을 숨긴다는 것을 이해할 거 같다. 거침없던 내 글이 브레이크 걸린 것처럼 쓸 수 없었을 때 시는 또 다른 방법으로 글을 쓰게 한 나의 든든한 방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계속해서 시를 쓰고 싶다. 여전히 마음을 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