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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Jan 09. 2018

'아버지'와의 이별 그리고 교훈

당신은 영원한 나의 봄입니다.

@49재


 오늘 아버지의 49재를 무사히 마쳤다. 이로써 아버지 황태영은 나와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났다. 우리는 그의 철학이 담긴 글, 숨결, 목소리, 사랑, 웃 등을 더 이상 들을 수도, 볼 수도, 느낄수도 없다.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홀로 움켜쥔 채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것도 아주 춥디추운 한 겨울에.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영생의 세계에서 유별나게 우리 아버지만 데려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이 땅에 태어나셨고, 하늘의 부름에 기꺼이 응하여 먼 길을 조금 일찍 떠나셨을 뿐이다. 또한 추운 날씨에도 수많은 친구들이 곁을 지켜주어 아버지를 따뜻하게 해주셨으니 정말 좋지 아니한가.


 어차피 모든 인간은 언젠가 떠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여러분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지금 나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우리는 현재 살아가는 것이자 곧 죽어가는 중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떠나느냐의 아주 작은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양보단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사실 처음엔 아버지가 무척 원망스러웠다. 철부지 아들만 이렇게 홀라당 남겨놓으신 채 어딜 그렇게 가신다는 말인가.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던 인가.   

하지만 이젠 그런 아버지가 더 이상 원망스럽지도, 미련이 남지도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떠나셨고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것, 오직 그게 전부다.

 

 영생을 꿈꾸며 눈에 불을켠 채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도, 기술혁신을 일으키며 엄청난 부를 가졌던 스티브 잡스도, 수 천년간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온 철학가 소크라테스도, 우주와 지구를 해석하던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결국 모두 한 줌의 흙이 되어 사라졌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셨던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이러한 세상과 자연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일찍 깨닫게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릴 따름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못난 나의 글을 지적해주던 작가이자, 사업가이자,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원한 롤모델이었던 아버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남겨주신 교훈만은 여전히 나의 곁에 존재한다.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 있을 교훈, 어떠한 유산보다도 값그 교훈 바로 '사랑'다.


 그렇다. 나는 아버지가 떠난 이제야 생전 그토록 외치셨던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지금 당장 아버지께 찾아가 절을 올리며 감사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늦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실이 무척 후회스럽다. 여러분들도 후회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열심히 표현하길 바란다. 아무리 표현해도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테니.


 나는 평소 아버지의 고독을 느낄 생각도,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다보니 그로인한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아니, 도대체 아버지는 왜 그동안 이런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오셨던 것일까. 혹시라도 기회가 주어져 단 한 순간이라도 아버지를 만나뵐 수 있다면 여쭙고 싶다.


"도대체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으셨냐고. 그렇게 힘들고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오셨으면서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셨느냐고"


 확실치는 않지만 선친께서 단순히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서 그런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이 짊어지고 계신 고독이라는 무거운 짐이요, 숙명이 아닐까.


 그렇기에 하나 확실한 것은 여전히 힘들면 힘든 티를 팍 내는 나는 아직까지 철부지 아들이다. 28살이나 먹은 철부지 아들. 그러나 먼 훗날, 언젠가 태어날 나의 자식도 나를 보며 속으로 그러겠지.


"아버지, 그때 왜 말 안하셨느냐고"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허나 추측컨대 사랑하는 여인과 자식들에게 한줄기 빛과 희망의 존재가 되고자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마저도 우리들 모두 가장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탓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지금 나는 이런 슬픔과 고독과 후회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세월이 흐르고 서서히 내가 늙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릴 적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창밖에는 눈이 힘차게 날린다. 눈처럼 하얀 마음이 생긴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손과 발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사랑의 기운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며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리고 바로 이 하얀 마음, 순백의 따뜻한 사랑이 아버지께서 그동안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이유이자, 앞으로 내가 실천해 가야 할 값진 교훈이란 것을 느꼈기에 나는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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