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
엄마가 잠깐 너희 집에 가도 될까?
오전 11시 반쯤 지났을까. 갑자기 걸려온 엄마의 전화, 앞뒤 없이 그냥 우리 집에 잠깐 들르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이사한 우리 집 거실을 둘러보고는 소파가 없다며 푸념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파는 필요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가 보군... 쿨하게 오시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잔소리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낮에 오니깐 한가하니 좋네.
이사한 집에 처음 오던 날, 엄마와 아빠는 일과를 마치고 밤 10시에 들르셨다. 오래된 아파트임을 입증하듯 모든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히 차있었고, 낯선 동네에 낯선 주차장을 몇 바퀴를 돌다가 겨우 주차를 하고 들어오셨다. 이렇게 복잡해서 어떡하냐고 걱정부터 하며 들어오셨는데, 오늘 아파트 주변을 살펴보시더니 낮에 보니깐 좋다며 엄마는 안심하셨다.
엄마, 불편하면 방 소파에 앉아요.
라떼 한 잔 타 줄게.
내가 야심 차게 사들인 우드 슬랩 식탁이지만, 엄마는 영 낯설어서 앉지를 못하고 서성거렸다. 푹신하고 늘어진 소파를 사랑하는 엄마... 이사 오기 전부터 쓰던 작은 소파를 방으로 넣었던 터라 나는 엄마한테 거기 앉으시라고 했고,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곳에 들어가 널브러졌다. "이서방은?" "회의한다고 출근했어요." "그렇구나. 근데 라떼가 생각보다 맛있네?" "그치? 내가 큰맘 먹고 에스프레소 머신 들였어. 맛있죠?"
그렇게 엄마의 수다(라고 쓰고 '푸념'이라고 읽는다)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아빠'였고 일가친척들의 근황을 돌고 돌아, 수다의 끝으로 와서는 결국 또 '아빠'였다.
"니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난 진! 짜! 이해가 안 된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야지~ 내가 말하는 게 싫은 건지, 안 듣는 건지, 듣고도 잊어버리는 건지, 진짜 모르겠어! 물론 내가 말을 그렇게 이쁘게 하는 편은 아니긴 하지.. 그래, 나도 잘한 건 없어.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한두 번도 아니고 40년을 그렇게 말했으면 좀 바뀌어야 되는 거 아냐? 그치 않니?"
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10대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다. 어려서는 엄마 말을 100% 믿었고, 어린 마음에 아빠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아빠랑 계속 살고 있는 엄마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 때는 엄마의 그런 푸념이 듣기 싫었다. 어차피 이혼도 안 하고 그냥 살 거면서, 왜 자꾸 똑같은 말을 계속하는지... 혈기 왕성한 나에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으면서 투정만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 이후부터는 물리적으로 푸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평소에 전화 통화를 살갑게 했던 사이도 아니었고 각자 다른 집에서 살게 되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어쩌다 만나도 사위랑 같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푸념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하면서 내 삶에 집중하느라 부모님은 뒷전이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엄마의 말과 행동들이 어느 순간 하나둘씩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걱정되면 화를 내던 모습, 스스로 하라고 했으면서 왜 니맘대로 하냐고 하던 모습. 하지 말래서 안 했더니 왜 안 하냐고 서운해하던 모습…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냥 느낌으로 이해됐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게 이런 뜻이었겠구나. 엄마도 참 힘들었겠네...
오늘 엄마가 날 찾아온 이유는 하나. 속시원히 소리치고 숨 쉬고 싶어서였다. 남과 나누기엔 누워서 침 뱉기라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그저 삼키고 지나가기엔 속이 뭉그러질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그럴 때 날 찾는다. 그리고 그럴 때 나를 찾아준 엄마가 언젠가부터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라도 작은 효도를 할 수 있도록, 무심한 딸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하나뿐인 남편을 마음껏 욕해도 그녀 스스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사람. 주변 일가친척 누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알아듣고 서운한 일이 있었을 때 실컷 토로할 사람, 생각하거나 정리하지 않고 내뱉고 싶은 만큼 내뱉어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다 토해내도 진짜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엄마는 대나무 숲이 되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우리 삼 형제는 돌아가며 엄마의 대나무 숲이 되어드리길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 엄마의 대나무 숲이 되어 준 가족은 나다. 2시간이 넘도록 엄마는 끝없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고, 나는 최선을 다해 리액션을 했다. 커피를 마시며, 떡을 먹으며 그녀는 그간 쌓였던 속앓이를 털어냈고, 나는 정신없이 받아쳤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마지막 물 한잔을 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이제 가봐야지, 아빠가 기다리겠다.
이 한마디로 오늘 나는 내 몫을 다 해낸 듯했다. 엄마는 그간 마음에 쌓였던 속앓이들을 전부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비워냈으리라. 그리고 살다가 감당 못할 만큼 버거워지는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다시 전화를 하시겠지. 그럼 난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대나무 숲이 되어 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