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보여줄 것인가?
내가 출판사 에디터로 일할 때, 가장 괴로워하면서 좋아했던 일은 바로 '샘플 구성'이다. 사실 출판사에서 편집한다고 해서 업무가 모두 같지는 않다. 에디터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어느 분야의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에디터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내 경우, 실용 어학 분야의 에디터였기 때문에 텍스트를 직접 만지는 작업은 물론, 학습 구조와 책 전체의 학습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도 큰 역할 중 하나였다. 쉽게 말하자면, 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이것이 책 만들면서 가장 큰 화두였다. 나는 그 과정을 너무나 좋아했고, 욕심내던 에디터였다.
그 본성이 어디 가겠는가? 영상을 편집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상에 담긴 내용을 "어떻게 하면 시청자(구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게 내가 영상 편집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고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컬러를 입히고, 텍스트에 변화를 주고, 이미지를 움직이게 만들며 영상의 시작과 연결과 끝을 마지막까지 고민한다. 내가 영상을 만들 때 가장 큰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그때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바로 '스토리보드'이다. 앞서 설명한 '스크립트'는 주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설명하는 다양한 예시와 근거 혹은 경험 등을 다듬어 메시지 알맹이의 구조를 만드는 작업인 반면, '스토리보드'는 그 알맹이를 화면 안에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편집을 위한 보드의 경우, 시간 순서에 맞춰(자막에 맞춰) 효과를 주고자 하는 부분을 표시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스토리보드는 영상 작업의 '꽃'이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 스토리보드 작업자와 영상 편집자가 나눠져 있기도 하다. 그러면 분업의 효과가 있어서 속도가 빨라지고, 각 작업 파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각자 작업 범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웬만큼 호흡을 맞춰온 사이가 아니라면, 보드의 내용이 완벽하게 편집에 적용되긴 쉽지 않다. (물론 스토리보드가 얼마나 디테일하게 정리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반면 유튜브 편집과 같은 짧은 영상의 경우, 대부분 스토리보드와 편집 작업을 거의 한 사람이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감각과 능력이 고스란히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 화면에 메시지와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여 보여줄지, 인트로-인서트-엔딩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그리고 중간에 핵심 메시지는 어떤 식으로 강조할 것인지... 편집과 동시에 떠올리고 반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영상 편집자의 개인 기량이 많이 드러나게 된다. (이 브런치에서 말하고 있는 '스토리보드'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혼자 작업하는 프리랜서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물론, 스토리보드의 내용을 편집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편집 기술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 능력치가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엇을 - 어떻게 강조할지, 그것 역시 메시지 내용 정리에서 시작되며 화면 안에서 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 역시 편집자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만 가지고는 편집을 잘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전달자가 가장 말하고자 하는 내용, 보는 사람이 꼭 기억하길 바라는 키워드, 그리고 이 영상을 보고 난 후에 드는 어떤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는지... 이런 부분을 찾아내고 그걸 담아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영상 편집의 꽃" 아닐까? 강조하고 효과 넣는 '기술'은 추후에 공부하면서 점차 실력을 늘려나갈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스토리보드, 즉 영상 구성 정리를 할 줄 모르면 단지 화려하기'만' 한 영상이 만들어질 뿐이다.
진부해도 진리는 진리,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그럼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실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잘 만들어진 다른 영상을 무조건 많이 봐야 된다. 대신, 시청자로 즐기는 게 아니라 편집자의 자세로 영상을 뜯어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영상을 시작했는지, 연결했는지, 강조했는지, 끝냈는지 등 마음먹고 다른 영상들을 보기 시작하면, 각 영상마다의 정리 방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유튜브 영상에서 많이 보이는 인트로는 '미리 보기' 혹은 '흥미 유발' 클립으로 시작하는 방식인 것 같다. 본문 내용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컷이나 혹은 재미있는 컷을 맨 앞에 배치함으로써 영상을 쭉 이어서 보게끔 만드는 방식이다. 이런 정리 방식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그럼 일단 성공이다! 적어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뜻이니깐.
그렇다면 이번엔 그걸 내 영상에 하나씩 접목시켜보면서 테스트를 해볼 차례이다. 처음에는 전혀 감이 없어서 마냥 어색하고, 이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판단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과정 없이는 절대로 나만의 정리 스킬이나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모든 영상 편집자들은 이미 지나왔거나, 통과 중인 과정이다.
영상 편집자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다. 전에 만들었던 영상을 다시 봤는데 너무 창피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마음이 든다면, 너의 실력은 그만큼 업그레이드된 것이라고. 아주 잘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한다. 나 또한 맨 처음에 작업한 영상, 혹은 수개월 전에 작업했던 영상을 다시 볼 때면 '아니, 도대체 왜 그랬니?'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나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땐 정말 baby였구나 싶다.
이미 잘 만들어진 영상은 너무 많다. 훌륭한 선배들의 영상을 참고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방'을 시도해보자. 지금까지 경험상,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모방'과 '삽질'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