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맞춤법

마침표가 없어도 괜찮아

by 케이진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면서 내가 굳이 강조하게 되는 지점이 하나 있다. 바로 '마침표'를 문장 끝에 찍는 것. 내가 맞춤법(문법)에 능통하거나 예민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일종의 직업병인 것 같다. 그냥 문장이 끝나면 무조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게 무의식에 박혀있는 것이다. 물론 그게 문법적으로 맞다. 하지만 나는 영상 편집을 하면서 '마침표'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마침표, 너 눈에 너무 거슬린다?

처음에 말자막 작업을 할 때는 별생각 없이 내가 그동안 출판사에서 배웠던 기준으로 진행했다. 모두가 다 아는 맞춤법, 띄어쓰기를 적용했고 마침표, 큰/작은따옴표, 반점(쉼표), 소/중/대괄호, 겹/홑 낫표, 겹/홑 화살 괄호, 물결표, 말줄임표, 빗금 등 최대한 한글 맞춤법 규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쉼표, 따옴표, 마침표.. 열심히도 넣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색하고,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흠... 내가 너무 화면을 오랫동안 보고 있었나? 원래 출판 교정을 볼 때도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모든 단어가 외계어(?)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맞춤법과 전혀 상관없는 단어, 예를 들면 '사과' '바나나'와 같은 기초 단어가 틀린 것처럼 보인다던가 '그와 반대로'라는 말에서 '그=he' 느낌으로 읽혀서 갑자기 알 수 없는 '그'를 떠올리며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간다던가...;;;


이런 증상(?)처럼 나는 같은 문장을 너무 여러 번 봐서 '교정 번아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인트 자막 작업을 해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영상 속 텍스트와 종이 위의 텍스트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멈춰있는 문장 VS. 흘러가는 문장

책은 내가 읽는 속도를 순간마다 조절할 수 있지만, 영상은 일단 재생이 시작되면 나와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흐른다. 특별히 일시정지를 하거나 뒤로 돌리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니 영상 속 텍스트는 마치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바다거북과 같은 느낌이다. 한번 시선을 떼면 다시 붙잡기 어렵다.


물론, 요즘은 영상을 몇 배속으로 볼 지 대부분 설정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몇 배속으로 보든, 영상은 흐른다. 그건 변하지 않는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 속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에 대단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영상에는 텍스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니 텍스트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야 한다.


그렇다면 텍스트의 핵심,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의미 전달'이다. 따라서 의미 전달을 제외한 모든 것 즉, 마침표를 비롯한 웬만한 문장 부호들은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자막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지우는 문장부호, 없는 게 훨씬 깔끔하다


맥락만으로도 충분할 때를 노려라

그렇지만 모든 자막 작업에 이 규칙이 통용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한국인에게 한글 자막은 어느 정도 퉁쳐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만약 한국인에게 영어 자막의 경우, 혹은 외국인에게 한글 자막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영어 자막을 본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한의 문장부호도 생략되어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 같은 사람은 어디까지가 한 문장인지 궁금해서 헤매다 끝날 것 같다.(이것도 직업병이려나...)


그러니 누가 보는 영상인지, 자막의 언어와 문장의 난이도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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