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지연 Sep 15. 2019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

피프티피플


세랑 세랑 정세랑.
정세랑이라는 작가님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경쾌하게 굴러가는 듯한 발음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가볍지만은 않은 단단한 느낌을 동시에 받아, 또 좋았다.

정세랑 작가님의 책 중 가장 먼저 만났던 작품이 바로 <피프티피플>이다. 첫번째 봤을 때 잠자기 전 침대에 엎드려 조금만 보다 자려던 것을, 앉아서 보다가, 결국엔 새벽 두시까지 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감히 이야기해보자면, 정세랑 작가님의 이름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스타카토처럼 경쾌하지만 지긋이 눌려 울려퍼지는 음들이 좋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가깝고 일상적이면서도 너른 넓이와 깊이감, 개인적인 사유와 사회적인 시선을 동시에 놓치지 않고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정세랑 작가님 책은 무조건 모조리 다 보겠다! 는 것도.



가깝고 일상적이면서도 너른 넓이와 깊이감, 개인적인 사유와 사회적인 시선을 동시에 놓치지 않고 있는 / 사진 ©김강희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들은, 보고나서 작품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싶게 하는 작품들이다. 피프티피플을 보고나서, 이 책 정말 완전 대박 엄청 너무너무너무 재밌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져서 지인들에게도 선물하고 독서모임에도 추천하고 북쉐어링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책을 갖고 갔다. 선물받거나 추천받은 사람이 좋았다고 하면 어찌나  신이 나고 뿌듯하던지.


지금까지 살면서 강력한 팬클럽 활동을 한 적이 별로 없는데, 정세랑 작가님에게는 마구마구 팬심이 생기고 나의 활동 반경 내에서 나름의 적극적인 팬클럽 활동을 하게 했다.


이거 정말 좋아! 어때요, 좋지 좋지? 하고 자꾸 말하고 다녔다.



이거 정말 좋아! 어때요, 좋지 좋지? / 사진 ©김강희



더불어 좋은 작품은 더 나아가 독자나 청자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게 하는 영감과 용기를 준다고 생각한다. 피프티피플은 혹시 다음에 만약 피프티 원 피플이 있다면, 내 이야기도, 내 삶의 한 조각도 이렇게 쓰여질 말들이 있을 것 같다는 긍정성을 갖게 했다.


의미없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그것대로 의미있어질 수도 있겠다는, 그래서 어쩌면 삶에서 의미없는 순간이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했다.



내 이야기도, 내 삶의 한 조각도 이렇게 쓰여질 말들이 있을 것 같다는 긍정성을 갖게 했다. / 사진 ©김강희



또한 내 안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더 관심이 생겼다. 뉴스에 나오는 어떤 일조차도 상관없거나 먼 일이 아니라는 생의 감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한 명, 한 명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고 세밀한 관찰력으로 들여다본다면, 누구에게도 쓰여질만한 이야깃거리가 있을거라는 소설가의 눈에 감탄하고 경탄했다.

피프티피플이 서로 점점이 있는듯 보여도 분절적이지 않고 결국에 이어져있다는 것도 좋았다.


우리들은 다, 때로는 아득한 섬처럼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깊은 바닷속 심연으로 들어가면 산과 산, 계곡과 능선으로 이어져있는 것처럼. 나비효과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도 연결 연결이 되며 다른 일들로 파생되는 것처럼. 몇 천 광년을 떨어져있는 곳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했을 때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어릴 때 숫자 순서대로 점과 점을 계속 연결하다보면 커다란 그림이 완성된다거나, 캄캄한 밤 하늘에 떨어져있는 별과 별을 연결하여 그리다보면 아름다운 별자리들이 생겨나는 것처럼.



서로 점점이 있는듯 보여도 분절적이지 않고 결국에 이어져있다는 것도 좋았다. / 사진 ©김강희



우리들은 서로 다 크고 작든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연대의식이 아닐까 하는 것도. 나는 지금 다른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아주 작게라도 선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서 쓰고 있는 이 글을, 당신이 언젠가 우연히 만나, 혹시 모르게 여기까지 감사히도 다 읽어주셨다면. 우리도 이미 점과 점이 선으로 연결되어버린 것.


그 선이 또 어디에 가닿을지, 조금 멀리서 혹은 시간에 지난 후에 보면 우리들의 그림이 어떤 그림이 될지 궁금하다.



그 선이 또 어디에 가닿을지, 조금 멀리서 혹은 시간에 지난 후에 보면 우리들의 그림이 어떤 그림이 될지 궁금하다. / 사진 ©김강희



내 이름이나 당신의 이름 챕터에 지나가는 한 사람으로, 혹은 건너 건너 건너의 한 사람으로 등장할 수 있다면 정말 신기하고 재밌겠다. 또한 이 글의 어떤 한 문장이라도,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어떤 한 마음에라도, 혹시 공감하였거나 또 다른 생각이 파생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시공간을 관통하여 이어져있다는 것. 그 그림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즐겁고 즐겁다.


만약 그것도 넘어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자리에서 혹시 만나기까지 한다면? 피프티피플에 대해, 그리고 나와 당신에 대해 서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와아 ! 정말 정말 너무 엄청 신나고 좋겠다.



그 시작은

ㅡ어때요? 그 한 문장이면 충분할 것이다.



어때요? 그 한 문장이면 충분할 것이다. / 사진 ©김강희





“그겁니다. 여전히 훌륭한 학생이군요.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 정세랑, <피프티피플>, 380-381p.



글 성지연  / 사진 김강희 (www.kanghee.kim​​​​)


<피프티피플>을 읽고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에 대해 썼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 주인은 누구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