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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Sep 08. 2019

그럼 주인은 누구지?

아무튼, 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퇴근 후 깜깜한 방에 불을 켜고 앉았을 때, 갑자기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ㅡ어? 집에 있었어?
ㅡ아, 급해서 화장실 먼저 들렀어.
한 집을 쓰고 있는 호였다.

방 2개에 화장실 하나, 작은 거실이 있는 이 집을 호와 나는 나눠쓰고있다. 정확히 말하면 호의 전셋집에 내가 방 하나를 월세로 들어온 것이다. 취직을 하고 이 지역 까페에 올라온 글을 보고 급한 대로 방을 구했다. 호는 내가 내는 월세로 은행에 이자를 낸다고 했다.

그럼 이 집 주인은 누구지?

나에게 주인은 호이기도 하고, 호가 보증금을 냈다는 김주명이라는 사람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은행이기도 했다. 얽히고 설켜있었지만 뭐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퇴근 후 바로 몸 하나 뉘일 작은 공간 하나면 되었다.



나는 그저 퇴근 후 바로 몸 하나 뉘일 작은 공간 하나면 되었다.



잠시 후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호가 급하게 나갔다. 호는 또 술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호는 요즘 집을 잠깐 들렀다 가는 화장실이나 본인 짐을 맡겨둔 보관함 정도로만 쓰고, 주로 밖에서 생활한다. 나로서는 잠시라도 혼자만의 독립적인 시간이 확보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흐아아 고단하다, 얼른 씻고 잠이나 자자.’
호가 나간 후,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보니 와 진짜 가관도 아니었다. 작은 욕실 안에는 이리저리 검은 발자국이 막 나 있었다.
ㅡ와, 씨. 얘 또 이러네. 진짜 짜증난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욕처럼 새어나왔다. 호가 없다는 걸 의식한 소리의 크기였다. 호는 현관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을 매번 이렇게 꼭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한 발자국 차이지만, 욕실화로 바꿔 좀 신으면 덧나나. 화장실 청소는 한번 하지도 않으면서. 아오.

‘참자, 참자, 참자.’
얼마 전 읽은 책 <용서> 속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밤마다 듣고 있는 명상 앱에서 [화가 많이 날 때는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튜브에 누워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라는 조언을 떠올리며, 참을 인 자를 새기고 또 새기며, 회사에서 밥벌이하면서 뭐 이것보다 더 한 것들도 많은데, 참자, 참자, 참아보자 되뇌었다. 그래 뭐, 정 안되면 조만간 다른 룸메를 구하거나, 다른 집을 구하거나 하자. 그래도 이 정도 저렴하기도 어렵지.



[화가 많이 날 때는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튜브에 누워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라는 조언을 떠올리며



그리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ㅡ아, 씨.
다시 한번 육성이 화장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아까 한 혼잣말보다는 좀 더 크고 또렷하며 명확한 어조와 크기였다.
호가 또 내가 아침에 걸어놓았던 휴지를 굳이 꺼내어 다시 반대로 바꾸어 달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안의 휴지를 다 쓰면 다음 휴지를 걸어두는 것은 현대인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지 않은가. 매번 휴지를 다 쓰고도 걸어놓지 않아, 오늘 아침에도 내가 휴지를 걸어놓았었다.

평소 습관처럼 나는 둘둘둘 푸는 부분을 벽 안쪽 방향으로 걸어놨었는데, 호는 이걸 굳이 빼서 다시 변기 방향으로 푸는 부분을 바꿔 걸어 놓은 것이다. 바깥쪽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변. 기. 방. 향!
예전에도 이런 적이 많았다. 벽 쪽 방향으로 걸은 것을 호가 굳이 다시 변기 쪽, 내가 다시 벽 쪽, 호가 다시 변기 쪽. 이거 뭐 해보자는 건가 오기가 생겨 내가 다시 벽 쪽, 호가 변기 쪽, 내가 벽 쪽, 호기 변기 쪽!
‘아오!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아니다 그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중요할 수도 있지. 언젠가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휴지 거는 방향]을 검색해본 적도 있었다. 칼럼니스트 앤 랜더스는 이 주제에 대해 1986년 15,000통의 편지를 받았었고, 그의 칼럼 기고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였다고도 한다.
[세대 구성원의 견해가 다른 경우 해결책은 별도의 휴지걸이 또는 욕실을 사용하고 이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라 안에서 휴지 거는 방향이 하나로 강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발명가는 두 방향을 가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회전형 휴지걸이를 대중화하는 것을 제안했다.] 라는 검색 결과가 나와있었고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그때도 마음을 다스리고 다스렸었다.

그렇다. 이건 진짜 취향을 떠나 어쩌면 한 개인으로서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탕수육 찍먹이 부먹을, 부먹이 찍먹을 서로 바꾸라고 강요하거나 비난하면 안 되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따라서 다시 휴지를 빼어 안쪽으로 바꾸어 매달려다가
‘하아 됐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마음 한 켠에 그래도 호가 이 집 주인인데, 라는 마음이 솟구친 게 어쩐지 비참했다.




마음 한 켠에 그래도 호가 이 집 주인인데, 라는 마음이 솟구친게 어쩐지 비참했다.



다시 이 집에 왔던 첫 날 생각이 났다.
신발장 3층짜리 합해서 6칸 가득 가득 채워져 있던 호의 신발을. 6칸 중에 딱 한 칸만 좀 비워주었으면 좀 덧나는지. 그 때 몇 개 되지도 않는 그릇을 넣으려다 보니 또 한가득 채워져 있던 싱크대 선반도 생각났다. 호의 냄비와 컵, 그릇 사이사이 아주 작은 틈바구니에 내 그릇을 욱여넣었었다.

겨울을 나면서 호는 남향 방, 나는 북향 방이라 내 방은 유독 웃풍이 심해 너무나 추웠다. 그 때 호가 저녁 9시 이후로는 난방 끄고 자자고 했을 때. 그 때도 그냥 알겠다고 아무 말 못했던 것도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작은 거실과 화장실을 군말 없이 청소하며, 쓰레기봉투를 꾹꾹 눌러놓거나 묶어버리는 일도.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서 도비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호가 주인이니까.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서 도비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호가 주인이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휴지 하나 내 마음대로 못 거나? 갑자기 화가 솟구쳐 다시 화장실로 향하려다, 갑갑해져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왔다. 손에 그대로 전해지는 온도는 심장까지 직방으로 전해져 울화를 식혀주는 것만 같았다. 칙 ! 맥주 캔을 따는 소리는 그 자체로 청량한 위안이 됐다. 어제 한 캔을 남겨둔 나 자신에게 아주 잘했어, 아주 칭찬해 하고 머리를 막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맥주를 그대로 들어 마시니 금빛 물결이 목울대를 꿀떡꿀떡 넘어갔다. 이렇게 어쩌면 또 울고싶은 한 고개를 넘어가는 것도 같았다. 목울대는 어쩌면 이름도 목울대인가. 맥주로 목울대가 꿀꺽꿀꺽 울려지는 것이 언제나 나는 이리 좋았다. 울고싶은 마음을 좋아하고, 울고싶지만 울지 않으려고 할 때 조금 더 단단해지는 기분을 좋아하고, 그러다 참다 못해 울었을 때의 통쾌함을, 나는 좋아했다. 그리고 맥주는 그런 마음들을 언제나 둥 둥 울려주었다.

이 한 잔은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화도 나지 않고 아무 고민도 생각도 나지 않으며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오직 현재만 있게 하고 욕은 커녕 캬 좋다 괜찮다 이 정도면 그래 살 만 하지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해주었다.

맥주는 너무나 가슴 서늘해지도록 차고 시원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 맥주의 주인은 나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 맥주의 주인은 나다.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 김혼비, <아무튼, 술> 14p.



<아무튼, 술>을 읽고 “술”을 주제로 썼습니다.

다음 글을 첫 문장으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시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퇴근 후 깜깜한 방에 불을 켜고 앉았을 때 갑자기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독서모임 백일장 미션으로 썼던 글에 약간의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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