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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Aug 22. 2019

전주, 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시처럼 느껴지는 곳.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전주.

전주, 라는 단어만 말해도 입에서 발음이 구르기 전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것은 너무나 좋은 것, 아름다운 것, 깊숙이 담아둔 것. 그립고 그리워서 애닳게 슬프도록 그리운 것.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과 이음동의어이다.

전주는 어떤 곳이야? 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간단히 말해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야. 두 번째 대학을 가면서 4년 정도 산 곳이야. 라는 말로 답이 되겠지만. 좀 더 길게 자세히 묻는다면, 글쎄. 실은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주는 내가 처음으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오롯이 혼자 서 보았던 곳이다. 첫 해에는 아, 이게 진정, 레알 ‘혼자’라는 거구나를 온전히 느끼며 정말 고독에 치를 떨었었다. 쓸쓸함, 외로움, 호젓함을 넘어 선 정말 ‘고 독 함’ 그 자체. 고독함은 단어도 그냥 바위처럼 우뚝한 고독함 자체로 느껴진다. 추움이 가시지 않았던 3월, 작은 방에서 웃풍이라는 것 때문에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얼굴이 너무 시려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잤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추웠었나 싶다가도. 아냐 진짜 완전 추웠어. 근데 고독해서 더 추웠던 것 같다.

흔들리는 창문과 창문에 서린 어둑한 그림자들이 무서워서 잠금장치를 여러 번 확인하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가로등 불빛은 왜 그렇게 드문드문 있는지 해만 지면 거의 뛰듯이 걸어 다녔던 기억도 난다. 집안일을 하면서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많이 날 때, 혼자 있는데 열이 펄펄 날 정도로 몸이 아플 때, 고요한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말 어느 때는 하루에 나 혼자 단 한마디도 안 한 것을 알았을 때는 흐느끼며 주륵주륵 울었다. 두 번째 대학이란 곳은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이리 클 것을 뭔 기대를 했는지, 첫 번째 대학보다 훨씬 훨씬 재미도 없고 배울 점도 없었고. 교수들의 강의는 하나같이 들을 만한 것이 없었으며. 각 고을에서 장원급제로 온 아이들이 몰려온 느낌의 과 분위기는 너무 답답하고 지루했다.



해가 질랑말랑한 시간 남천교 위에 펼쳐진 하늘, 꼬불꼬불한 전주천과 저 멀리 치명자산에서 불어오던 바람




그러다 어느 날 첫 해가 다 지나갈 즈음에 전동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다. 내 생애 그토록 아름다운 성당은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전주는 관광객이 많지 않았을 때여서. 해가 질랑말랑한 시간 남천교 위에 펼쳐진 하늘과, 꼬불꼬불한 전주천과 저 멀리 치명자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지나, 아른아른 노르주황 불빛의 가로등이 드리운 한옥마을을 천천히 걸어, 전동성당까지 가는 길은 미사를 드리기도 전에 늘 충만한 행복을 주곤 했다.


그렇게 몇 번 성당을 오고 가다 전동성당 성가대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 여기 청년 성가대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반갑게 맞아주셨던 신부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셨던 것, 고독하던 시절에 언제나 유머러스하시면서도 감동적이었던 강론들, 갑작스런 급만남에도 지니시던 매일미사 책을 덧씌운 책보를 선물로 주셨던 거나, 언제나 기도 속에서 만나자고 하셨던 말씀까지도.


전동성당 성가대에서 나는 막내였다. 아니 장녀 중의 장녀로 살던 내가 막내라니. 나는 처음으로 막내가 이렇게 좋은 거구나를 그곳에서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꼈다. 언니 오빠들은 늘 넘치는 사랑으로 뭉클뭉클한 따뜻함으로 대해주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일이 앞으로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는 것도 없이, 주는 것도 없이 나는 그저 많이 받고 받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참 눈물 날 정도로 고맙고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적은 생활비에 마음까지 쪼들리고 빈곤했던 생활에, 늘 너는 학생이니까 회비도 안내도 된다고 하기가 일쑤였고. 자취한다고 너무나 맛있는 반찬과 김치를 바리바리 싸주거나, 명절 때 들어온 참치캔과 스팸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몇 대에 걸쳐 전주에 살고 어릴 때부터 성당 활동했던 분들이 대부분이라, 성가대 공연이 끝나고 축하해 줄 가족이 없을 나에게 본인이 받은 꽃다발을 준다거나. 전주 관광객들이 몰려가는 곳들은 다 맛이 변한 곳들이라고. 진짜 맛집 중의 맛집을 데리고 가주거나. 함께 음을 맞추어서 연습하고 맞추어 하나의 노래를, 그토록 오래되고 의미있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부를 수 있었던 멋진 일도. 낯가리고 이방인처럼 겉도려는 나를 늘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일들도 다. 평생 못 잊을 것이다.



함께 음을 맞추어서 연습하고 맞추어 하나의 노래를, 그토록 오래되고 의미있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전주는 참 ‘멋’스러운 곳이다. 멋이 있는 곳. 깊은 멋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 멋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 작은 가게를 들어가도 맛이 보장되는 곳. 작은 소품 하나도 멋스럽게 놓아둔 곳. 계절에 따라 풍류를 아는 곳들이 전주에는 참 많다.


봄날의 전북대 벚꽃은, 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앎음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주었었고. 여름밤 오목대에 올라 정자에 앉아 들이키는 맥주와 비 오는 날 한옥마을에서 먹는 김치전과 막걸리는 그저, 지화자 좋고. 가을의 덕진공원 호수를 한 바퀴 돌며 보는 연꽃잎들과 호수 한 켠에 세워진 오리배 풍경은 ‘드라마 보통의 연애’에 나온 전주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그야말로, 가을 중의 상 가을이고. 아 아, 가을 하면 전주 향교의 은행나무 잎들이 카펫처럼 노오랗게 그득이 깔렸던 장면도 잊을 수가 없지. 아주 조용한 새벽, 겨울에 한옥마을에 가득 쌓인 하얀 눈들이 내려앉은 광경을 보면 또 어찌나 그동안 켜켜이 쌓아둔 마음이 위로가 되는지. 반찬으로 나온 갓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혹시 남은 것 싸주실 수 있나요? 했을 때 이거 다 가져가라고 한 봉지를 가득 싸주셨던 감동의 콩나물국밥집과. 전일슈퍼의 바삭바삭한 황태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무엇보다 전주는 참 ‘멋’스러운 곳이다. 멋이 있는 곳. 깊은 멋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 멋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



이렇게 적고 나니 완전 전주러버, 아이러브전주나 다름이 없다. 혼자서 오롯이 발 딛고 서는 법을 알려준, 감사한 사람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멋스럽고 멋드러진 멋이 있는 전주.


가끔은 너무 좋았던 기억들이 아득한 꿈이나 전의 생처럼 여겨지는 곳. 그 시절에만이, 그 시절이어서 만나서 함께 할 수 있었던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 그리울 때는 그저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곳. 사는 것이 각개전투처럼 고되고 지칠 때, 언젠가 아무 때나 다 때려치우고 전주 가서 살면 돼- 하는 곳. 그리고 그 자체가 참 위안이 되는 곳. 언제나 가면 그때처럼 걸어보고 불러보고 담아두고 싶은 곳. 아무리 문장으로 남겨보려고 해도 어떤 순간들은 결국 내 기억에만 있어서, 내 마음에서만 불러올 수 있는 곳. 그게 참 눈물나게 좋은 곳. 그래서 전주, 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시처럼 느껴지는 곳. 나의, 나의

전주.



전주, 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시처럼 느껴지는 곳. 나의, 나의 전주.





괜찮다. 오래 그리워했던 것들 찾아 나서기에는 언제나처럼 혼자여도 좋겠다. 다만 겨울이면 좋겠다.

-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글  / 사진 성지연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읽고,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전주에 대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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