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하림이 부른 ‘여기보다 어딘가에’라는 곡 제목을 보고선, 음악을 듣기도 전에 이거야! 싶었었다. 언제나 나는 여기보다 어딘가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 너무나 갈망했던 것, 기다려왔지만 기다렸는지도 몰랐던 것이 그 곳에 마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여기를 산다.
그 곳이 어디든 그 어딘가에 가면 이렇게 지긋지긋한 일상이 그리워질지도 몰라. 또 다른 일터로 느껴지는 집도 너무나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질지도 몰라.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느끼고,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지도 몰라. 어떠면 이런 삶 자체가, 일상 자체가 매일이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새삼 느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할지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다.
여행자의 눈, 이방인의 감탄과 호젓하면서 자유로워지는 마음. 때로는 순례자 같은 걸음 걸음들, 방랑자처럼 헤매기를 자처하고, 망명자처럼 정처없이 떠돌다가도, 내가 이 길의 키를 잡고 간다는 생의 감각과, 그래서 새삼스럽게 생겨나는 두려움과 그보다 커지는 용기들.
물론 여행은 준비 과정에서부터 힘들고, 내가 일상을 꾸리는 데 이렇게까지 많은 짐들이 필요했는가 새삼 놀랍고, 그럼에도 이것저것 쟁이는 나를 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은 긴장의 연속이며, 역시나 인생과 마찬가지로 여행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땐 절망스럽고, 기대했던 것보다 안하느니 못하게 너무나 실망스럽기도 하고, 왜 체력과 시간과 돈을 들여 사서 고생이지 싶기도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적성이라고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이 곳이 아닌 어딘가로, 여기보다 그 너머로 가보고 싶다.
길가에 세워 둔 자전거, 간판 하나 하나도 새롭게 느껴지는 곳. 너른 바다를 보며 양갱 하나를 먹어도 충만해지는 곳. 골목, 골목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는 곳. 익숙하지 않은 식당에서 들어가 먹은 음식이 맛이 없더라도 너그러워지는 곳. 내가 생애 여기를 또 언제 올지 몰라 어쩌면 마지막일 것 같은 곳. 일분 일초 시간이 가는 게 아쉬워지는 곳. 이러려고 그동안 고생했나 보상받는 것도 같고. 이거 하나면 다 된다 싶게 호사를 누리는 곳. 글과 사진으로, 영상과 음악, 작은 기념품 하나로라도 남겨두고 싶은 곳. 그렇지만 결국에 지금 이 시간 이 자리 이 순간이 영원히 내 마음에만 남을 것이 분명한 그 곳에,
언제나 나는 떠나고 싶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81p.
* 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고 ‘여행의 이유’에 대해 썼습니다.
글 성지연
그림 Richard Th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