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지연 Jul 01. 2020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거든.”

일과 사랑


이 책은 모두 밤에 읽었다. 평일마다 일이 끝난 후 초저녁부터 초주검으로 자고 일어나, 새벽에 조금씩 조금씩 읽었다. 일에 관해서는 우울하고 사랑에 관해서는 늘 그렇듯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었는데, 이 책을 읽은 어느 날은 밤에 계속 비가 왔다. 자다 깨서 일어나 듣는 빗소리가 좋았다.

좋아하는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유미가 우선하는 순위가 나오곤 한다. 순위는 그때 그때 자주 바뀌고는 하는데, 유미의 1순위는 애인이 되었다가 자기 자신이 되었다가 때로는 지금의 일이 되기도 한다.

<토베 얀손, 일과 사랑>은 제목 그대로 ‘일과 사랑’을 가장 중시 여겼던 토베 얀손의 이야기였다. 토베 얀손에게는 일도, 사랑도 모두 1순위였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매 순간 매 시절 매 생애 충실하고 성실해 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만약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랬기 때문에 만약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일도 중요하고 사랑도 중요하고 사람들도 중요하다. 일도 잘하고 싶고 사랑도 늘 하고 싶고 애정 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도 나누고 싶다.

이 책에서 토베 얀손이 그린 그림들 중 가장 좋아서 한참을 보았던 그림은 68쪽의 자화상이었다. 그림도 강렬하게 좋아서 한참을 보았지만, “이 여자의 어떤 면도 관람자에게 어필하거나 관람자의 눈을 즐겁게 해 줄 의도로 해석되지 않는다. 여자는 자립적이며, 타인의 시선에 무관심하다.”라는 글도 너무 좋아서 찌릿 짜릿했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최고 좋았던 화인 194화에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거든.”이라고 말해주던 장면처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거든.”이라고 말해주던 장면처럼.



다시 그 밤이 생각난다. 온통 고요한 가운데 툭 툭 투두둑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토베 얀손이 그린 그림들과 생애를 그린 일과 사랑을 보던 밤. 오랜만에 참 평안하고 행복하고 좋은 밤이었다.


일도 사랑도 사람도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어느 하나도 다 놓치고 싶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밤이 좋았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성유연.
나 자신이고 싶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명이니까.



나이 든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시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토베도 여든 살 때 그런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비록 고달프긴 했으나 흥미진진하고 파란만장한 삶이었노라고 답했다. 아주 행복한 삶이었다고. 그리고 살면서 가장 중시했던 두 가지는 일 그리고 사랑이었노라고 했다.
그러더니, 전혀 예상 밖으로, 만약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겠다고 했다. 어떻게 다르게 살지 분명히 밝히진 않았지만. 299-300p.



* 툴라 카르얄라이넨, <토베 얀손, 일과 사랑>을 읽고 썼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월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