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걸 알고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지고 좋아서 뭔가를 이루었다면, 내 노력만이 아니라 다른 요인(사람, 상황, 사회, 운)이 함께 이루어졌음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은 노력보단 운이 좋아서라는 걸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반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노력 때문만이 아닌 것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이 뭔가를 결과적으로 이루어지내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과정을 인정하고 긍정해줄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계획한다고 인생이 그거대로 다 되는 게 아니니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인데 그럼에도 그 동기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자신)과 비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 너는 너야.
진짜 노력했음에도 바닥의 바닥의 바닥을 쳐보거나 한 발만 더 딛여도 갈 곳 없는 낭떠러지에 가보았던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 터널의 끝이 여기까지만 인 줄 알았는데, 시발 와보고 보니 또 있었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잘 지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거 아는데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선하고 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
내 개인의 노력은 노력대로 중하고 미미한 노력들이 모여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되, 사회구조와 환경에 대해 관심과 비판적인 시선을 함께 거두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잘되면 돼 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음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있다는 걸,
그리고 때로는 정말로 그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좀 쉬어가도 돼. 뭘 이루지 않아도 돼. 더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좀 아는 것도 좋아한다. 노오오오오오력이 좀 지긋지긋하다는 것도.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최선의 노력임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과거에 지수는 종종 친구들에게 묻곤 했었다.
“나 엉망이야?”
“아니.”
“그럼 진창이야?”
“아니야.”
친구들은 항상 아니라고 말해주었고, 지수는 믿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묻지 않게 되었다. 세상이 엉망이니까 자신도 조금 엉망이어도 될 거라고. 화수 같은 사람들이 너무 가지런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건, 돌이켜 생각하면 과한 노력이었다고......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다. 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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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땅에 이십만 년을 살았는데, 장미는 사천만 년을 살아왔다는 걸 아시는지?
일단은 무더기 장미 아래 무덤들을 지키고 섰다. 술래의 역할을 하고 나면 함께 누울 것이다. 꽃잎 아래에, 흙 아래에, 눈 아래에, 나 다음의 술래에 대해서는 짠한 마음이 있다.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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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켜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331p.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노력에 관하여 썼습니다. 이는 정세랑 작가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 성지연 / 그림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David Hock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