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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l 01. 2023

서울에서 만난 윌리엄 터너

오늘하루 도슨트 6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까요? 코로나로 인한 격리와 마스크 의무도 해제되었으니, 이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어디든 상관없지만, 누구와 가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 누군가가 어디를 가자고 하면, 또는 내가 그 누군가에게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간다. 


나는 무슨 복인지 모르겠지만, 어디를 가자고 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 그 미녀(미술관 여자)들이 요즘 중앙아시아 미술에 관심이 간다며, 국립중앙박물관 투어 겸, 서울 호캉스를 가자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실의 오타니 컬랙션을 메인으로 2박 3일의 일정을 계획하고 질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내내 오타니이야기를 이어간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오타니가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라는 거대란 플랜카드가 바람에 펄럭였기 때문이다. 평소 윌리엄 터너이야기를 많이 했던 미녀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펼치며 "저건 꼭 봐야 해~"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예감했다. 언제나 꼭 미녀들과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일이 오늘도 일어날 것이라고~ 


미술관 앞에서 미녀(미술관 여자)들은 터너를 만나고 밥을 먹느냐, 터너를 만나기 전에 밥을 먹느냐, 밥을 든든히 먹느냐, 간단히 먹느냐의 문제로 고민했다. 그 와중에 나는 머릿속으로 식사와는 별개로 와인 한 병을 까느냐, 마느냐를 혼자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티켓 웨이팅 줄에 합류해서 재빠르게 식사 후 관람가능한 시간대로 티켓팅했다. 그리곤 발걸음을 그때 그 와인이 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옮겼다.




역시 전대를 허리에 차고 있는 내가 가는 곳으로 미녀들은 올 수밖에 없었다. 미녀들을 끌고 가며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파리의 라울뒤피에 이어 이번엔 영국의 터너를 취중관람할 생각에 뿌듯했다. 



예술은 삶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내셔널갤러리는 왕실도 귀족도 아닌 영국 국민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라고 외치며, 전쟁 중에도 한 달에 한점 미술작품을 선정해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이달의 그림 전시를 했다고 한다. 근로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터너의 그림을 보는 내내,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나의 일생을 돌아보며 위로받았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역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 불리는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보았다. -미녀(미술관 여자)들은 항상 화가의 이름을 풀네임으로 부르라고 나에게 말했다. 어렵지만 풀네임으로 부르련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본 터너의 그림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이별

1837년 이전

캔버스에 유화

146*236cm

내셔널갤러리 런던, 1856년 터너 유증


헤로와 레안드로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연인이다. 세스토스에서 아프로디테의 사제로 지내는 헤로와 바다 건너 아비도스에 사는 레안드로스가 아도니스 축제에서 만나 사랑을 했다고 한다. 그 둘은 집안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었다.(- 과거 신전의 여사제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것 같다. 거칠게 표현하면 당시 여사제는 매음을 주로 했다고 한다) 에로스는 사랑의 화살로 둘의 사랑을 이어주었는데, 결혼의 신 헤멘은 둘을 결혼으로 이어주지 못했나 보다. 


사랑에 빠진 레안드로스는 매일 밤 헤로를 만나기 위해 바다를 헤엄쳤고, 헤로는 그를 위해 등불을 들고 기다렸다. 터너의 그림 속 장면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 레안드로스가 헤엄을 치다가 바다에서 죽고, 헤로도 그 슬픔에 견디다 못해 탑에서 죽게 된 이야기이다.

 


구글어스로 레안드로스가 매일 헤엄친 곳을 찾아보았다. 튀르키예와 그리스사이의 어느 해협이다. 



신화의 주인공인 레안드로스와 헤로는 터너 그림 안, 어디에 있을까. 보통 주인공이 그림의 가운데 오는 게 일반적인데, 그 둘은 물가에 흐리게 표현되어 있다. 역시 낭만주의답다. 에로스는 자신의 화살과 활을 바닥에 내팽기치고서 한 손에는 헤로의 등불을, 다른 한 손에는 히멘의 횃불을 들고 있다. 아마 등불과 횃불은 이미 꺼졌을 텐데 말이다. 에로스의 날개는 힘없이 쳐져있고, 에로스 옆의 결혼의 신 히멘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머리에 대고 있다. 


히멘도 날개가 있는데 그의 날개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양옆으로 조각상들은 무언가 깊이 생각에 빠져있다. 나는 잠시 에로스 옆 조각상이 되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떠올려본다. 아직은 취중관림이니까.


이 생각이 끝날 때쯤이면 와인의 취기도, 사랑의 슬픔도 터너의 구름 가운데로 사라지겠지. 


그런데 영어로 hymen이 결혼의 신 Hymen과 같은 건 뭐야.





오늘하루 도슨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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