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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May 10. 2021

오늘은 엄마의 공간을 몰래 빌릴게요

5월의 이야기.

어린 날의 우리 가족은 종종 해운대에 갔다.

 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간이 되면, 이제 놀러 나가자고 엄마와 아빠를 졸랐다. 해가 떨어지면, 하고 엄마도 아빠도 계속 미루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등쌀에 못 이긴 엄마가 플라스틱 보냉백에 삼겹살과 김치와 밥을 차곡차곡 담으며 나갈 채비를 하면 그제야 아빠도 못 이긴 척 돗자리를 챙기고 오래된 봉고차의 시동을 켰다. 여름밤, 우리 가족은 가끔 그렇게 해운대 백사장으로 달려갔다.

 바다에 가자고 종일 졸랐지만, 소금기 가득한 물에 닿아 몸이 끈적해지는 것이 싫어 바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코끝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는 비릿한 바닷물의 냄새도 싫었다. 대신 손끝에서 미끌어지는 모래의 느낌이 좋아서 주로 모래 위에 철퍼덕 앉아 놀았다. 예쁘게 깨진 조개껍질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그렇게 딴짓을 잔뜩 하다가도 삼겹살 냄새가 그득해지면 엄마 곁으로 엉덩이를 슬그머니 가져다 댔다. 손이 모래투성이라는 핑계로 엄마가 입안으로 넣어주는 고기와 김치를 배부르게 얻어먹으면 더웠던 날씨로 뜨거워졌던 온몸이 왠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가했던 밤 나들이 추억은 그곳이 복작거리는 관광지가 되면서 잊혀갔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벌건 대낮에도 수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곳, 자꾸만 빼곡히 들어서는 높은 빌딩들, 좋은 것보다 싫은 것이 늘어났다. 거긴 외지인이나 가는 곳이지, 하면서 우리는 점점 해운대에 가지 않게 되었다.

 조선비치호텔(웨스틴 조선의 옛 이름) 앞까지 넓게 펼쳐졌던 해안선은 그 영역을 줄여서, 가끔 지나가다 만나는 해변에선 모래를 쏟아붓고 있는 중장비들이 우뚝 서 있었다. 왠지 이러다 해변이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두려웠다.

 침식되는 것은 내 어린 날의 추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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