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선생님은 술을 먹어야 시를 쓰시나요?
술꾼, 이백 선생님입니다.
술에 취해 시를 읊고 다니며 한시의 형식을 과감히 깨버리셨다는 분.
이런 분이 계셔서 그런가. 서예를 배우러 갔는데 선생님이 “너 술은 좀 하니?” 하셔서 “즐깁니다!” 했더니
싱긋 웃으면서 자세가 되었다고… 같이 술이나 먹자고 하셨습니다…
글자 많이 배웠습니다. 숙제 많이 했습니다. 같은 말보다 “선생님이랑 한 잔 하고 싶어서 왔어요.” 하는 인사를 더 반기십니다.
저는 이백의 제자가 될 상인가요.
그래서 두보는 이백을 떠올리며 이런 시를 지었다고 해요.
李白斗酒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来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
이백은 말술에 시 100편을 짓고
장안의 저잣거리 술집에서 잠잔다오
천자가 오라고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은 채
자칭 ‘신은 주중선(酒中仙)입니다’하였네
- 두보(杜甫),《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
술 속의 신선이라니, 술독에 빠져있다는 말을 참 고상하고 정성스럽게도 하신다 그죠. :)
그런 그의 술을 사랑하는 시들을 여러 편 배웠습니다. 저는 뭔가를 설명할 때-특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거창하거나 미사여구를 잘 붙이지 않고 담백하게 사실만 짧고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편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는 딱히 무척 좋아하지 않는 뉘앙스로 전달이 될 때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격하게 좋아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나…)
요란스럽지 않고 정성스럽게 좋아하는 것들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백의 시들을 들으면서 정성스러운 그의 술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꼈어요.
자고로 좋아하는 것은 좋아한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해야 사람들이 알아준다고 했어요.
춘야연도리원서 (春夜宴桃李園序)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若夢하니 爲歡幾何오
古人秉燭夜遊는 良有以也로다
況陽春은 召我以煙景하고 大塊는 假我以文章가
하늘과 땅은 모든 것들의 역려(逆旅)이고,
빛과 그늘은 영원한 과객(過客)이다.
부평초 같은 인생 꿈만 같으니, 기뻐할 일이 얼마나 되리오.
옛날 사람들이 촛불을 붙들고 밤에 놀았던 데는 진실로 이유가 있도다.
하물며 따뜻한 봄날이 우리를 아름다운 풍경으로 부르고, 대지는 우리에게 형형색색의 문장(文章)을 빌려 준다.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 之樂事하니
群季俊秀하여 皆爲惠連이어늘
吾人詠歌 獨慚康樂이 로다
幽賞未已에 高談轉淸이라
복사꽃, 오얏꽃 아름다운 동산에 모여 형님과 동생 사이의 즐거운 일을 펼치노니,
여러 아우들은 준수(俊秀)하여 모두 혜련(惠連) 이거 늘,
나의 시와 노래는 홀로 강락(康樂)에게 부끄럽도다.
그윽한 감상 마치기도 전에 높은 담론은 청아하여라.
開瓊筵以坐花하고 飛羽觴 而醉月하니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 오
如詩不成인댄 罰依金谷酒 數하리라
화려한 자리 펼쳐 꽃 위에 앉고, 날개 달린 술잔 날려 달빛에 취하니,
아름다운 시가 없다면 무엇으로 이 고아(高雅)한 회포를 펼칠까?
만일 시를 짓지 못하면 벌은 ‘금곡(金谷)의 술’에 의하여 셈하리라
* 금곡(金谷)의 술 : 중국 서진(西晉)의 문인이자 거부였던 석숭(石崇: 249~300)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형주자사(荊州刺史)에 부임하면서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되어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데, 학문과 시 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그는 낙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이라는 호화로운 별장을 짓고, 관리나 문인들을 초대하여 술잔치를 자주 열어 풍 류를 즐겼는데, 이 금곡원의 주연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했다고 한다.
삶을 짧고 시간에 쫓겨 밤이 되어도 촛불을 붙들고 놀았는데, 봄이 되어서 형형색색으로 빛나니 어찌 놀지 않을 수가 있는가, 놀지 않으면 미친것이다 하는 소리다. 하지만 날이 좋으니 역시 술을 마셔야 한다는 소리. 좋은 풍경을 만나면 돗자리 펴고 누워서 맛있는 거 먹고 싶은 마음 다들 있잖아요. 근데 옛사람들의 놀라운 점은 우리처럼 음악이나 듣고 부르고 설렁설렁 놀지 않고, 시를 지으면서 이 순간을 기록했다는 것. 그게 너무 로맨틱한 점. 여기 끼여서 시를 짓는 척을 하다가 금곡의 술의 벌을 받고 싶군요.(어차피 시를 못쓸 것이므로)
우인회숙(友人會宿)
滌蕩千古愁하고 留連百壺飮을
良宵라 宜且談이오 皓月이라
未能寢을 醉來臥空山하니 天地卽衾枕을
천고의 시름 깨끗이 씻어버리고 백 단지의 술을 연달아 마시네
좋은 밤이라 이야기하기 좋고 밝은 달이라 잠을 이룰 수 없네
취기가 몰려와서 빈 산에 누우니 하늘과 땅이 곧 이불과 베개로다
술은 역시 밤새 마시는 것이 제일이죠? 진짜 곱상하게 술주정한다. 저는 이백과 다르게 시름이 있을 때는 술을 멀리하는 편이고,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백 단지의 술을 퍼 먹는 편인데 이러나저러나 밤새 술 먹는 것은 즐겁죠. 최근 가장 기억에 나는 술자리는 서예 선생님이 거문고를 타 주는 달 밝은 밤에 시골에 있는 서원에서 막걸리를 들이켠 것이었습니다. 달을 기다리면서 새벽 2시까진가… 마셨죠. 호호.
월하독작(月下獨酌
花下一壺酒로
獨酌無相親을
擧盃邀明月하고
對影成三人을
月旣不解飮하고
影徒隨我身을 [이나]
暫伴月將影하니
行樂須及春을
꽃 아래 한 단지 술로 홀로 잔을 칠 뿐 서로 친할 이 없네.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와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네. 달은 이미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내 몸만 따르지만 잠시 달과 그림자와 짝을 하니 즐거움은 마침내 봄에 미쳤네
我歌月徘徊하고
我舞影凌亂을
醒時同交歡타가
醉後各分散을
永結無情遊하야
相期邈雲漢을
내가 노래하면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는 어지럽네. 깨었을 때에는 함께 어울려 즐기다가 취한 뒤에는 각자 나뉘어 흩어지네. 영원히 무정한 교유를 맺어 아득한 은하수를 서로 기약하네
혼자 술을 마셔도 고상할 수 있다. 저도 혼자 홀짝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은 여름이라서 시원하게 칠링 된 화이트 와인을 집안일하면서 홀짝거립니다. 혼자 마시지만 달과 나의 그림자가 나의 술벗이 되어준다니 참 로맨틱한 사람이다. 혼자서도 꾸역꾸역 어질어질 춤출 때까지 술을 마시다니 당신의 피는 알코올로 이루어져 있나요. 호호.
산중대작(山中對酌)
兩人이 對酌山花開하니
一盃一盃復一盃를
我醉欲眠君且去하니
明朝에 有意抱琴來하소
두 사람이 잔을 마주할 때 산꽃이 피었으니
한 잔, 한 잔, 다시 한 잔
나는 취하여 자고 싶은데 그대는 가리니
내일 아침에 뜻이 있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
일배일배부일배 라고 흥얼거리니까 너무 귀엽고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한시 형식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라고 하는데, 형식을 자꾸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시를 짓고 흐드러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이백. 널널하고 귀여운 사람이라서 좋습니다.
일배일배부일배 중얼거리면서 오늘밤엔 술잔에 술을 채워볼까봐요.
저는 밖에서 술 마시다가 술잔에 달이 뜨는 것을 사랑하는 편입니다.
오래된 고전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개인적인 기록을 남겨둡니다.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것은 아니지만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기억하면 더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 (제가 잘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