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너도 여기_차테이 하토(茶亭 羽當)

by youyou

첫날,이었다. 지하철 코인로커에 넣어둔 캐리어를 숙소 주인이 잘 챙겨줬을까 걱정이 되는 시간이었고, 비가 추적추적 바람도 세게 불기 시작해서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친구가 갑자기 시부야로 이끌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다고 말도 없었던 것은 첫날부터였나 보다.

역에서 내려 골목으로 진입하던 순간,

"앗, 나 어디 가는지 알 것 같아."

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저기 갈 거잖아 저어기!

차테이 하토(茶亭 羽當)


아주 오래된 커피숍이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바리스타가 있고 내부에서 흡연이 가능한, 일본식 표현으로는 끽다점, 킷사텐(喫茶店) 이다. 이 가게를 알게 된 계기는 블루보틀 때문인데, 블루보틀의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이 이 가게를 극찬했다.

작년 여름, 도쿄를 방문했을 때부터 여기를 꼭 가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동행자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것도 기피했고, 이 근처에 왔을 때엔 밥집 오픈 시간과 아슬아슬 겹쳐 동행자의 저녁을 위해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첫날 친구가 이 곳으로 안내하다니..

아주 오래된 공간이다. 나뭇결에 차곡차곡 커피와 담배의 향이 차 있어 그동안의 시간을 냄새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오래된 곳이었다. 실내 흡연이 가능한 곳이라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도 있다. 평소에 담배냄새라면 손사래를 치고 싫어하지만 웬일인지 이 날은 나쁘지 않았다. 진한 담배냄새가 나를 달랬기 때문이었을까.

시간이 켜켜이 앉은 가구들 사이로 일본 특유의 꽃꽂이가 있는 내부는 따뜻했다. 꽃꽂이는 섬세하기보단 자연스러움을 조금 더 강조한 느낌이었는데, 이 조차 한국이랑 느낌이 다르다며 친구와 속닥속닥.

기본적으로는 융드립으로 커피가 내려지고 있었다. 원두를 고르자 오래된 그라인더로 원두를 슥슥 갈고는 무심하지만 부드러운 동작으로 드립을 한다. 무심하게 드립을 하고 돌아서는 듯 하지만 금세 또 시간 맞춰 돌아와 커피를 보듬는 손놀림이 무척 좋았다. 군더더기 없는 정확하고 간결한 손놀림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커피는 왜 기본 드립이죠 마스터님? 융드립 일본어로 뭐라고 하죠? 네루 드립입니까?

그래도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첫날의 마법이었을까, 아니면 마스터님의 손길 때문이었을까.

따뜻하고 맛있는 한 잔. 바에 앉는 버릇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괜히 손동작을 눈으로 좇고 뭘 내리시나 유심히 바라보고 신기한 음료는 이름도 물었다. 오레구랏세(オ-レ-グラッセ)라고 부르던 커피와 달달한 우유를 재료로 하는 아이스커피가 가장 궁금했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놓았다.

찬장을 가득 메운 가지각색의 커피잔이 너무 좋았는데, 손님에게 어울리는 잔을 골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디테일이 예쁜 잔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눈에 남는 일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마스터 눈에 비친 내 이미지는 저렇게 고운 색의 잔이었던가. 다시금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아니구나 잘 마셨습니다. 이 날의 한잔은 여행하는 내내 곱씹고 즐거워하고 그리워하고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첫날 생각나지 않아? 마스터님 그립지 않아? 라며 커피를 마실 때마다 떠올리며 이야기 나누었고, 지금 가자 거기라고 덧없는 장난도 계속하게 되는 그곳.


조금 급한 영상이지만, 마스터님의 드립 보실래요?

茶亭 羽當

東京渋谷区渋谷1−15−19

AM10:00 - PM11:30

매거진의 이전글내 사랑을 담아, 루피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