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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Apr 29. 2021

[영화 리뷰] 노매드랜드 (2021)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삶 (프랜시스 맥도맨드/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노매드랜드> 정보

감독: 클로이 자오

장르: 드라마

출연: 프랜시스 맥도맨드, 데이비드 스트라탄

러닝타임: 108분

수상정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원안: 제시카 브루더 <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경제위기 속 유목민이 된 이들의 삶

 2011년의 미국, 3년 전의 금융위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서 '펀(프랜시스 맥도맨드)'이 살고 있던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 지역의 탄광이 망하고, 마을 자체가 사라진다. 남편을 암으로 잃은 것에 이어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마을까지 잃게 된 펀은 집을 버리고, 벤 한 채를 구입해 유목민의 삶을 택한다.

마을을 떠나 차 안에서 사는 노매드의 삶을 시작한 펀은 아마존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일찍이 노매드의 삶을 택한 동료 '린다(린다 메이)'를 만난다. 아마존에서의 근무를 끝낸 펀은 린다의 소개를 통해 노매드인들의 커뮤니티인 'RTR(러버 트램프 랑데부)'을 접하게 되고, 조금씩 이들의 삶에 적응을 해 나간다.

 국립공원 관리인, 햄버거 가게, 감자 공장 등 돈을 벌기 위해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노매드의 삶을 영위하던 펀은 어느 날 차에 문제가 생기면서 2,300달러라는 큰 돈이 필요해진다. 결국 그는 오랫동안 왕래하지 않던 언니 '돌리'를 찾아가고, 언니는 돈을 빌려주면서 펀에게 자신과 함께 살 것을 권유하지만 펀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후 펀은 노매드 생활 중 만났다가 가족의 곁으로 돌아간 '데이브(데이비드 스트라탄)'의 집을 찾아가는데, 함께 살자는 말을 빙자한 그의 청혼에 곧바로 다시 길을 떠난다. 그렇게 1년 넘게 노매드인의 삶을 지속한 펀은 RTR 커뮤니티를 이끄는 밥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펀은 자신이 살던 마을로 돌아가 과거의 아픔과 추억들을 온전히 마주한다. 무거운 짐처럼 어깨에 지고 다녔던 지난 날 속의 흔적들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그는 자유로운 여정을 떠날 수 있게 된다.

노매드인, 그들은 누구인가

 현대판 유목민을 가리키는 영화 속 노매드인들의 삶은 현실에서, 특히 땅덩이가 작은 나라인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유형의 사람들이다. 영상물로 흔히 다뤄진 적이 없는 소재인만큼 <노매드랜드>가 소개하는 이들의 생활방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새롭고 낯설다. 단순히 홈리스라는 단어로 이들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발적으로 나그네의 삶을 택했고, 캠핑카나 RV벤이 번듯한 거주지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노매드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적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진 이후,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금은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일생을 바친 노동의 대가가 병든 육체와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들은 하층민이 핍박받는 사회적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택한다. 집 대신 벤과 캠핑카를 구매하고, 차 안을 자신의 집처럼 꾸미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같은 처지의 서로를 돕는다.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자들, 죽지 않기 위해 버텨내는 유랑

 노매드인들의 여정에는 경이로운 자연의 경관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고요의 적막이 함께한다. 딱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돈을 벌고, 도시인의 시끄러운 생활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따위는 없다. 이들의 삶을 관망하는 입장으로서는 낭만적인 힐링 여행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펀의 생활을 단 하루만 지켜보더라도, 현대판 유목민들에게 낭만 따위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가족이나 일자리 혹은 거주지라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을 상실했다. 금방이라도 죽고 싶은 처지에 놓였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 유랑하는 삶을 택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싶지만, 일자리는 없고 시간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일생이 무너져내리기 직전, 절벽 앞에 놓인 이들이 목놓아 울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가기 위해 발휘한 최소한의 동력이 여기 노매드인의 삶이다. 힐링여행? 욜로? 그 딴 건 없다. 매직 아워 속 환상과도 같은 풍경은 아주 잠깐 스쳐가는 빛일 뿐, 이들이 온종일 직면하고 있는 것은 길가에서 객사하지 않기 위해 정신 차리고 자급자족해야 하는 시간들이다.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삶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맨드)'는 자유로운 여정을 떠나는 노매드인의 삶을 택했지만, 표면적인 모습만이 자유에 기반할 뿐 그의 심리상태는 완벽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의 과거 흔적과 추억들로 가득 채운 낡고 작은 캠핑카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기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접시를 깬 데이브에게 화를 낸 것 역시 이러한 집착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것이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무거운 기억의 짐을 어깨에 쌓아올린 채 떠도는 그의 모습을 단순히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기억들은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세상과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수반한다. 펀은 이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여정에서 소중한 물건 하나하나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누군가가 기억해 주어야 떠난 이들의 삶이 조금은 헛되 보이지 않을테니 말이다. 펀은 오랜 시간 끝에 과거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지만, 캠핑카를 끌고 떠도는 그의 머릿속에 만큼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과 소중한 사람들이 여전히 담겨져 있을 것이다.

사실적이라 더 아름다운 영화

 <노매드랜드> '펀'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허구의 스토리를 기반한 영화다. 하지만, 엄연히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고, 배우가 아닌 실제 노매드인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도 함께 내포한다. 노매드인으로서의 낯선 삶을 시작한 '펀'을 연기한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곧 관객의 시선을 대변한다. 유목민으로서의 하나하나가 모두 처음인 그의 행동들은 마치 노매드인들의 A to Z를 관객들에게 소개해주는 듯하다.

 실제 노매드인들이 배우로 참여하고,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을 많이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진짜 이야기에 깊이 몰입이 된다. 감독은 이들에게 어떠한 연민이나 동정을 부여하지도 않고, 감정의 과잉을 묘사하지도 않는다. 한 발 멀리 서서 이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리얼하게 담아내고, 연출 또한 매우 건조하고 싱겁다. 노매드인들의 감정을 부각하지 않음으로써 영화적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유도하기보다는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데에 집중력을 이끌어낸다. <노매드랜드>가 아름다운 영화인 것은 바로 이 진실성 때문이다.

프랜시스 맥도맨드의 묵직한 존재감

 <노매드랜드>에는 주연으로 열연한 '프랜시스 맥도맨드'를 제외하고는 전문 배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맥도맨드는 영화 촬영을 위해 몇 개월 가량 노매드 삶을 체험했고, 실제 노매드인들에게 그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촬영을 진행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라는 정체성을 오로지 배우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실제 노매드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맥도맨드가 연기한 '펀'은 가상의 캐릭터가 아닌 실제 노매드인 중 한 사람인 것처럼 비춰진다. 이는 우리가 배우의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닌, 노매드인의 삶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펀은 극의 주인공이지만, 자신의 과거사를 줄줄이 읊지도 않고 눈물 섞인 회상을 하지도 않는다. 즉, 극적인 감정을 유발할 만한 포인트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결핍을 모두 압도하는 것은 맥도맨드의 표정이다.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은 배우의 건조한 얼굴에는 고독과 슬픔, 회한과 미련, 그리고 일말의 희망과 익살이 모두 담겨져 있다. 무표정에 기반하지만, 이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눈빛 연기가 주절대는 이야기 없이도 충분한 서사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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