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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Aug 08. 2021

팜 스프링스 (2020)

오늘만 사는 두 남녀의 행복 찾기 (코미디/훌루/로맨스/앤디 샘버그)

팜 스프링스 (2020)

감독: 맥스 바버카우

출연: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 시몬스

장르: 로맨스, 코미디

러닝타임: 90분

배급: Hulu (훌루)

개봉일: 2021.08.19 (한국)

휴양지 결혼식, 갖혀 버린 두 사람

 11월 9일은 팜스프링스 리조트에서 신랑 '에이브'와 신부 '탈라'의 결혼식이 있는 날. 신부 탈라의 친구 '미스티'의 남자친구로 결혼식에 참석한 '나일스(앤디 샘버그)'는 결혼식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축사를 남기며 파티를 유유자적 즐긴다. 마치 이 날을 처음 겪는 게 아닌 사람처럼. 동생의 결혼식에 큰 흥미가 없던 언니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는 나일스와 대화를 하며 그에게 끌리게 되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낼 뻔한다. 동굴 근처에서 사랑을 나누던 사이 갑자기 누군가 나일스에게 화살을 쏘며 죽일 듯이 쫓아오고, 나일스는 그와 함께 동굴로 빨려들어간다. 세라는 영문 모를 상황에 나일스를 걱정하며 동굴로 따라가게 되고, 결국 세라는 나일스와 함께 무한 반복되는 하루에 갇히고 만다. 

뻔한 소재를 유쾌하게 비트는 재주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불문하고 숱한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었던 '타임루프'는 어느덧 식상해져버린 주제다. 세부적인 줄거리에만 차이가 있을 뿐 타임루프물은 기본적으로 죽음 혹은 잠이라는 장치로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동일한 플롯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해피데스데이>, <러시안 인형처럼>과 같은 작품에서처럼 반드시 죽어야만 하루가 리셋되는 것은 아니지만, <팜 스프링스> 역시 결혼식 당일이 무한반복되는 스토리가 메인이기 때문에 소재 한정으로는 신선함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소재의 한계가 지닌 약점을 가볍고 유쾌한 리듬감으로 보완하며 고전적인 플롯에 근래의 감성을 더한다. 세라가 타임루프 세상에 들어오게 되면서 두 주인공은 환장의 케미를 보여주는데, B급 코미디 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유머가 풍성하다. 사실상 난장판에 가까운 극 중반부는 판타지 코믹 활극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채롭고, 인물들에게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극의 공간적 배경 또한 휴양지 리조트라는 작은 공간으로 제한적이지만, 빠른 속도감을 통한 연출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지루함을 탈피한다. 뻔한 소재를 활용한 작품임에도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와 같은 내러티브의 신선함 때문일 것이다.

양산형 B급 코미디 영화와 다른 이유

 그렇다면, <팜 스프링스>는 그저 단순하게 웃기기만 한 영화일까? 만일 본작이 여타 B급 코미디 영화들처럼 맥락 없이 웃기는 데만 집중했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극은 중반까지 오늘만 사는 인생을 즐기기 시작한 주인공들의 코믹한 기행이 중심이지만, 이와 같은 생활에 일명 '현타'를 느낀 세라의 심경 변화를 기점으로 영화의 메시지는 달라진다. 매일매일이 반복되는 평화로운 하루에서 유유자적 하고 싶은 나일스와 달리 세라는 자신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고자 애쓴다. 양자물리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스스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설정은 소재의 클리셰를 깨부수며 신선함을 더한다. 

 무엇보다 세라는 나일스처럼 휴양지에서의 편안한 하루가 반복되는 삶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의 심리적인 고통과 마주하며 다시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죽지도, 아프지도 않는 영원한 삶을 두고 고독과 허무를 실감하며 시간이 흘러가는 현실을 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영화의 코믹함과 가벼운 전개에 묻혀 인물들의 고뇌가 심각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영원과 무릉도원 같은 삶이 능사가 될 수는 없으며 누군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만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전한다. 다소 철학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영화가 가진 청량한 리듬감을 잃지 않으며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팝콘무비로 소비될 영화는 아니라고 본다.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력

 주연과 제작을 맡은 '앤디 샘버그'는 SNL의 크루 출신으로 유명한데, <팜 스프링스>에서만큼은 그보다 여주인공 '세라'를 연기한 '크리스틴 밀리오티'의 연기력이 상대적으로 돋보인 것 같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듯한 울적한 표정부터 타임루프를 만끽하며 난동을 부릴 때의 광기, 그리고 환히 미소지을 때의 사랑스러움까지. 9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이지만, 그 시간동안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며 극에 활력을 더한다. 코미디로는 빠지지 않는 '앤디 샘버그' 옆에서도 코믹 연기로 우위를 점했다는 것은 '크리스틴 밀리오티'의 열연이 돋보였음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앤디 샘버그'의 존재감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하와이안 셔츠와 맥주캔을 들고 다니며 느긋하고 낙천적인 행동들을 영락 없는 타임루프에 갇혀 무념무상이 된 인물 그 자체다. 한량 같은 나일스와 행동력 강한 세라의 정반대의 성격이 대비됨으로써 두 인물의 조화는 더욱 빛을 발하고, 마치 SNL 크루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것마냥 기량을 맘껏 발휘한다. 


별점: ★★★

한줄평: 무한 반복되는 하루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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