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녔던 단골미용실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잔치가 열리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난 낯가림이 심해 '딱 머리만 하고 가는 말 없는 손님'이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 폴폴 나는 그곳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파마하러 들른 어느 날. 미용실 문을 열자마자 참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정 수다 멤버들이 모여 커다란 양푼에 뭔가를 비벼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심심찮게 봤던 풍경이라 난 나대로 원장님께 머리를 맡겼다.
그런데 말이지. 집에서 밥 먹고 나왔는데도 그 비빔밥이 뿜어내는 냄새가배꼽시계를 울렸다.
"저게 뭐지? 뭘로 비볐길래 고소하고 청량하고... 아윽 너무 맛있겠다. 얼굴에 철판 깔고 한 숟갈 달라할까?"
내가 파마를 하는 건지 커트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비빔밥 냄새에 빠져 버렸다. 갈등만 때리다가 결국 얻어먹지는 못하고, 머리 감을 때 원장님께 물어보니 노각무침 비빔밥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노각무침은 식당 가서 나오면 먹었지 집에서 해먹을 생각은 안 했다. 그러다 미용실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이후로 무쳐 먹기 시작했다.
여름에 바짝 먹어야 하는 노각은 오독오독하게 무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식재료가 아닐까 싶다. 저거 하나 맛나게 먹으려고 무쳤다가 "이게 뭐야?" 했던 적이 겁나게 많다. 여름만 되면 노각 사다가 껍질 신나게 벗기며 무치길 반복했더니 나아지더라는. 말 나온 김에 오늘 한번 무쳐보는 거다. 밥 비비기 딱 좋게!
씨를 제거한 노각을 세로로 4등분 한 뒤 어슷 썬다.(국대접으로 수북이 하나 분량) 노각은 보통 길쭉하게 써는데, 난 수분 빼기 좋게 어슷 썰기를 하고 있다.
노각이나 오이 무침을 할 때 설탕+소금보다 물엿 또는 올리고당+소금 조합이 수분을 더 잘 빼서 그렇게 하고 있다. 올리고당 두수저, 꽃소금 반수저 넣고 고루 섞은 뒤 30~40분 절이기.
절이기가 끝난 노각은 물이 저렇게나 많이 나오지만 물 빼기는 지금부터 시작. 노각을 물에 헹구지 말고면포에 넣고 눈앞이 노래지도록 꽈~~ 악 짠다.
수분을 뺏겨 한주먹으로 줄어든 노각을 양념해 보자. 난 노각을 무쳤을 때 물이 덜 생기고, 뻘건 빛깔을 내기 위해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섞어 쓴다.
고추장 반수저, 고춧가루 반수저 또는 평평하게 한 수저, 마늘 약간. 매실액 한 수저(매실액을 쓰지 않는다면 올리고당과 식초 반수저씩)
다진 파 약간 넣고 양념이 잘 배이도록 바락바락 무치기. 맛보기 하고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마무리는 깨소금으로.
노각무침은 오래 두는 것보다 한두 끼 양으로 무쳐 먹고 있다. 특유의 청량한 향을 느껴보는 것도 중요해 비빔밥을 할 때나 참기름을 넣을 뿐, 반찬으로 먹을 때는 쓰지 않는다.
난 노각껍질을 벗기자마자 집안에 퍼지는 향긋한 기운이 참 좋다. 여름이구나 싶기도 하고. 더위에 지쳤을 때 비빔밥해서 먹으면 입안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는 듯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