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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린 May 10. 2016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소설 <데미안>을 읽고

책을 펴자마자 '이 책이다'라는 느낌을 받은건 처음이다. 아니 이전에도 있었는데 기억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렇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저마다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번뿐이며 아주 특별한, 어떤 상황에서도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로지 한 번 그곳에서 서로 교차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누구 안에서든 정신은 형체가 되고, 누구 안에서든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안에서든 하나의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저마다 삶은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을 암시한다. 지금껏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이는 모호하게, 어떤이는 좀더 투명하게, 누구든지 그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한다.



이렇게 헤르만 헤세는 이 책에서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며, 이는 모두가 완전한 인간이 되기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이 이야기가, 결코 그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생을 살고있지만, '모든 사람은 같은 협곡에서 나오고, 어머니가 같고, 유래가 같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속의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우리도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존재의 인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아직 불완전하기에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려고 자기 성찰을 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며 나아가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싱클레어의 '두 세계'에 대한 생각에 매료되었다. 어쩜 선과 악이라는, 정의와 불의와 같이 똑떨어지게 설명하기 어려운 걸 그렇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도 어릴 적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상적인 '도덕'과 현실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교과서에서는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친구를 배신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다'는 바람직한 것만 가르쳐줬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교과서대로 살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자기반성을 동시에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그 어린 시절, 가끔은 유혹도 있고 일탈도 하고 싶고 방황했던 그 시기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난 좀 달라졌을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혹은 지금이 행복한건지 아닌건지 조차 판단이 안되던 시기가 있었다. 딱히 주변 상황이 달라지거나 내가 주인공처럼 방탕하거나 문제아같은 그런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두 세계'가 공존했던 것 같다.
싱클레어가 마냥 타락했다가 나중에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였더라면, 여느 소설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별로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 타락했던 시절을 대조하면서 계속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좋아하는 여자 베르테르체를 만나는 등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날 때면 스스로 다시 '밝은 세계'를 재건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했던 것 같다. 마냥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아마 이러한 싱클레어의 내적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책 속에서 난 데미안보다 싱클레어에게 더 눈길이 갔다. 인생의 혼란기를 겪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어쩌면 부모님보다 더 큰 영향력으로 그에게 정신적 지주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난 어쩐지 데미안의 어른스러우면서도 냉정하고 조롱하면서도 단호한 그런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실제 내 주변에 있다면 어쩐지 난 그가 두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이었던 싱클레어와는 달리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타인을 잘 관찰할 줄 아는 데미안에게는 충분히 배울 점이 많았다. 그는 또래들과는 분명 다른(어린 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이전에 읽었던 책의 잔상이나 여운이 남아서인지 이번에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렸다. 책 속의 주인공이 어떤 인물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에 계속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을 들려준다는 점이 조르바와 데미안이 비슷했던 점이다. 다른 점을 꼽자면 <그리스인 조르바>는 젊고 올바른 사상을 가진 지식인과 늙은 노인간의 이야기이며, <데미안>은 두 세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소년과 명확한 주관을 가진 또래친구의 이야기랄까.

책의 초반의 꼬마 싱클레어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죄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가져오며, 더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까지 올 수 있다는 걸 10살짜리 작은 꼬마주인공이 말해주고 있었다.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울지라도 더 큰 두려움을 만들지 말자.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소름끼치리만큼 선과 악 사이의 고민하는 인간의 심리를 묘사했다. 어린 싱클레어처럼 가끔 도덕적인 문제로 고민할 때, 나도 두려움을 느낀다. 작가도 그런 경험이 있는 걸까. 독일의 작가가 대한민국에 사는 나의 고민과도 비슷한 걸 보면, 정말 인간은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사나보다. 그래서 책을 통해 배우고 인간에 대해 보고 나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것인가. 

인문학의 힘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이번 책을 계기로, 책을 한권 읽으면 그에 맞는 액션을 취하고 삶에 적용해보고싶어졌다. 책 한권으로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기록을 남겨보아야겠다. 다시 한번 책의 중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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