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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지 Nov 06. 2023

불안이 너를 찾아올 때

봄날의 햇살이 되어줄게

 우리 아이들은 불안이 많은 아이들이다. 불안이 많은 엄마를 닮은 것일까? 아니면 나보다 더 많은 불안을 안고 태어났을까? 아니면 나의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아이들의 불안이 불안한 엄마는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실은 그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있는 것일지도...




첫째 아이가 예민하고 긴장도가 높고 불안이 많은 아이라는 것은 딸아이가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전부터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무서워하고 긴장하는 몸짓과 눈빛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 들면 비율이 맞지 않는 사람이나 얼굴을 굉장히 무서워했다. 눈이 도드라지게 큰 미키마우스 개구리 왕눈이 혹은 입 큰 사람의 모습을 보면 진저리 치며 도망갔다. 그들이 아무리 환하게 웃고 있어도 아이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리아이 어릴 적 공포 3종 세트

새로운 공간과 물건, 그리고 음식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고 그래서 세상에 적응하는데 더 많은 지지와 격려와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다.


 말로 정확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하며 앨리스증후군(자신의 몸, 물체 등이 작게 또는 크게 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 공간이나 시간까지 왜곡되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부모로서 참 속상했다. 건강하고 평범하게 무난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랐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과 예민함을 보일 때면 나 역시 불안한 아이를 불안한 시선과 마음으로 보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아이가 불안하지 않기를 바랐던 나는, 소아심리전문의 소아정신전문의를 만나 진료도 받고 상담도 받아보았다. 엄청난 비용이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가족들이 괜찮다고 100번 말해주는 것보다 전문가 선생님이 그럴 수 있고 괜찮다고 한번 말해주는 것이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이런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크면서 불안과 긴장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가 불안이 옅어지고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할 때쯤 감싸 안고 보호하는 것이 가능했던 보육기관을 졸업하고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아이의 불안과 엄마의 불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기인 2월 말~3월 초,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 학기 증후군은 생각보다 힘든 시기였고 잘 대비하고 준비해야 했다. 그래도 벌써 몇 차례의 새 학기를 지내다 보니 역시나 없어지지는 않지만 옅어지고 있고, 적응하는 어려운 시기마다 도움과 격려와 공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주변의 친구들과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잘 성장해가고 있다.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지난주 갑자기 첫째 딸아이가 운다. 물어도 이유를 말하지 않고 운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불안이 어느 정도 짐작은 갔다. 몸이 아팠고 그래서 며칠 학교를 가지 못했고 그래서 또 문득 예민함과 불안이 찾아온 것이리라. 아이가 입을 열어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자기 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펑펑 울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불안할 때가 있는데,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나만 그런 것 같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나한테 실망할까 봐 걱정이 됐어. 그리고 엄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뭔가 계속 엄마한테 의지하고 싶어지고 힘들게 할까 봐 걱정도 돼서… 그래서 말하기가 힘들었어.”


아이의 말을 들은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티 내지 않고 씩씩하게 여러 번 말해주었다.

”그랬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양반다리를 하고 첫째 아이를 무릎 위에 앉았다. 품에 쏘옥 들어오던 아이가 몸의 절반은 내 품밖으로 벗어나 있는 걸 보니 이렇게 안아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아린다. 그간 몸만 자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자라났고, 그 자라난 마음 때문에 엄마를 실망시키기도 싫고 힘들게 하기도 싫어졌다는 아이를 보니… 아이가 철이 들고 생각이 자라나는 게 좋은 것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모두 다 마음속에 불안이 있어. 그 정도는 모두 다르고 이겨내는 힘도 다를 수는 있지. 불안하면 긴장되고 힘들 수도 있지만, 불안한 마음이 나쁜 것만은 아냐. 더 잘 적응하고 더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네가 불안하다고 해도, 다른 친구들과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아. 설령 실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 그러니까 괜찮아. 언제든지 지금처럼 꼭 엄마에게 말해줘.”


정답은 모르지만 문득 찾아오는 불안을 훨씬 더 많이 겪어 본 엄마의 생각과 진심을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전했다.


다행히 몸 컨디션이 좋아지고, 학교에 다시 며칠 다녀온 아이는 다시 마음의 컨디션도 되찾았다. 밝고 명랑하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다가 눈물이 주르르 흘렀던 장면이 있었다. 그런 사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서였나 보다.

너는 나한테 강의실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불안한 아이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불안을 밝고 따뜻하게 감싸안는
‘봄날의 햇살 같은 엄마’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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