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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판석 감독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

드라마 리뷰를 빙자한 딴소리들

by 마요

1. 내가 좋아한 사회과목 이야기.


나는 왜인지 아주 어릴때부터 사회과목을 잘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건 정확히 암기를 잘 못하는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암기를 하는 나만의 요령을 터득하기 전까지 나는 지독히도 암기에, 특히나 사회과목에 젬병이었다. 기억에 날만한 장면도 몇 개 있다.


장면1.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있었던 시대를 뜻한다는 그 ‘고구려-백제-신라’ 그 세 단어를 도무지 외우지를 못했던 나. 우리엄마는 거실 탁자에 앉아 나를 붙잡고 “고구려-백제-신라 라니깐? 다시 말해봐!” 하면 “고구려…백제..그리고..” 하더니 그만 울음을 뿌엥 터뜨리던, 그걸 몇번이나 반복했던 장면이다. 우리엄마는 내가 어딘가 부족한 아이가 아닌지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요즘 같았으면, 아니 지금 나 같았으면 며칠을 침대에서 뒤척이다 어디 센터에 검사라도 보내봤어도 놀랍지 않을 일.


장면2. 중1 시절,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던 2살 터울의 우리 언니가 친히 내 방으로 와 다음 날 있을 내 사회 시험 준비를 도와주던 날. “인도-힌두교, 인도-힌두교! (앞글자에 동그라미를 치며) 인-힌! 비슷하지! 이렇게 외우면 되잖아!!!”라고 윽박지르던 장면. 요령을 알려줘도 못 외우고 틀릴때마다 언니는 내 손바닥을 파란색 플러스펜으로 가볍게 때리곤 했는데, 몇번을 때리다 못해 그만 파란색 잉크가 내 손바닥에 팡하고 터져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마워 언니.. 언니도 같은 날 시험이었을텐데 동생을 봐주는 그 푸른 마음이 예뻤네. 언니 덕분에 나는 인도가 힌두교 국가라는 건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때 공부의 재미를 느끼게 한 사회탐구과목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윤리’ 과목이었다. 그중에서도 ‘서양 철학’ 파트를 나는 너무 사랑했다. 이건 사회과목인데 앞글자를 떼어 외우는 암기가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자의식>이라는게 처음으로 깨어나던 18, 19살의 시기에 마치 나는 앞으로 이 인생이라는 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플라톤이, 칸트가, 니체가, 쇼펜하우어가 내게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나의 윤리 필기 정리 노트가 나의 앞으로의 100세 인생에 꼭 품에 안고가야할 지침서인마냥 소중했다. (아직도 우리집에 있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에도 오로지 ‘정치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정치외교학을 이중전공으로 선택했다.


그중 내가 유독 좋아했던 것이 칸트다. 칸트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칸트의 정언명령>인데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면 ‘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어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객관적-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그런 명령'이라고 나온다. 내가 쉽게 이해하기론, 칸트가 나에게 ‘네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지마, 그렇게 살면 안 돼’ 라고 명령한 거라고 생각한다. 꼭 사람뿐만이 아니다. ‘모든 일은 그 목적에 맞게 행하면 된다. 그 일의 본연의(필연적인)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는 것. 혹은 더 쉽게는, “순수하게 살아라! 뭔가를 할때는 그거를 할 생각만 해, 다른 음흉한 뜻을 위해 그 일을 하지말고!” 같이 느껴진다. 그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서 ‘“순수”한 목적을 다하며 매사를 살자’는 것이 20대 초의 어느 순간 다짐한, 평생을 지켜나가고 싶은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2. 진짜 하고싶었던 드라마 이야기


나는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왜인지 <하얀거탑>은 안봤고, 아마도 처음 제대로 본 작품은 <밀회>일 터인데, 그 이후 <풍문으로 들었소>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 <봄밤> <졸업>까지 모두 열렬히 혹은 여러번 챙겨봤다. 그 중 꽤나 화제가 되어 많은 패러디를 낳은 작품들도 있는데 대부분 연상녀-연하남의 로맨스를 다루기도 해서, 패러디하기에도 너무 재미있는, 무언가 금지된 관계의 연상연하 커플이 펼치는 농밀한 로맨스 같은걸 떠올리기 쉽다. 그치만 내가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내가 본 모든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에서는 일하는 30대 중반(이상)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벌어먹고 사는 사회인들이 그렇듯, 자기가 하는 일의 ‘순수한’ 목적을 잠시 잃어버린 상태로 등장한다. <졸업>의 대치동 국어과 입시전문 학원 일타강사 정려원 역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렇다.


법대생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정형편 탓에 대학생 알바생으로 대치동 학원가에 처음 발을 들인 그녀. 8등급인 대치키드 남학생 위하준을 1:1로 전담마크하며 국어과목 뿐만 아니라 공부습관을 들여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시험 지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온 마음으로 느끼면 수능 문제도 당연히 풀 수 있다는 식의 진정한 공부의 재미를 알려준 덕분인지 8등급을 SKY에 합격시킨 결과를 낳았고, 그 전설적인 성과를 발판으로 10년간 그녀는 대치동 일타강사로 승승장구 해왔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의 수업방식은 조금 다르다. 더욱 치열해진 입시경쟁, 그리고 이제는 한번에 수십명을 상대하는 강의에서 <이 지문, 이 문학 작품의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지, 무엇을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지> 같은걸 말할 시간 따위 없다. 아이들의 내신 등급을 위해, 학교 선생님의 숨소리까지 받아적은 필기를 취합하고 그의 취향을 파악해 교과서 밖에서 어떤 지문을 낼지 쪽집게처럼 예측해주는 것, 이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게 요약 정리, 암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녀가 치열한 대치동 학원바닥을 살아남은 힘이 된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처음엔 기가 차 코웃음이 나올만큼 순수하다 못해 순진해보이는 옛 제자 위하준의 사랑을 마주한다. 거침이 없고 겁없이 달려드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맞는거잖아요. 뭐가 잘못됐어요? 이게 진짜잖아요.’ 라는데 결국은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그 순수한 사랑.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랑을 통해 일밖에 몰랐던 한 여자가 단순히 낭만을 회복하고 남자의 품 안에서 행복해진다는 결말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을 인정하고 스며들면서 얻은 힘, 그 힘으로 그녀는 다시 한번 아이들을 ‘진짜 교육‘하는 방법을 고뇌하고 나아간다. 누군가는 일개 학원강사가 어디서 교육자인 냥 구느냐며 비웃을지라도 흔들림 없이, 직업인으로서의 그녀는 단단하게 변화한다. <밀회>의 김희애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손예진도 모두 마찬가지다. 거칠것없이 순수한 사랑의 힘을 통해 용기를 얻은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오랫동안 본래 목적을 잊고있었던 내 일, 내 직업의 순수한 본연의 목적을 떠올리며 회복한다. 또 그 본래의 목적을 잊을수밖에 없게끔 만든 이 불합리한 세상의 면면들을 바꾸려고 노력해나간다. 물론 이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건 조건없이 순수한 남자의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랑 속에서, 끊임이 없이 쏟아붓는 낭만 속에서다!



3. 내 이야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방송 완본 편집이 마무리되면, 직접 방송본 테이프(우리가 어릴 적 빌려보던 그 네모난 비디오 테이프 맞다)를 가지고 주조정실에 갖다주는 식으로 방송 입고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대부분 파일입고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을 고생해 만든 이 소중한 테이프를 말 그대로 '품에 꼭 안고' 주조에 전달할 때마다 내가 떠올리던 장면이 있다. 별 것도 아닌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그 감정에 빠져 침대에 누워서도 눈을 깜빡이고 있던 소녀 시절의 나다. 예를 들면 <강호동의 신토불이>에 나와 춤을 추던 한 남자 연예인이랑 결혼하는 상상을 하던 나, <느낌표>에 나왔던 감동적인 모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도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는 감정에 휩싸여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나, <성공시대>에 나왔던 멋진 여자 CEO를 보고는 미래의 내가 궁금해 심장이 두근거렸던 나, <TV는 사랑을 싣고>를 보고 내가 성공하면 저기 나가서 누굴 찾을지 우리 반 남학생들을 떠올리기도 했던 침대 속의 나, 그 수많은 잠이 오지 않던 밤들... 결국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이 테이프에 담긴 1시간의 이야기가 어떤 소녀의, 혹은 그 누구의 마음속에 머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 잠깐의 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비켜나 화면 속 이야기 하나에 가만히 잠길 수 있기를.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내 일의 본연의 목적이다.


하지만 어디 '그 자체로 의미있는 마음'을 지키기가 쉬우랴. 이 세상은 남들을 속여서라도 주의를 끌기를 나에게 끊임없이 강요하는 것을! 내 본래의 목적을 잊으라고만 하는 이 불합리한 세상의 면면들을 예술가도 아닌 일개 회사원인 내가 타파하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출근하는 우리 모두의 하루에 낭만이 있기를 바란다. <졸업>의 정려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열렬히 사랑하는 연하남이 나타나 나를 일깨워주진 못할지라도, 그 무엇이라도 다시금 내 일의 본연의 목적을 떠올리게 할 낭만적인 한 순간의 무언가가 오늘 하루 중에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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