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에 대한 단상
대입전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단순화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교사로서 나의 양심에 따른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이 주장에 반대하겠다.
지금의 제도 안에 여러 전형이 있는 것은, 한 가지 잣대로 아이들을 줄을 세워 그 특정 잣대로 평가되지 않는 요소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잣대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야 하는 지필시험에는 약할지 모르나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탐구과제를 정하고 연구한 결과를 멋들어지게 발표할 줄 아는 아이가 있다. 반대로 성실히 문제 풀고 열심히 외우는 것엔 자신있지만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건 힘든 아이도 있다. 모든 과목의 성적이 고루 좋지는 않지만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관련된 과목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는 아이도 있다. 간혹 실연의 아픔으로 한 학기 성적을 말아드셨지만 다시 심기일전하여 본 궤도에 올라타 그런대로 멋지게 학교생활을 마무리한 아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특성과 다양한 사연의 아이들을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여 똑같은 줄에 세울 수는 없다. 애초에 학교라는 곳에 유리한 유전자와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있는데 측정잣대까지 하나이면 그 잣대에 유리한 아이만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의 다양한 입시제도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 후 대입원서를 쓰기 전에 내가 가진 패를 펼쳐보고, 나를 가장 잘 돋보이게 해 줄 전형으로 내가 가고 싶은 학교와 학과에 원서를 넣는 것이다.
대입제도의 다양성이,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유리함을 선점하고 나는 가만히 있다 피해를 볼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낳기도 한다. '그냥 옛날처럼 수능(학력고사)만으로 뽑아! 그게 공평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다양하고 복잡한(많은 부분 학종에 대한 불신) 입시는 눈속임이 아니다. 3년간 3~40명의 교사들이 한 아이에 대해 기록하면 아무리 이런 저런 선생님이 있더라도 아이가 안 드러날 수가 없다. 사실 수행평가의 복잡성과 정기고사의 긴장감(애들보다 출제한 선생님들이 더 긴장하는 걸 누가 알랴), 생기부 작성의 과중함으로 교사들이 더 학종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많은 교사들이 이렇게 변화된 평가 체계 안에서 진짜 아이가 성장하는 수업을 할 수 있어 기뻐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러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 중 대학에서 제일 잘 적응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아이들은 학종을 통해 합격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학종이 가져온 평가의 변화가 얼마나 수업을 바꾸고 아이들을 바꾸었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 공교육이 완벽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평가방법도 허점 투성이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늘 그랬듯 아이들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제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며 성장이라는 것을 한다. 완벽하지 않다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성장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라. 이 기준 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든 너는 성장한다. 진짜 문제는 그 과정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판을 엎어버리려고 하는 태도이다. '저 자퇴할래요', 혹은 '저 정시파이터 할래요' 같은 소리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이런 경쟁적인 학교나 나라에서 아이들이 힘든 것이 가슴아파 국제학교로, 조기유학으로 아이들을 도피시키는 부모도 있다. 개개인의 사정이나 결정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 그 결정이 회피나 도피이고, 그런 태도가 아이들에게 학습되어 습성화되지는 않을지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