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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고1 오리엔테이션 2탄

첫 수능 이후 30년의 역사

by 이영란

학력고사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입선발시험이 바뀌고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이 나다. 학력고사배운 지식을 묻는 시험이었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이 대학에 가서 대학교육을 받을 역량이 있는지를 평가하겠다는 시험이다. 이 둘이 어떻게 다를까. 뒤의 얘기와 연결하자면 학력고사는 '쌓은 지식'을, 수능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역량'을 평가하고자 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1992년, 수능 시험을 처음으로 치르게 될 전국의 고1, 2에게 평가원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시험지를 공개하기 전까지 학생들도 교사들도 부모들도 그 시험의 정체를 알지 못해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때 1학년이었고, 수학시험지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문제를 풀거나 연필 뒷꽁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사회과학탐구 문제지를 째려보는, 이전에는 하지 않던 여러 행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이게 무슨 퀴즈대회냐'고 했고, 시험 결과가 나오자 학교 선생님들은 '이건 아이큐 테스트였네' 라고 하셨다. 아이큐는 전교 1등인데 내신성적은 전교 108등이어서 우리 담임의 108번뇌였던 내가 그 수능모의평가에서 학교 최고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이건 준비해서 잘 볼 수 있는 시험은 아니었다. 왜? 그건 지식이 아닌 역량을 테스트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량'이라는 것이 성실하지는 않으나 눈치가 빠르고 논리적 추리능력이 뛰어난 나같은 아이의 '시험운'과 동일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유리한 판도임에는 틀림없었다.


대학들은 그 시험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인지 각기 대학별 본고사를 실시했고, 특정주제에 대해 입장을 정해 1600자의 논설문을 쓰는 논술시험과 쓰여진 글을 읽고 800자로 요약하는 요약문 작성을 요구했다. 서술형 수학, 영어, 과학시험도 치루었다.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였고, 추구하는 인재상에 변화가 온 것은 분명했다.


아, 그렇게 새로운 시대가 인정해 주어 명문대에 운 좋게 들어간 내가 정말 대학교육을 잘 받았는지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전공 수학은 재능도 필요하지만 성실하고 끈기 있는 사고의 훈련이 더 필요한 학문이었고, 그다지 성실하지 못한 나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학습자였다. 그런 면에서 대학은 역량을 갖춘 나를 더 깊이 있는 수학의 세계로 초대하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아이들에게 수학의 아름다움을 전하는데 열심을 다하고 있다. 중3때 내게 수학교사라는 꿈을 심어주신 우리 수학선생님처럼 '여자는 수학문제를 풀때 가장 아름답다!', '수학 잘하는 뇌색남을 이길 근육남은 없다!'라는 믿음을 심어주며 말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 미국에서 베껴온 건지 입학사정관이라는 전문 평가자가 고등학교 3년간의 기록인 학교생활기록부를 통해 학생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여러 실험과 수정을 거치며 자리를 잡아왔다.


오랜 휴직 후 학교로 돌아온 2017년, 포항공대 입학사정관이 입시 설명회에서 하는 얘기를 들으며 어쨌거나 이 나라가 방향은 잘 잡고 있구나 싶었다.


'저희는 100% 학종으로 학생을 선발합니다. 수능은 특성상 반복적 연습으로 어느 정도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시험이고, 저희가 수능과 학종 두 가지 방법으로 모두 학생들을 뽑아본 결과 저희가 원하는 잠재성(역량)과 도전의식(똘기)을 갖춘 학생은 학종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이미 공정성이나 사교육비 절감 등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불만들에 대응하느라 수능 시험은 너덜너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상태였고, 초창기 측정하고자 했던 학생역량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시험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나마도 이후 조국사태를 계기로 시대의 역행이 이루어졌고, 수능시험만으로 뽑는 정시전형을 40% 이상으로 하라는 국가의 명령이 떨어졌다. 잘 모르는 국민들은 그게 더 공정하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이 결정을 가장 환영한 것은 돈으로 수능시험에 대한 훈련을 더 잘 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강남에 사는 부모들이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 똑똑한 부모와 전문직 지인들, 전문 컨설팅의 안내를 받은 아이들이 스펙 좋은 생기부를 만들어 좋은 대학 갈 수 있는 전형이 학생부 종합전형인 것처럼 보인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우리 반 2등과 5등이 함께 지원했는데 2등은 떨어지고 5등은 붙은 걸 보면 그 기준도 모르겠다. 심지어 붙은 아이도 자기가 왜 붙었지는 모르겠다고 하고 떨어진 아이도 자기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이건 '깜깜이 전형'인 것 아니냐 한다. 숫자로 줄 세우는데 매우 강한 민족인 우리는 영~~ 이 학생부종합전형이 맘에 들지 않는다.


3탄 이후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어떻게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는 전형이고, 우리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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