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진짜 예비고1 오리엔테이션이다. 처음부터 컨셉이 제주도 쌍둥이 조카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이었으니 어투를 여기서 좀 바꿔야겠다. (금방 적응되실겁니다요)
우리 조카님들은 자신의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제대로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네. 너희들 반의 자사고나 특목고를 준비한 친구들은 대입을 미리 한번 경험해본 것이나 다름없어. 몰랐겠지만 그 친구들은 담임샘이나 과목샘들께 '나는 특목자사고에 지원할테니 내 생기부는 신경써 써달라'고 미리 얘기를 넣어두었단다. 그 아이들은 동아리활동이나 교내외 대회 출전 및 봉사활동도 신경 쓰고, 3학년때는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위해 생기부를 쭉 뽑아놓고 자신이 한 활동에 대한 심화설명까지 연습했어.
우리가 아무생각 없었을때 걔들은 그랬다니까 괜히 벌써부터 뒤쳐진거 같지? 그럴건 없어. 생기부는 내 모습을 선생님의 관찰을 통해 기록한 기록일 뿐이지 정답이 있는 시험지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쓰는 것도 아니잖아.
어쨌거나 너희들도 그런 생기부가 있다니까? 매년 샘들이 나눠주셨는데 너희가 신경써서 안봤지?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러면 안돼. 내가 직접 쓰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채워나갈 여지가 굉장히 많거든. 그리고 그 내용에 따라 대학의 합격 불합격이 갈리는게학생부종합전형이야.
오죽하면 고등학교에서는 힘없는 선생님들의 유일한 무기가 '생기부에 써줄게'잖아. ㅋㅋㅋ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일 처음 대입제도를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고3 올라갈때 되어서야 대입전형에 대해 알아보면 이미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물건너 간 거나 다름 없거든.
교과전형은 보통 '내신+수능최저'로, 학종은 '내신+비교과+수능최저'로 구성되는게 가장 대표적이야. 여기서 비교과란 각 과목 선생님들이 적어주시는 과세특 내용과 진로, 자율, 동아리, 행발 내용이라고 했지? 생기부에 신경쓴다는 건 이 비교과 내용을 챙긴다는거야.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너희는 고등학교 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방향성만 잘 잡아두면 돼.
너희들은 SNS에 올리기 위해 실제 인생을 사는세대잖아? 고등학생은 마치 생기부에 남기기 위해 학교 생활을 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하긴 생각해보니 우리 선생님들도 생기부를 쓰기 위한 수업을 하네. 과세특에 쓸 내용을 만들기 위한 주제탐구보고서를수행평가로 배정하거나, 협력학습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조별활동을 시키는 것 같은.
여기서 조슈아 형아 얘기를 좀 해야겠다.
조슈아 형아가 이제 고2 올라가잖아. 고모가 가만히 보니 고등학교 가면 당장 과목별로 제일 흔한 수행평가가 '교과 내용과 본인의 관심분야를 연결하는 주제를 정해 탐구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거거든. 그럼 관심분야가 있어야 하잖아.
물론 그레이스 누나처럼 처음부터 '나는 의사'라고 명확히 뜻을 정한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자기가 문과인지 이과인지도 모르겠는 경우도 많아.(수학 못하면 문과인건 아니잖아.) 그래서 1학년때는 공학계열이나 인문계열 정도로 넓게 진로를 잡다가 학년이 올라가며 점점 좁혀나가는게 보통이고, 어떤 친구는 신소재에 관심을 가지다가 기계나 컴퓨터로 관심사가 바뀌기도 해.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거고 그래도 괜찮아. 대학에서도 그걸 인정해서 전에는 학종 평가 문항에 있던 '전공적합성'이라는 단어를 '계열적합성'으로 바꿨어.
하지만 나중에 바뀌더라도 지금 구체적인 희망학과나 희망직업이 있으면 당장 탐구보고서의 주제를 선정할 때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어. 그래서 고모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조슈아 형아 꿈찾아주기 프로젝트를 추진했지.
조슈아 형아가 원래 어릴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거든. 아기 때는 공룡 좋아하고 크면서도 뱀이면 뱀, 고래면 고래가 아니라 온갖 뱀 종류와 온갖 고래 종류의 이름을 한글과 영어로 다 외우고 그 특징을 막 읊는 식이었어. 그래서 고모가 수의사 어떠냐고 떠봤거든? 자기는 동물을 좋아하는거지 아픈 동물을 보고 싶은 건 아니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 무슨 직업을 가져야하는지 막막하더라. 동물원 사육사나 아쿠아리움 직원을 해야하는건가. 그래서 인터넷을 막 뒤지다가 유튜브에서 극지연구소 연구원의 브이로그를 보게 된거야.
우리 나라도 남극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북극에는 다산기지가 있는거 알지? 거기서 극지방 동물들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고 뿅 간거지. 게다가 우리나라 극지연구소가 알고 보니 고모네 집 바로 옆에 있었어. 지나다니다가 보면서도 그 극지가 이 극지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남극기지도 겨울이 되면 너무 추워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철수하는데 그러면 한국에 들어와서는 여기 인천송도에 있는 극지연구소로 출근한다는거야. 와우.
이건 좀 극단적인 사례인 것 같지만 아무튼 조슈아 형은 그날로 장래희망이 극지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거기 들어가려면 무슨 학과를 나와야하는지 알아보는 식으로 진로탐색이 시작됐어. 이번 겨울에 꿈이음대학 프로그램이라고 인천시 교육청에서 지역 대학이나 기업, 연구소 등과 연계하여 진로탐색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극지연구소에서 일주일간 교육을 받으며 알았는데,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이 대부분 바다에 떨어지잖아? 그게 다 극지방으로 모인대. 남극에서 얼음 사이에 돌이 보이면 그건 다 운석이라는거야. 그래서 극지연구소에서 운석 연구도 한단다. 그러니 극지 연구소에는 생물학자들만 있는게 아니라 우주, 지질, 환경 등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있는거지. 그러면서 동물 좋아하던 조슈아 형의 관심이 환경이나 지구과학분야로까지 넓혀지게 되더라. 그래서 1학년때 각 교과에서 연구한 주제들이 다 그런 쪽이었어. 몇개 얘기해볼까?
영어-'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해수산성화가 해양생물에 미치는 영향', 'The chemical materials of polar organisms'
통합과학-'극지에 관련된 환경오염을 통해 살펴본 지구의 층상구조내 환경오염의 상호영향', '수렴진화'
한국사-'이순신의 생애와 해류를 이용한 전술에 대한 탐구'
진로-'암모나이트 화석 분석'
멋지지 않니? 사실 1학년이라 내용이 그렇게 깊이 있지는 않아도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이 학생의 관심영역이 한눈에 보이잖아. 그리고 형아가 보고서를 작성하며 항상 서두에는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동기를 소개해.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이나 수업시간에 접한 내용 중 관심을 끈 것, 또는 평소 읽었던 책.
얘기가 길어지니, 풍성한 생기부를 위해 고입 전에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준비 얘기는 다음편에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