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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고1 오리엔테이션 5탄

내 수학점수는 누구의 탓일까

by 이영란

심리학에 <귀인이론>이라는 것이 있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어디에 '귀'속 시키냐에 따라 이후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 달라진다는 이론이지. 너희들에게 1학년 1학기를 시뮬레이션시키다가, 중간고사 말아먹은 그 타이밍에서 주저앉는 아이들과 다시 일어서는 아이들의 차이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얘기를 꺼내게 되었어.


고모가 첫 1학년 담임 때 중간고사 후 무너지는 아이들을 보며 '지금부터 하면 만회할 수 있어'라고 얘기했지만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 그 이후의 순차적인 양상은 먼저 얘기한 그대로야.

수행평가로 허덕이다 곧바로 찾아온 기말고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더 말아 드시고, 절망감과 조급함으로 한 달이 채 안 되는 여름방학 동안 2학기 준비를 한다고 이 학원 저 학원 더운데 돌아다니다, 쉰 것도 아니고 공부한 것도 아닌 상태로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의 표정은 더 이상 나아갈 힘없는 패잔병들의 표정이었지.


아이들을 심기일전 일으켜 세우려고 상담을 하며 1학기 '실패'(아~~~ 실패가 아닌데)의 원인을 찾아보자고 하니 너무나 많은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이 이거야. '이게 다 선행을 안 했기 때문이에요.'

동네 언니 오빠들이 선행 최대한 당기고 오지 않으면 고등에서 망한다고 했는데 어리석은 자신이 그걸 못했다는 것. 이렇게 결론을 내버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 그래서 생각난 것이 <귀인이론>이었어.


나의 고등학교 첫 학기 수학성적이 기대보다 못하다. 그때 생각할 수 있는 원인에는 이런 것들이 있을 거야.


1. 머리 탓. 내가 수학 머리가 없다. 엄마도 아빠도 수학을 못했고 그래도 학원 열심히 다니며 여태 버텼는데 그건 딱 중학교 때까지 유효한 듯하다. 수학도 재능이라더니 고등학교 수학은 결국 수학머리가 없는 내가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2. 선행이 결국 답이구나. 미리 공부를 해가지고 고등학교에 들어왔어야 했다. 애초에 고등학교 수학은 학기 중에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마무시한 공부량이 필요한데 중3 2학기 기말(1, 2학년보다 한 달 정도 먼저 치르므로 11월 중순이다) 끝나고부터 6개월을 준비한 중간고사도 그 모양이었으니 두 달 후 기말은 당연히 더 못 보지. 1학년 2학기는 여름방학 한 달 공부한 게 다인데 이제 2학기는 보나 마나이고, 2학년은? 헐~~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거다.


3. 내 공부법에 문제가 있었다. 기본유형은 툭치면 나올 수 있게 충분히 풀어주었어야했다. 풀 수 있는 문제였는데 살짝 바꿔 나오니 새로운 문제인 줄 알고 말렸다. 혹은, 문제풀이 속도가 늦어 뒤에 나오는 어려운 문제를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다 등등.


4. 충분한 공부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버려지는 자투리 시간이 너무 많고 학원 수업받고 숙제하기에만 급급했지 더 이상의 내 공부시간이 없다. 정리가 필요한 학원은 정리하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대표적인 귀인의 예를 들어봤는데 앞의 둘과 뒤의 둘의 차이가 보이니?

1번과 2번은 '유전자'나 '지나가버린 시간' 등 내 밖에서 그 원인을 찾았지. 부모는 바꿀 수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잖아.

3번과 4번은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어. 내가 태도와 방법을 수정하면 되는 것이므로 일단 수정된 방법으로 다시 시도해 보며 그 분석이 맞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건지 끊임없이 진단과 처방을 해나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


너의 수학성적은 누구의 탓일까? 1, 2, 3, 4가 모두 원인일 수 있어. 그런데 앞의 둘은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귀인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기에서 이유를 찾아.


입시를 다 끝낸 사람들은, 선행은 하면 좋겠지만 선행을 했다고 좋은 성적이 보장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강조하거든. 그리고 선행이 부족했어도 어떻게 노력해서 그 간극을 메웠는지에 대한 경험담을 얘기해 줘. 그러나 너희는 그런 노력을 할 자신이 없고(정확히는 하기 싫고) 나도 가능할 거라고 믿지 않지.

반면, 선행을 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던 동네 형 누나들을 다시 살펴보면 대부분 아직 입시가 안 끝난 고등학생들일 거야. 아니면 입시의 결과가 참패인 사람들이거나. 여전히 결과를 내가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유전자나 지나가버린 시간 탓을 하고 싶은 사람들인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느낌이 오니?

왜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도 자기의 노력으로 바꾸지 못하는 유전자나 지나가버린 시간에 귀인을 할까. 맞아, 그래야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거든.




학종이 좋은 이유를 여기서 얘기하자.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 어떤 사람도 3년을 보내며 치명적인 실수 한번, 어쩔 수 없이 아픈 경험 한번 없는 사람이 없어. 성적도 보지만 그 추이도 보고, 지필 시험 외에 그 학생의 활동을 모두 보는 학종은 너의 방황과 실수를 보듬어줄 수 있거든.


올해 고모네 학교에서 카이스트 이른 전형으로 붙은 친구가 있는데 수학 과학이 모두 1등급이었거든. 수학과학 영재인거지. 근데 그 애 수학성적표에 1학년 1학기 3등급이 하나 있더라고. 궁금해서 불러다 물어봤다니까, 이건 뭐냐고. 그 애 대답이 '중학교 때처럼 공부하면 되는 줄 알고 공부했더니 3이 떠서 2학기때부터는 두배로 공부해서 1 만들었'대. 뭐 대단한 사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였어.


좀 미안한 얘기이지만 일반고는 2학년쯤 올라가면 수학에서 손을 놓는 친구가 절반이야. 내가 공부를 놓지만 않으면 5등급 이상은 한다는 거야. 학교에 따라서는 '책만 펴만 3등급'인 경우도 많아.

1등급 하나, 2등급 둘, 3등급 셋이면 평균 내신 2.3이야. 서울 중위권 대학은 다 넣어볼 수 있어. 제주대도 의대 빼고는 다 합격일걸? 1등급 둘, 2등급 셋, 3등급 하나면 평균 1.8이야. 연고대도 다 넣어볼 수 있는 성적이지.


조슈아 형 고등학교 들어갈 때 형이랑 같이 세운 전략이 뭔지 아니? 일반고 가서 3등급만 하자. 제일 자신 없는 수학, 처음부터 3등급 아니어도 되니까 포기하지만 않으면 나중에는 다른 아이들이 포기해 줘서 자동 3등급 안에 들 거다. 다른 과목은 열심히 하면 간혹 1등급도 나오는 게 있을 거고 평균 2등급만 해도 되니 죽어라 해보자.

되더라. 1학기때 수학 4등급이었는데 2학기때는 3등급으로 올리더라고.


형 성적을 여기서 막 공개해도 되냐고? 조슈아 형은 그게 자랑거리야. 심지어 내가 '4등급을 3등급으로'라고 얘기하면 아니라고 정정시킨다. 중간고사 때 5등급이었는데 기말 때 올려서 4등급 만들었고 2학기때는 3등급 중반점수를 받았다고. 2학년때는 2등급까지 올리고, 졸업 전에 꼭 1등급을 보여주겠다고.

대단한 자신감과 투지이지? 선행 1도 안 한 분이십니다.


요즘 형은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아 공부하는 독서실에 다녀.(물론 중간에 학원도 다녀오고 밥먹고 산책도 하고..)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전 중학교 때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지금 좀 해도 돼요. 그리고 1학년 수학은 계산도 많고 스피드도 요구해서 힘들었는데 수1, 수2로 가니 계산보다 수학적 통찰이 더 필요한 내용이라 도리어 더 재미있어요. 전 고등학교가 더 맞는 거 같아요' 그러시더라고. 훌륭하지 않니?


얘들아, 너희를 믿어.

솔직히 니들이 거기 시골에서 너무 놀아서 그렇지 엄마 아빠 유전자인데 공부 머리가 없을 리가 없다. 너희가 제대로 해보지 않아 너희의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해 본 적도 없고 공부 재미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 전력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성취감을 느껴보기에 공부만큼 좋은 것도 없고, 청소년기에 그걸 경험하면 세상 어디에 나가서도 너희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자기 확신을 갖게 될 거야.


고모가 응원할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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