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한대로 흐르지 않을 때

내게 허락된 길을 충실히 걷기

by 이영란

휴스턴에 도착한지 채 삼 일도 지나기 전, 제일 먼저 자신의 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해 준 집은 전박사님 댁이었다. 그레이스를 낳은 그 다음 날 아침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병원에 처음 찾아와 준 것도 이 부부였다.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궁금한 게 생겼을때 남편이 전화하는 선배도 늘 전박사님이었다.

지금은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전박사님은 처음에 공부하러 올 때부터 미국에 자리를 잡고 살 계획이었다. 여권에 적힌 성 Jun을 미국사람들이 '준'으로 읽자 자신을 '휴스턴 준'가의 효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여유가 느껴지는 유쾌한 부부였다. 재미있게도 나는 그 부부를 처음 만났을때부터 줄곧 전박사님보다 그의 아내인 C언니에게 더 관심이 갔다.


C언니는 한국에서 치대를 나온 치과의사였는데 남편을 따라 한국을 떠나며 치과의사 경력은 그대로 단절된 상태였다. 미국에서 아들과 딸을 연달아 낳아 기르며 베일러 의대 연구실에서 파트타임 연구조교로 일하고 있었으나 전공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커리어가 되어줄 일도 아니었다. 영어도 남편보다 훨씬 더 잘하는 듯 보였고, 한국에 있었으면 훨훨 날아다녔을 사람이 거기서 그렇게 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 공부 마칠때까지만이라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것이, 한국에서의 치과면허가 미국에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계획대로라면 언니는 그대로 경력이 끝나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으나 정작 본인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집안을 둘러보다 가톨릭 신자들이 집안에 만들어 놓는다는 기도탁자를 보게 되었다. 성모상,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 촛대, 성경과 묵주 같은 것들이 놓인 앉은뱅이 탁자였다. 아, 저거였나?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어서, 신의 선한 인도를 믿고 기도하며 신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어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졌을 인생에 대한 두려움, 조급함, 아쉬움 같은 것이 저 언니에게는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박사님이 포스닥을 마치고 주립대 교수로 임용될 때 연봉 협상과 함께 와이프가 그 대학의 치과대학에서 레지던트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을 채용 조건으로 걸어, C언니는 그곳에서 소아치과 전문의 수련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과 같은 대학의 치과대학 소아치과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언니의 그 흔들리지 않던 평온함이 그때 내 추측처럼 신앙의 힘이었는지, 아니면 그 부부의 머릿속에 치밀하게 세워져 있던 계획 때문이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아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전공과 아무 관련 없는 의대 연구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 C언니는 연구의 기본을 배웠고, 미국사회를 배웠으며,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때가 되어 다시 본인의 자리를 구축하게 되었을 때 그 모든 경험들이 든든한 자산이 되었음도 분명하다.


나는 내 직업에 대해 누구보다 큰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공교육을 책임지려는 사명감으로 교사가 되었고 EBS 강사가 되어서 명성을 떨치고자하는 야망도 있었다. 그런데 교사가 된 후 3년도 채 일 해보지 못하고 미국행을 위해 휴직을 했고 아이도 셋이나 낳았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미국과 동탄, 완주 등 여러 지역에서 15년 가까운 시간을 육아와 살림을 하며 기약없는 시간을 지냈다. 그 시간이 경력의 단절이나 교사로서의 시간 허비가 아니라는 것은 15년 만에 복직을 한 후 지금까지 일한 십 년 가까운 시간동안 계속해서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그런 의미 부여가 되기 힘들 정도로 막연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문득문득 C언니가 떠올랐고 덕분에 편안하게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두려움이다. 애초에 예상했거나 계획했던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을 때 그 자체로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기도 쉽다. 그 당혹감 때문에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성급히 내리는 실수를 하거나, 지금 이 순간 꼭 지켜내야할 가치를 놓쳐버리기도 한다. 내 계획이나 예상이 최선이 아닐수도 있고, 돌아가는 듯 보이는 길이 더 나은 결과로 이끌기도 하며, 애초에 이 길이냐 저 길이냐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는 동안의 나의 태도가 중요했다는 것을 그 모든 일이 지난 후에야 깨닫기도 한다. 그런 경험이 조금 쌓였다고 해서 비슷한 상황에서 덜 당황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때 문득문득 C언니가 생각나곤 했고 또 궁금해졌다. 정말 C언니는 기도의 자리에서 신의 음성을 들었던 것일까.

나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에게도 기도할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신기하게 내게도 그때마다 신의 음성이 들렸고, 한 걸그룹 가수가 유행시킨 말처럼 '도리어 럭키비키네'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런걸 우리 동네에서는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시간들에 감사할 수 있었고 충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게 C언니의 그 당시 삶의 태도가 내내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은, 아마도 내게 있어 신앙(信仰-신을 바라보다)의 실체embodiment를 처음으로 목격한 경험이 C언니를 통해서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제와 C언니에게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하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 진실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긴 휴직기간 흔들리지 않고 내게 허락된 길을 충실히 걷게 해준 C언니에게 이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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