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읕 Jan 11. 2021

#7. 잠들기 전에 쓰다

2021년 1월 11일 월요일

D-15,629


지금은 10일 일요일 밤 11시 47분.


지오 재우면서 같이 자려고 했는데 실패다. 피곤한데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지오 점심 먹이고 낮잠 재우려다가 나도 같이 자버린 탓인지 밤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아까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도저히 안돼서 스마트폰 주섬주섬 챙겨서 침실에서 나왔다. 소영이도 마찬가지 이유로 잠이 안 오는지 옆에서 열심히 폰 보고 있다가 같이 나왔다.


거실에 나오니 뺨에 닿는 공기의 차가움이 달랐는데, 살펴 보니 거실 온도계는 영상 24도. 어라? 낮은 온도는 아니네. 그러고 나서 확인해 본 바깥 온도는 영하 10도. 아, 아무리 문을 틀어막고 커튼을 치고 보일러를 열심히 틀어 댄들 온도계를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몸까지 속일 수는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후리스를 껴입었다.


오늘 아침에 굿모닝fm 장성규입니다에서 김가영 기상캐스터가 한 말처럼 정말이지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한파”다. 코로나19로 강제 집콕하다 보니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거의 1주일 넘게 꾸준히 영하 10도 이하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며칠 전 새벽에는 날씨 어플에 우리동네 기온이 영하 20도 – 북한산 밑이라 좀 춥긴 하다 – 로 찍혀 있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후리스를 입고 정수기에 물을 한 잔 받다가, 아차, 내 정신 좀 봐라, 지오 방한부츠 하나 사주기로 했는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부랴부랴 폰을 켜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가격 비교 하기를 십여 분. 마음에 드는 게 있어 사이즈를 확인하려고 했더니, 아니 글쎄 모두 품절… 오호, 이것 봐라, 역시 품절상품을 고르다니 내 안목이 죽지 않았군,이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다른 부츠들을 둘러보는데, 이럴 수가. 보는 족족 전부 품절이었다.


‘맙소사. 그럼 지오는 신발 한 켤레로 올 겨울을 나야 하는 건가’라는 좌절감이 휙 지나갔다. 현타가 지나가고 정신을 좀 차린 뒤에는, 정말이지 나를 포함해서 대중의 심리 따위나 소비자의 행동패턴은 어떻게 보면 참 쉬울 수도 있겠구나라고 실감했다(정작 회사에서 자세 잡고 소비자를 분석하고 메시지 뽑고 할 때는 이만큼 어려운 게 또 없는데 말이다)


얼마 전부터 읽고 있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 연말에 회사에서 고맙게도 복지비가 남는 바람에 책을 사라고 포인트를 줬는데, 무조건 업무에 관련된 책만 사라는 거다. 그래서 고심 끝에 고른 책 중 하나인데 행동경제학 책이라고 한다. 700페이지가 넘어갈 정도로 두꺼운 책이라 목차를 보고 땡기는 부분부터 군데군데 읽어 나가고 있다  – 에서 봤던 경고가 생각나서 그 파트를 찾아봤다.


“인과관계는 통계를 이긴다.” 통계에 근거한 결정이 아니라 앞뒤 인과관계에 기댄 결정은 십중팔구 불합리하다 뭐 대충 그런 얘긴데, 내가 바로 그런 결정을 하려고 했던 거네? ‘아우 요즘 왜 이렇게 추워 -> 아이고, 지오 발 시리겠네 -> 빨리 부츠 사줘야겠다 -> 어라? 다 품절이네! -> 더 늦기 전에 빨리 사야지’의 과정에 따라서 부츠를 못 사서 안달이었던 거다(그럼 통계적으로는 합리적이려면 아기부츠를 여름에 샀어야 했나? 아무튼). 그런데 뒤져도 뒤져도 품절이니 애가 타서 그 간절함은 따블이 되고 나는 눈에 켜고 부츠를 무려 한 시간이나 넘게 뒤졌다는 사실.


눈도 뻑뻑하기도 하고 더 졸리기 전에 일기 써야겠다는 생각에 폰을 끄고 맥북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좀 전까지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풀고 있다. 졸리기도 하고 폰도 많이 봐서 그런가, 눈이 계속 따끔거린다.

안되겠다. 오늘은 이만 자자. 안녕.

매거진의 이전글 #6. 빠짐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