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시간

여전히, 2024년

by 지피지 jipiji

무난하다. 무난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지금 내가 정의하는 무난함이란 평소 좋아하던 동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배경 삼아 할 일을 하고, 이따금 옆에 둔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중간중간 소중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 이러한 평범하다면 평범한 시간이 내게는 무난한 시간이다. 무난하고 무해하고 무탈하고.

샤이니 키가 얼마 전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이골이 난 거고, 좋게 이야기하면 상처를 통해서 그 부위가 단단해진 거?" 나 역시도 올해 어떠한 종류의 실망이든 자책이든 후회든 꽤 이골이 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타격을 입지 않게 된 걸까. 더 괴롭고 더 끔찍했던 순간들을 어떻게든 지나온 사람의 특혜일까. 어떠한 실망에든 잠시 실망했다가 얼른 더 생산적인 뭔가로 의식을 넘기려는 스스로의 생각 프로세스에 대해, 적잖이 놀라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크게 속상할 일도 없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건 아니다. 그냥 뭐랄까.. 그냥 나는 현 상황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의 것이 올 때까지 그 시간을 잘 보내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법륜 스님은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신다. "이러하면 이래서 좋고, 저러하면 저래서 좋고~" 모든 일에는 무조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하고 그러니 우리는 매사에 좋은 구석을 발견하고 그것에 포인트를 두라는 것. 나쁘게만 보이는 일에도 좋은 점이 분명 있고, 좋게만 보이는 일에도 나쁜 점이 있다는 것. 새옹지마라는 옛말을 기억하며 겸허하게, 한 사람의 삶에 주어지는 랜덤한 사건들에 대해 건강한 해석을 곁들이는 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한층 더 단단해졌다. 분명 터지고 깨지고 마음속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다 못해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나는 시간들이었다. 그래, 이러다 보면 또 성장'은' 해 있겠지. 근데 정말 더 이상 성장 안 해도 좋으니 그냥 무난하게 살고 싶다. 무던하게 살고 싶다. 여기서 더 성장해서 대체 나는 뭘 얻게 될까. 이 생에서 대체 어떤 것을 더 얻어야 하기에 나는 이다지도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까. 이런 의문이 가득한 나날을 보냈다. 특별히 사춘기랄 게 없었다는 나는, 만으로 30세를 맞이한 2024년이 돼서야 대단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편집하고 친구들과 연락도 하고. 이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다시 보내는 날이 오긴 할까? 싶게 암울했던 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별 어려울 것 없이 보이는 시간도 어떤 상태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절대적으로 이 정도까지 힘들만한 일들이었나, 현상 자체보다 더 스스로를 괴롭게 한 건 결국 나의 건강하지 못한 해석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으면 힘들었던 거다. 내 세상에서는 많은 것들이 다 별일이었다. 그러니 유난스럽게 힘들었대도 그럴 수 있지 하며 적어도 나만큼은 나의 괴로움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이번 시기를 겪으며 또 한 번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러한 것. 내가 내 편이 되어줘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구해야 한다는 것. 아직 이건 완전히 터득하지 못했지만, 인지는 하고 있다.

언제쯤 많은 것들이 별일이 아닌 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이가 들어서도 별게 다 별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이런 무거운 순간들을 보내왔다고 회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소한 것에 기대하고 싶고 실망하고 다시 또 기대하고 싶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이런 특성이 싫으면서도 이런 내가 좋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낮이다. 이게 바로 내 삶이 때때로 참 괴로운 이유구나 싶다. 물론 대체로 행복하고 때때로 괴로웠기에 이런 특성을 바꾸지 않고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올해는 정말! 최고로 다이나믹하고 최고로 괴롭다! 헤헤! 그래도 분명한 건 나아지고 있다는 거고 과정에서 정말 내가 힘들 때 의지하는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나를 정말 생각해 주는 사람이 누군지 선명하게 알게 되는 귀한 해이기도 하다. 그게 다 내 복이지. 건강하던 시절의 내가 좋은 인연들을 귀하게 잘 맺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참 감사했다.

왜 이렇게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무난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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