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 보내고 나면 너무나 애틋해질
올해는 유독 시작부터 의미가 있었다. 나는 정월대보름에 태어났는데 음력과 양력 생일이 딱 똑같은 해라며, 엄마는 올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달뜬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2024년이라는 숫자에서부터 2월 24일과 숫자가 딱 맞다며 혼자 마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제 만으로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이 30대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현시점에는 만 29세. 꾸역꾸역 20대 존에 있어보려는 발악이다.)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는 정말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사는 인생이다. 그저 자기답게 나이 들어가며 좀 더 '자기'가 되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멋있게 나이 드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슬아 작가님의 표현에 따르면 "나이가 드는 게 멋진 일이라는 걸 믿게 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런 어른을 보며 그런 어른이 되는 게 내 꿈 중 하나다.
어제도 오늘도 새벽 4시쯤 잠에서 깬다. 원래 자다가 깨는 법은 없는 사람인데 요즘 내 삶은 아무래도 내가 아닌 것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라 그런지 자주 깬다. 자주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들이다.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뒤로 단 하루도 푹 쉰 적이 없다. 시차 적응은커녕 하루라도 그냥 늘어지게 혼자서 쉰 적이 없다. 근데 그게 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좋아서 조카를 보러 가고, 좋아서 친구를 보러 가고, 좋아서 마음을 열었다. 어쩔 때는 정말 내가 최강 체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힘을 내보는 삶.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그냥 웬만하지 않고서는 다 좋다. 이런 걸 보면 외향이 맞구나 싶다.
올해가 참 남다르다 생각하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다. 일단 긴 프랑스 여행은 정말 여러모로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여행은 정말 어릴 적부터, (내 의지와 무관하게) 숱하게 다녀봤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남다르고 분기점으로서 의미가 있는 여행은 처음이다. 정말 살면서 만나지 않을 법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삼일천하 김옥균이었지만 파리를 눈물의 낭만으로 기억할 만한 만남도 있었고, 처음으로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발칙한 생각도 했던 여행이었다. (esp.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모든 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운도 따라줘야 하지만 그전에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운도 단타에서 끝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종종 마음을 쉽게 다쳐가면서도 노력한 만남들이 있었고,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덕에 또 파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매번 이야기하지만 학교 모임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며 사람들을 모아보고 모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이야기해 본 경험들 덕에 파리에서도 또 모임을 쉽게 만들고 친해지고 좋은 피드백을 많이 듣게 되었다. 역시 버릴 경험은 없고, 모름지기 한 번 해본 사람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의 간극은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경험파 인간. 다양한 경험이 최고다. 한 번 사는 인생,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은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게 나의 오랜 꿈이다.
아주 전부터 디테일하게 꿈꿔왔던 막연하지만 한결같은 꿈들이 있었다. (쓰고 보니 꿈이 참 많다 나..) 그리고 그 꿈들이 지금, 아직 2월인 이 2024년에 소름 돋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말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게 되네? 의 연속인 나날이라 도무지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마를 날이 없다. 어떤 꿈을 꿨냐고?
나는 친구가 카페를 하거나 아니면 어떠한 물건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에도 들 경우에 > 이를 잘 홍보해 제로베이스에서 성장시켜 나가고 싶다. 혼자서 뭔가를 만들고 싶지는 않고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을 널리 널리 알려 키우고 싶다.
정말 작은 공간이더라도 미니멀하게 인테리어 해서 커피 머신 냅두고, 친구는 커피를 맡고 나는 그 공간에 다양한 사업을 때때로 진행해 보고 싶다. 독서 모임도 진행해 보고 글쓰기 클래스도 진행해 보고 이따금씩 내 물건을 파는 가라지 세일도 해보고. 결국 한 공간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다양히 진행시켜보고 싶다.
결국 공통적으로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고 싶다"라는 야무진 꿈이 있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둘 다 100프로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1번은 실장님의 추천에서 시작된 채용으로, 2번은 일요일에 크산이랑 나눈 이야기로, 각자 나를 놀라게 하는 중이다. 상세한 사항까지는 다 적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정말 의도치 않게 자기 확언을 해버린 건가? 싶을 정도로 소름 돋게 내가 원하던 것들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둘 다 미정이고 심지어 2번의 경우 더없이 나이브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요일에 있었던 일생일대의 사건. 목요일인 오늘,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만남이 이뤄질 예정이고 아무래도 내가 전에 없이 새벽에 잠을 깨는 것이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평소 표현이 많지 않으신 네일 사장님도 오늘만큼은 정말 내가 내뱉는 저 모든 이야기가 너무 흥미롭다며, 그리고 또 좋은 일들이 가득해지시는 것 같다며 말씀해 주셨다. 이곳을 다닌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고 어느새 이렇게 삶의 여정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감사했다. 맞아요, 예전에는 뭐 하고 싶은지 고민 잔뜩이었잖아요 저, 그리고 만남에 대해서도. 근데 이제는 모든 게 다 이뤄지는 것 같아 좋네요. 감사해요. 라며 본 중 최고로 밝은 톤으로 서로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대화의 밀도가 너무 높아 사장님 귀에서 피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흥미롭게 들어주시고 일말의 조언도 해주셔서 참 좋았다. 복이 많은 삶이다. 특히 인복. 이러니 내가 사람을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이제 다시 자러 가야겠다. 몇 시간 후에 있을 약속을 좋은 컨디션으로 맞이하기 위해. 그리고 문득, 파리에서 안나가 말해준 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언니! 저기에 오고 있어! 오고 있는 중이야! 코너를 돌고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