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고백이 시작된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점백과 이철웅이 용인의 한적한 산속의 호스피스병원에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하얀 색 외벽에 주황색의 지붕을 한 건물들은 3층과 4층 정도의 하얀 색 사각형 건물과 원형 건물들이 조화롭게 연결시켜서 지은 건물이었다.
건물 중앙에는 중정식으로 정원이 있어서 가벼운 산책을 건물을 나서지 않고도 가능하게 만들어 두었다.
건물은 둘러싸고 있는 산은 그렇게 높지 않은 낮은 언덕 같은 산이었지만 족히 오십미터는 넘어 보이는 높이의 침엽수들이 병원 건물을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는 덕분에 건물은 아늑하게 만든 하얀 새 둥지처럼 보였다.
푸른 도화지에 회색 펜으로 대충 그린듯이 굽은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해당 호스피스 병원이 보이는 산자락 입구에만 들어서도 멀리서 한 눈에 보이는 지중해식 병원 건물은 하얀 외벽 덕분에 지은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새롭고 깔끔하게 보였다. 덕분에 이 길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한번씩 병원쪽으로 눈길을 보내곤 했다.
“길면 삼개월입니다. 두 분 다 인근 호스피스 병동을 한번 알아보세요. 훨씬 편안하게 느끼실 겁니다.”
강원도 국립 의료원의 담당 의사는 두 사람에게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라고 추천했다.
병명은 똑같은 췌장암이고 공조롭게도 길면 삼 개월이란 시한부 말기암 통보를 받았다.
한 달간의 대기시간을 거쳐서 마침 2인실에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을 받고, 거의 같은 순번이었던 두 친구는 동시에 호스피스 병실에 입실을 하게 되었다. 같은 병실이었다.
두 친구는 모두 다 몇년 전에 아내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서, 딱히 병문안을 올 사람도 없었다.
자식들과도 의절해서 왕래를 끊은 지 오래였다.
2인실은 문을 마주하고 침대가 세로로 앉은 위치였다. 문을 열고 병실 왼쪽 침대에는 이철웅, 오른쪽에는 김점백이 자리를 잡았다. 침대 옆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카드가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침대에 쇠 걸이쪽 비닐케이스 안에 꽂혀 있었다.
두 침대를 사이에는 두 침대 사이를 가로 막은 낮은 3단 서랍장이 있었고, 그 위에는 마치 두 개의 침대의 경계표시처럼 작은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병실 입구 쪽 침대 맡은 편의 구석에 걸린 둥근 벽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켰다.
조금 전에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들고 와서 식사 보조까지 해 주었기에, 추석연휴의 시작이어서 9시에 취침할 때까지는 편안히 쉬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낮은 3단짜리 서랍장 위에는 녹차 잔이 두 개 놓여 있다.
웅이는 침대에 누운채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서 점백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는 군, 친구, 초,중,고등학교도 같이 졸업하고 한 동네에서 살던 우리가 어느 듯 이렇게 나이가 먹어서 시한부 말기암 통보를 받고 호스피스 병실 침대에 같이 누워 있다는 사실이 말일세.” 웅이가 천천히 친구를 바라보았다.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 후딱 가는 것인 줄 알았으면 좀 천천히 살 걸 그랬아. 뭐 이 세상 떠날 때 돈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는지 모르겠네. 친구.”
“그러게 말이야. 생각해 보면 난 자네에게 잘못한 일이 많은 것 같아. 이렇게 시한부 생명이라고 판정을 받고 나니 잘못 살아 온 지난 날의 후회가 밀려온다네. 그래서 말이야. 늦었지만 자네에게 고백할 말이 있네.”
“자네가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 겁이 덜컥 나는구먼. 자네가 나한테 장난친 것이 어디 한 두개여야지. 뭐 물론 나도 가만 있지는 않았지. 평생 한 동네에서 서로 마주보고 이웃으로 같이 잘 살아 왔는데 무슨 뜬금없는 고백인가?”
“난 이제 난 길면 3개월이라고 들었네.”웅이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나도 자네랑 똑같잖은가. 참 우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살아왔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원주택 생활을 했고, 나름 아이들도 잘 키웠고, 아내들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이제 호스피스 병동도 같이 들어왔네, 그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네. 허허허.”
“고백하기전에 일단 먼저 자네에게 사과부터 해야겠어.” 웅이가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이기에 그렇게 뜸을 드리나. 뭐든 괜찮네. 친구” 점백이가 미소를 지었다.
“한 이십년 전엔가 우리 왜 골프 내기 한번 크게 친 적 있었지? 기억 나는가?”
“아무렴 기억이 나지. 그때 사업 크게 성공했다던 그...방현인가 하는 친구가 몇 십년만에 고향에 왔다면서 그 친구가 쾌척한 상금 200만원인가 걸고 친 골프 게임 말하는 것 맞지?”
“옳지, 기억하는구먼. 그때 마지막 홀에서 자네와 내가 공동 1등을 다투고 있었잖아.” 웅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잊겠나, 18홀의 마지막 홀이었지. 그 경기는 결국 자네가 이겼잖나, 내가 어찌나 분통이 터지든지. 허허허. ” 점백이의 볼이 살짝 패였다.
“그때 내가 티샷을 한 공이 오른쪽 숲으로 갔잖은가. 자네 공은 왼쪽 페어웨이에 있었고” 웅이는 말을 계속했다.
“아 맞네 기억이 나네. 그런데 그게 왜?”
“그때 내 공은 사실 숲 안에 없었다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내가 호주머니에 있던 다른 공을 살짝 꺼내서 잔디에 떨어뜨린 것이었다네. 그러니까 사실은 실제로는 점백이 자네가 우승을 한 것일세. 그 기억이 맘에 걸려서 내 눈을 편히 못 감을 것 같아서 이렇게 고백을 한다네. 친구, 부디 나를 용서해 주게나.” 남자가 맞은편 친구를 보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 그랬구먼, 어쩐지 이상하다 했었어. 왜냐하면 그 공은 내가 보기에도 아주 높이 숲으로 날아갔었거든, 그걸 찾겠다고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서 한참을 기다려 보니 자네가 공을 찾았다고 소리를 치기에 그런가보다 했었어. 하긴 그때 200만원이면 제법 큰 돈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돈이네 그려. 괜찮네 친구. 암, 괜찮고 말고.”
“이해해 줘서 정말 고맙네. 이제 좀 편안히 눈을 감을 수가 있겠어.”
“자네가 이렇게 고백을 하니 나도 고백을 하나 해야 속이 풀리겠구먼. 웅이 자네가 기억하는 지는 모르지만 왜 골프를 치고 나서 방현이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다면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우리집으로 가서 포커를 치지 않았나. 기억 나는가?”
“하면 기억하고 말고 내가 골프경기에서 딴 상금 200만원이 그 포커 게임 덕분에 그날 밤에 자네로 고스란히 넘어갔지. 그걸 어떻게 잊겠나. 아주 어제처럼 생생하다네. 허허허. 점백이 자네가 다 따가지 않았나?”
“어험, 그랬지. 그런데 웅이 자네는 내가 무슨 패를 들었는지 기억하는 가. 내가 마지막에 풀하우스를 잡았던 기억이 말일세.”
“기억나고 말고. 그때 판돈이 제법 컸잖은가. 그 받았던 상금을 다 걸었으니 말일세. 난 이미 5구째에 플러시였다고. 같은 색깔이 다 맞았단 말이지. 플러시만 해도 나올 확률이 0.2% 밖에 안되지. 그런 어려운 패를 잡았는데 풀하우스를 잡은 자네에게 진 것이지. 정말 긴장감이 넘치는 게임이었어. 설마 점백이 자네..” 웅이가 침대에 누운 채로 감았던 눈을 떴다.
“그때 사실 나는 K, 두 장과 Q 두 장만 짝을 맞췄다네. 그런데 다른 한 장의 카드는 내가 몰래 가지고 있었네. 사실 난 자네에게 속임수를 썼다네. 미안함세 친구. 내 죽을 죄를 졌네.”
“하하허, 어쩐지 그게 마지막에 맞을리가 없었을덴데 정말 운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네. 괜찮네 친구...괜찮다구. 그렇구먼, 그랬군. 어쩐지 그랬어..허허허.”
“허허, 웅이 자네가 그렇게 괜찮다고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 자네의 고백을 듣고 내 고백을 또 얘기하고 하니 아주 좋구먼.” 점백이 야윈 볼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또 나도 한가지 더 퍼뜩 생각하는게 있네.” 웅이가 눈을 감은채로 말했다.
“뭔가, 친구. 우리가 이제 살아봐야 3개월 정도인데 뭣이든지 용서가 안되겠는가.”
“사실 난 그날 포커 카드게임에서 돈을 점백이 자네가 다 따고 술 한잔 거하게 살 줄 알았는데 전혀 밥도 안사는 자네가 한동안 정말 얄미웠다네. 일부러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자네를 좀 피해다녔지. 그래서 말인데, 한 달인가 지나서 점백이 자네 집 거실 유리창이 왜 깨진 일이 있지 않은가?”
“있지. 어떤 놈이 새벽에 사냥용 총인지 새총인지로 유리집 거실 유리창을 쏴서 유리창이 박살나고 거실바닥엔 쇠구슬이 나 뒹굴었지. 경찰이 와서도 못 찾는다고 고개를 저었지. 이 산간오지에서 찾기 힘들다고 했지. 그땐 지금처럼 CCTV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말일세. 사건이 많아서 힘들다고 하면서 말이야. 설마...웅이 자네 짓이었나?.”
웅이는 말없이 눈을 감은채로 침대에 누운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점백이가 놀라서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설마 그것이 자네 짓이었는가? 그것 때문에 거실 유리창 값으로 고스란히 딴 돈이 다 들어갔다네. 허허. 그게 그랬구먼...가만있자. 그때 손해가 막심했었지. 유리창 교체비로 100만원이 나갔고, 유리가 깨지면서 거실 창쪽에 있던 화분들이 다 깨졌었지. 덕분에 유리창이 깨지면서 가죽소파를 찢어서 그것도 갈았지. 그래서 결국 다 고치고 정리하는데 200만원이 다 들어갔다네 카드 게임에서 딴 돈이 고스란히 들어갔지.허허.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맙네 친구 아 그 짓이 자네였다니 놀라울 따름이군. 그래도....하하하 괜찮네. 친구. 괜찮고 말고 하하 그랬구먼.” 점백이가 이제라도 미스테리가 풀린 것 같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웅이가 고개를 돌려서 점백이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천장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숨겨 왔던 비밀을 말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구먼 허허. 이해해 줘서 고맙네 친구. 우린 이렇게 서로 고백을 하니 천국 입구에서 만날 수 있겠는 걸, 안 그런가 친구. 허허허.” 웅이가 웃었다.
“그래, 웅이 자네 말이 맞아. 아..자네가 이렇게 또 고백을 해 주니 나도 고백을 해야 겠어.” 점백이의 목소리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나왔다.
“아, 잠시만 물을 좀 마셔야겠네.” 앞에 녹차를 들어서 한 모금 들이켰다. “녹차 향이 아주 좋구먼. 쌉쌉한 향이 좋아.”
“또 뭐가 있는가. 어서 말하게나 내가 자네의 집 유리창을 박살 낸 사건도 용서 받았는데 내 뭔들 용서하지 않겠는가 친구.”웅이가 말했다.
“아, 그래 맞아. 난 직감적으로 자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네. 하지만 30년도 넘은 친구를 어찌 의심할 수 있겠나. 하지만 워낙 피해가 커서 참을 수가 없었네. 그 동네에서 혈기 왕성한 것은 우리 둘 밖에 없지 않았나. 그래서 난 처음 자네의 사냥용 총을 의심했었지. 우리집 유리창이 박살나고 한달 즈음 지나서 자네 차에 펑크가 난 적이 있지 않았나? 친구.” 이번엔 점백이가 말했다.
“있었지,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으니까. 그때 장마당에 늦게 나갔지. 설마 그게 점백이 자네 짓이었나.” 웅이도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두 사람은 각자에 침대에 앉은 채로 놀란 눈으로 하고 있었다.
“용서하게나,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자네의 주차장 앞에 대못을 깔아 놨었다네.”
“아, 그건 전혀 몰랐네. 난 그냥 동네 아이들의 장난이라고만 생각했었네. 허허.이제 곧 죽을 텐데 어떻게 미워하겠나. 잘 알겠네. 친구.”
“화가 아직 좀 난 것 같은데 괜찮나 친구.” 남자가 다른 남자를 보고 말했다.
앉아 있는 두 사람 옆에는 붉고 누르스럼한 담요가 밀려있었다. 피부는 거무틱틱하고 바싹 마른 두 노인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한 자세로 서로를 향해서 미소인지 조소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둘 사이를 흐르고 한 남자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괜찮네 점백이, 걱정하지 말게나. 다 용서하네. 자네가 이리도 소상히 말해주니 그때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떠 오르는군. 그 차를 뽑은지 채 두 달인가 밖에 안된 새차였잖나. 그게 내 평생의 꿈의 차였거든. 맞아 현대자동차의 그랜저였었지. 20년도 더 지난 얘기구먼. 덕분에 자동차 타이어의 휠까지 갈아야 했지. 범퍼도 갈았었고. 비용이야 보험 덕분에 50만원 정도 들어갔지만 덕분에 차는 중고차가 되어 버렸지.”
“미안하게 됐네. 친구. 이제라도 말해서 속이 좀 편안해 지는구먼 친구.”
“아냐 자네가 이리도 소상히 과거의 잘못을 밝히는데.. 아 또 기억나는 일이 있네 그러고보니 그 즈음에 자네 새로 산 자전거가 있지 않았나. 엄청 가볍고 좋은 자전거 말일세”
“그때 내가 구입한 로드용 자전거가 있었지. 탄소섬유로 만들어서 꽤 비싸게 주고 산 자전거였어. 한손으로도 들릴 만큼 가벼운 자전거였지. 그건 동네 불량한 아이들이 훔쳐 간 줄 알았는데..설마 자네가?” 점백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허허, 그렇다네. 내 차가 박살나고 나서 난 뭔가 내가 화난 감정을 발산할 곳이 필요했다네. 의심은 가는데 확증은 없고 친구인 자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난 자네의 새 자전거를 노렸었지. 용서하게나. 친구.” 웅이가 말했다.
“허허, 이 친구 이제보니 참 간댕이가 컸구먼. 그 자전거는 어떻게 했나?” 점백이 말했다.
“그건 내가 중고 시장에 팔았네. 차 고치는 비용으로 썼다네.”
“그건 내가 천만원이나 주고 산 것이었는데 도대체 얼마에 팔았나?”
“어이쿠, 그럼 너무 싸게 팔았네 내가 난 그냥 가치를 모르니 인터넷에 삼백만원에 올렸는데 누가 바로 알아보더군. 유명 메이커라고 하면서 서울에서 내려와서 그날 저녁에 사가지고 갔다네. 자네에게 원래 가격을 들으니 너무 아깝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깝구먼. 점백이 자네에게 물어라도 볼 걸 그랬나 싶네. 아무튼 너무 미안하네 친구”
“허허, 그랬구먼. 이제라도 범인을 찾아서 다행일세. 아냐아냐. 괜찮네 친구. 이제 우린 죽어가고 있어. 3개월 후면 딱 90일이지. 그런 젊은날의 혈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그래 그건 나도 자네일 줄 알았어. 그때 내가 휴가로 해외여행을 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 우리집 창고 비밀번호는 자네 밖에 모르거든. 깜쪽같이 사라져서 자넬 것이라고 추측만 했었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자네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네. 허허, 이제라도 알아서 너무 기쁘네 친구.” 점백이 말했다.
“이해해 줘서 고맙네 친구.”
“아니, 자네가 이렇게 말해주니 그간 내 머리속에서 빠진 퍼즐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야. 아주 훌륭해. 아주 근사한 밤일세 친구. 참 그래 여기까지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이제 거의 다 온 느낌일세, 자네 집에 왜 금고가 있었지 않은가?” 점백이 말했다.
“금고의 금붙이가 많았었지. 내가 소시적에 서울 종로에서 금은방을 나까마로 하면서 정리하면서 모은 것들이었지. 하지만, 누가 다 하루 아침에 가지고 갔지 않나. 허허. 다 인생무상이지. 설마 그건 자네가 아닐거야. 그렇지 친구? ” 웅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미안함세, 친구. 그건 내가 한 짓이 맞네.” 점백이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그 안에 금이 얼마나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금인데. 그건 다 어떻게 한건가 친구.”웅이가 점백이를 쏘아보았다.
“서울에서 업자 내려와서 현금으로 1억을 받았지. 그래서 내 집의 빚을 다 갚았어. 자네 덕분일쎄 친구.”
“허허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자넨 약초나 뜯고 했는데 갑자기 자네가 산삼을 발견했다고 해서 어디 좀 구경 좀 하자고 했더니 자네는 이미 서울에서 상인이 내려와서 사가지고 갔다고 했었지.” 웅이가 손바닥으로 허벅지 쪽을 탁 쳤다.
“맞아. 그땐 선의의 거짓말이었다네. 친구. 정말 미안하네 친구.” 점백이 사과했다.
“허허, 그랬구먼. 괜찮네 친구. 그게 내가 아는 시세로는 2억 정도 되는 건데 반 값만 받았다니 좀 아쉽긴 하네. 지금은 금 값이 올라서 한 10억즈음 할 것이었어. 허허허 .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 그럼 나도 한가지 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구먼 친구.”
“뭐 더 고백할 것은 없을텐데 말일세. 그 이후로 난 잃어버린 것도 손해난 것도 전혀 없었다고 친구. 재산상의 손해는 전혀 없었네 그 이후로는. 뭐든지 다 용서하네. 다 용서하고 말고. 뭐든지 말해보게, 친구, 허허허” 점백이가 웃었다.
“재산이 아닐세, 친구.” 웅이가 점백을 보면서 밖에서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재산이 아니면 더 좋지 뭘 그런가.” 점백이 대꾸했다.
“어, 자네 얘인이 있지 않았나 친구” 웅이가 말했다.
“그 오거리 다방 마담 말인가? 그래 서울로 나중에 도망간 얘 하나 있었지.” 순간 점백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놀란 눈으로 웅이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 마담하고 잤다네.” 웅이가 말했다.
“자네가? 아 그럼 그래서...” 점백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네 친구.” 웅이가 말했다.
“몇 번이나 만난 건가 친구”
“면목이 없네. 친구.”
“한 열 번 정도 만난 것인가 친구” 점백이가 재차 물었다.
“허허, 열 번이면 내가 말을 안하지. 사실 백 번은 넘은 것 같네 친구. 내가 세다가 포기했으니까.” 웅이는 솔직하게 인정하듯이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승리의 도취된 듯한 미소가 흘렀다.
“자네 그때 일주일에 두세번씩 야간 낚시를 간 것이 아니었구먼. 어쩐지 자네가 가끔은 잡은 것이라면서 생선을 선물했는데 한번은 아가미에서 가격표가 나와서 아주 놀랐다네. 허허. 그랬구먼. 그랬어.” 점백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얼굴이 좀 붉어졌어. 친구. 화가 단단히 났구먼.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웅이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양을 만들어서 자신의 미안함에 대한 진심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점백의 표정도 살폈다.
“어. 아닐세 이제 곧 우린 생을 마감하는데 뭐 그 정도로 괜찮네 친구” 점백이가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간호원이 들어와서 침대의 이름을 확인하고 두 사람의 팔에 링겔을 꽂았다. 수면제와 진통제가 든 링겔은 밤사이에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목적이다.
웅이는 친구의 얘인과 잤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늘 마음 속에 있던 고백을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서랍함 위에 놓인 녹차가 눈에 들어왔다. 녹차를 들어서 한 모금 마셨다. 말랐던 목에 따스한 녹차가 들어오니 쌉쌉하고 약간 떫은 녹차 특유의 향기가 입안을 감쌌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대충 우리 고백 배틀도 마무리가 되는구먼 친구. 이제 그만 자야지?...” 간호사가 링겔을 놓으면서 취해 준 자세대로 다시 자리에 누운 채로 웅이가 말했다.
“친구 이제 하나 더 남았네.” 점백이가 웅얼거렸다.
“뭐가 또 있는가?” 웅이가 점백이를 쳐다 보았다.
“실은 자네인가 하고 살짝 의심의 기미가 보였다네. 내 얘인의 남자가 자네일 줄은 추측만 했어. 그때 한번은 오 마담이 나랑 자면서 잠꼬대로 자네 이름을 불렀거든.” 점백이가 말했다.
“허허 그런데도 참아 준 것인가. 자넨 진정한 대인배이군. 친구.” 웅이가 천장을 보면서 활짝 웃었다.
“웅이 자네가 내 얘인과 잤다고 솔직히 고백을 했으니 자네도 크게 할 말은 없겠지만 어쨌든 난 그럼에도 자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네.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고 했지. 하지만 이제 이건 말해도 되겠군. 이제 말이야. 난 자네가 내 얘인과 자는 사이에 자네의 아내와 속궁합을 맞추었다네 허허. 정말 미안하네. 뭐 서로 쌤쌤이지 않은가 친구.” 점백이도 누운 자세로 천장을 보면서 말했다. 한쪽 팔에는 링겔 주사가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그랬구먼, 친구, 내 아내랑 했다고. 그건 전혀 몰랐네 이건 전혀 몰랐어. 언제부터 그런건가 친구. 아내도 먼저 갔으니 자네에게 내용을 좀 묻고 싶네 친구.” 웅이는 얼굴이 화끈 달아 올르는 것을 느꼈다.
얘인과 아내는 격이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미쳤다.
“흠. 자네는 당시에 내 정부인 오 마담에게 빠져서 아내에게 아주 소홀했었네. 그건 인정하는가?” 점백이가 살짝 가벼운 추궁을 했다.
“그랬지. 오 마담이 좀 이뻤나. “ 웅이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래, 자네가 낚시를 가고 나서 우리 집사람이 한달 동안 몸이 안 좋아서 시골 친정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네.” 점백이가 말을 이어갔다.
“번개가 번쩍하고 치는 비가 심하게 오는 밤이었어. 천둥 번개가 우리 집 뒤에 산에 떨어졌는지 무슨 포탄이라도 터지는 소리가 울렸지. 내가 술을 한잔 마시고 자는데 놀라서 깰 정도니 얼마나 그 소리가 컸는지 상상이 가는가. 웅이 자네의 아내가 놀라서 전화가 왔더라고. 집에 정전이 되었는데 너무 무섭다고 말일세. 자넨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하면서 말일세. 그날 밤에 우리 집으로 내가 데리고 왔지. 대충 잠바라도 걸쳐서 제수씨를 데리고 왔는데 아 글쎄 말일세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이 다 젖었어. 너무 섹시했다네. 난 그때 집에서 TV를 보면서 혼자서 소주를 2병이나 마시고 막 소파에서 잠이 든 때였었지. 집에 아내는 없고, 거실불이고 뭐고 아예 정전이 되었지. 시골이니 랜턴도 있었고 촛불도 있었지 서둘러서 초를 찾아서 켰어. 안방 침대를 내 주고 주무시라고 했지. 난 그냥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려고 말일세. 자네 아내가 도저히 무서워서 혼자 화장실에 못 가겠다고 하는거야. 너무 깜깜했으니 말일세 내가 초를 들고 입구에 서 있어 주었다네. 허허 그 일은 아직도 생생하구먼. 술은 취했고, 자네 아내는 잠옷이 다 젖어서 속이 다 비추었지. 허허. 그랬었네. 미안하이 친구.” 점백이가 입술에 흐르는 침을 소매로 닦았다.
웅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둘 사이에 어색하게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웅이였다.
“그랬구먼. 그랬어. 어쩐지 아내는 그 이후로 내가 낚시 가는 걸 말리지 않고 좋아하는 눈치였네. 자네였구먼. 하하하, 이건 정말 화가 나는 군. 날 화나게 하다니 아주 대단해 친구. 그렇치만 우린 어차피 다 여길 떠나야 하는데 다 용서하네. 암 다 용서하고 말고. 괜찮네 친구.” 웅이는 말과 달리 병실 침대위에 양반다리로 앉은채로 고개를 떨구고 가로 저었다.
“허허 이 친구는 정말 대인배이군. 대인배야. 자신의 아내와 놀아난 친구도 용서를 해 주고 말일세.” 점백이가 웅이를 쳐다보면 말했다.
“몇 번이나 한 것인가?” 웅이가 점백을 노려보았다.
“허허,아까도 말했지 않나. 자네가 낚시를 갈때마다였다네. 참 좋았었지. 아무튼 너무 자네에게 미안하네. 미안해. ” 점백이가 누운 채로 시선을 천장을 향한 채 말했다.
그리고 점백이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내가 먼저 또 사과를 해야겠군. 그리고 아울러 미리 용서를 받아야겠군. 친구. 이제라도 얘기를 해 줘서 고맙네. 나도 그렇지만 먼저 자네가 내 얘인과 정을 나눈 것은 좀 심했네. 난 그때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었거든. 그 꿈을 자네가 밟은 걸세. 아무튼 내게는 더 결론적으로 잘 되었지만. 아 마지막 고백이야. 친구 잘 듣게. 이게 정말 정말 마지막이야. 더는 말할 것도 없네. 정말 마지막이란 말일세. 그나저나 아까 자네가 마신 녹차에는 독이 들어 있었네. 원래는 내가 마실 계획이었는데, 장난 삼아 자네쪽에 놓은 걸세. 자네의 얘기를 듣다보니 굳이 마시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게 되었네. 미안하네 친구.” 점백이가 무심한 말투로 고백했다.
“그랬군 친구. 괜찮네 친구. 난 이미 자네의 링겔에 독을 탔다네. 나 역시 오늘 자네의 얘인과 동침을 고백을 하고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네. 미리 내가 자원봉사자에게 부탁을 해 둔 것일세.
내가 준 약을 내 링겔병에 좀 넣어달라고 말일세. 자네를 보고 마지막 장난을 하고 싶어졌다네. 그래서 아까 자네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우리 침대 이름표를 내가 바꿨다네. 자네의 고백을 듣고 아까 간호원이 와서 링겔을 달 때 난 굳이 이름표가 바뀐 것을 말하지 않았다네. 이제 약효가 퍼질 시간이군.” 웅이는 점백의 입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 내리는 것을 덤덤하게 보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점백이가 몸을 기울여서 자신의 침대와 친구의 침대를 보니 실제로 서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하하, 괜찮네 친구. 같이 동행을 하게 되는군. 오늘 가나 삼개월 있다가 가나 뭐가 다르겠는가.”
둘의 몸이 점점 떨렸다.
각자의 침대에 앉은 채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던 두 친구들은 각자의 입에서 나오는 피 맛을 느끼고는 조용히 자세를 풀고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두 사람의 눈은 천장 향해 있었다. 그들의 눈은 뜬 상태로 다시 감기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