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데스노트를 판매합니다.
찬주는 그동안 데스노트를 잘 사용했다. 대략 열 명의 인원들을 그렇게 정리시켰다. 이제 슬슬 데스노트를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른한 주말의 오후였다. 찬주는 당근마켓에 데스노트를 판매하겠다는 글을 적었다. 노트의 사진도 찍어서 올리고 가격은 100만 원을 적었다. 더 높은 금액을 적으면 팔리지 않을 것 같았다.
판매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이디 A란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물건 아직 거래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진짜 이름을 적으면 이름을 적힌 사람이 죽는다는 그 데스노트가 맞나요?
네 맞습니다.
어떻게 확인을 해야 하지요?
사진과 이름을 보내주시면 확인시켜 드릴게요.
답답한데 전화로 얘기해도 되나요?
네 가능합니다.
연락처는 010-XXXX-XXXX입니다.
A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니 판매자님 100만 원이면 이게 작은 돈이 아닌데, 샀다가 이게 가짜면 너무 억울해서 어떡하지요?”
“진품이 맞습니다.” 찬주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진품 확인서가 감정서가 있나요?”
“아뇨, 그런 것은 없는데요.”
“그럼, 그냥 10만 원에 거래 안될까요?”
“지금 100만 원짜리를 10만 원에 달라고 하시는 건가요?” 찬주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네.”
“죄송한데 이거 진품이 맞습니다. 데스노트에 무슨 감정서가 있습니까? 감정기관에서 이걸 확인하려면 누군가는 죽여야 하는 데 아무런 개인감정도 없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잖아요. A님이 그런 냉혈한 같은 분이시라면 죄송하지만 거래가 곤란하겠네요.” 찬주가 살짝 흥분했다.
“와, 이게 완전 사기 같은데.... 이렇게 우겨버리시니까 진짜 같네요.” A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였지만 뭔가 찬주에게서 묘한 설득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데스노트에 적어 볼 이름과 사진을 보내시면 확인시켜 드릴게요.” 찬주는 자신이 있었다.
A는 이 노트를 판매하려고 하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짜증을 느꼈다. 이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감정싸움으로 인해서 거래자체가 중단되고 만다. 하지만 이 상품은 지금 A에게 가장 필요한 상품이다.
"실제로 이름을 적었더니 사람이 죽던가요?"
"아니,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시는 건가요? 제가 파는 게 라이브노트도 아니고, 명절날의 스팸세트나 인삼세트도 아니고 데스노트를 팔고 있잖아요. 데스노트의 본질이 뭔가요? 원한이 있는 사람이나 사회의 악인 사람들 한 번에 삭제해 주는 것이잖아요. 신이 우리에게 주신 치트키 같은 거죠. "
"그럼 어쨌든 사용을 하신 것이네요."
"네, 당연히 신상은 아닙니다. 브랜뉴(Brand New)는 아니란 말이죠."
"흠.... 아니, 저도 사람 죽이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인데요.” 남자는 ‘저도’라는 말을 쓰면서 같은 경험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킬러가 직업이란 말씀인가요?” 찬주가 한번 더 확인했다.
“네, 맞아요. 킬러.”
“그럼 이건 A님에게 최고의 상품이네요. 의뢰받으시고 바로 사진이란 이름만 적으면 이제 하루에 열 건도 의뢰를 받겠네요. 대박이네요. 대박.” A에게는 판매하는 남자가 왠지 비아냥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매도자분 말씀대로 이게 데스노트가 맞다면 이제 평생직업이 가능한 것이라고 봐야죠. 하하하.” 킬러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진품 맞습니다. 혹시 이게 진품이 아니라면 저를 작업하시면 되겠네요.” 찬주가 대답했다.
“그래도 됩니까?” 킬러가 은근 협박성으로 말했다.
“그래도 되죠. 거래를 하게 되면 어차피 얼굴도 보게 되고, 당근으로 연락 주시는 것 보면 동네도 이 근처라는 뜻일 테고 당장은 피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주칠 수 있잖아요.” 찬주도 물러서진 않았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요.”
“결정을 해 주세요. 사진과 이름을 보내시든지 그냥 이 금액에 거래를 하시든지 말이죠. 그쪽 주장대로 그쪽분의 실제 직업이 킬러라면 이 노트의 성능을 확인할 대상이 많으시겠네요. 이름과 사진 보내주시면 어차피 작업해야 할 대상이었을 테니 쉽게 처리도 하시고 이 데스노트의 진품여부도 확인도 가능하잖아요.” 찬주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아... 그게요, 이쪽 시장도 경기가 좋지 않으니까 요즘에는 의뢰 자체가 조금 뜸합니다. 즉 지금 당장에는 떠오르는 이름이 없네요.” 남자가 말했다.
“조금이라도 원한이 있었던가 하는 분들이 계시면....” 찬주가 한번 더 캐물었다.
“다 정리하고 나서 이제는 없습니다.”
“대단하시네요. 킬러 양반, 도대체 그 업을 몇 년이나 해 온건가요?”
물론 킬러 양반이라는 단어를 특별히 넣은 것은 찬주의 입장에서 상대를 살짝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 사람에게 팔지 않아도 살 사람은 넘치고 넘칠 터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게 참 데스노트를 판매하시는 분이고 저와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과 차원이 완전 다른 형태이지만 , 어쨌든 같은 경험이 있는 분이고 하니 특별히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이제 막 딱 세 자리 딱 넘었습니다. “
“우와, 100명이 넘었다는 말씀이네요.” 찬주의 입이 놀라서 벌어졌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을 처리했는데 걸리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의뢰받은 것만 그렇지요.”
“의뢰받은 것만 그렇다는 말씀은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 이런 것을 통한 처리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그렇다고 봐야죠.” 킬러의 목소리는 촥 가라앉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처리를 한 건은 많지는 않겠지요?”
“네 아무래도 그렇죠. 정말 살의를 불러일으키던 양야치들이나 무모한 사람들 뭐 그 정도죠. 한 십여 명 되나 봅니다.”
“거래를 떠나서 물어보는데 아니 보통 그렇게 처리를 하면 시체라고 하나요? 아니면 사체라고 하나요? 그런 뒤처리는 보통 어떻게 합니까?”
“인근 야산에 묻죠.”
킬러는 평소 같으면 이런 질문에 화를 내고 끊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화의 상대방은 데스노트를 팔겠다는 사람이었다.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다.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찰떡같은 물건이다. 이제는 은퇴할 이유도 없다. 의뢰받으면 그냥 한 일주일 시장조사를 핑계 삼아서 왔다 갔다 하면서 처리할 대상에 대해서 사진도 찍고 근처에서 아는 척도 하다가 사진과 이름이 확보되면 그냥 노트에 적으면 상대는 끝이 난다. 이 얼마나 최고의 비즈니스 방법이던가.
“시간이 한참 걸리겠군요.” 찬주가 말했다.
“그렇죠. 장소 물색해야 하고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가 새벽에 이동하고 하면 하루가 꼬박 들 때도 있죠.”
“아, 우리 매수자님 얘기를 듣다 보니 가격을 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아뇨 그게 무슨... 아 그냥 그 금액에 살게요. 100만 원에 산다고요.” 급히 킬러가 말했다.
“아뇨, 이게 제 노트 같은 경우는 그냥 얼굴만 알고 이름을 적으면 끝나거든요. 시체를 처리할 일도 없지요. 뒤처리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디 잡힐 일도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너무 싸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찬주도 빠르게 답했다.
“아니, 제가 그래도 솔직히 다 제 삶을 말씀드려서 아시게 된 정보를 가지고 저 노트의 가격을 올린다고 하시니 그건 상도의가 아니지 않을까요? 정 그렇다면 저도 안 살게요.” 킬러도 거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네 안 사셔도 됩니다. 그럼 전화 끊을게요.” 찬주는 통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 순간 스피커폰을 통해서 급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매도자님, 알겠습니다. 진짜가 맞네요. 저 백만 원에 살게요.”
“..............”
찬주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제발 백만 원에 팔아 주세요.” 이제 상대는 아예 애원을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대신 현찰로 들고 나와 주셔야 합니다.” 찬주가 담백한 목소리로 답했다.
“송금해 드리면 안 될까요?” 상대가 한번 더 찬주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런 것은 진짜 송금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의 물건이 진짜가 맞느냐고 확인을 하는 것이다. 찬주는 직업상 이런 행간의 숨겨진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장난합니까? 송금하려면 계좌번호를 부르는 과정에서 제 이름은 당연히 알게 되고 거기에 이 노트드리면서 얼굴을 보게 될 터인데 노트에 제 이름을 쓰게 되면 저는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고 말지 않나요?” 찬주가 쏟아 붙였다.
“아 네네 그럼 현금으로 준비해야겠군요.” 킬러의 목소리가 고분고분해졌다.
집 근처에서 1시간 후에 거래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전화가 끊겼다.
잠시의 시간이 있었다.
전화를 끊고 킬러는 지금의 상황을 비웃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백 건이 넘는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신속하고 완벽히 해 왔다는 사실을 상대는 모르고 있었다.
‘데스노트만 피하면 다냐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100만 원은 무슨 100만 원 노트도 뺏고 돈도 탈취해야겠군.’
하도 쿵하고 비웃었어서 하마터면 콧물이 튀어나올뻔했다.
휴지는 책상 위에 둘둘 말려 있었다.
1시간 후인 오후 7시에 봉천역 5번 출구 앞에 위치한 백다방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킬러는 손목에서 튀어나오는 얇은 독침 3개 정도를 준비했다. 바지 안쪽으로 발목 쪽에 벨트를 차고 단검도 하나 꽂아 두었다. 여차하면 둘 중에 하나는 사용할 생각이었다.
5번 출구에서 내려서 두리번거렸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였다. 조금 어둑해진 거리에는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백다방 코너 모서리 쪽으로 제법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등에는 검정 백팩이 매여 있었다.
찬주는 막 5번 출구를 나온 남자를 바로 알아보았다. 날씬한 체구에 키는 160 정도의 단신이지만 몸은 근육질이었다. 눈이 가늘고 하관은 날렵했다. 100미터는 11초대의 준족일 것이다.
나이는 삼십 대 중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 사이 정도일 테고, 결혼은 막 했거나 이혼했을 것이다. 남자의 바지는 살짝 철이 지난 것이었다.
‘저 사람이군.’
킬러와 찬주가 백다방 모서리에서 서로 목례를 했다. 이제 찬주가 노트를 보여줄 차례였다.
찬주는 백팩에서 노트를 꺼내서 안에 쓰인 이름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검은색과 파란색으로 쓰인 글자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제가 살게요.” 하고 노트를 집으려는 순간에 어떤 남자가 킬러의 팔을 등 뒤로 낚아챘다. 그는 찬주 옆을 지나던 행인들이었다.
킬러는 너무 데스노트에 집중을 하고 있어서 채 제대로 대체하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쉽게 뿌리치고 달아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설의 물건을 보는 순간 킬러도 너무 놀랐다. 검은색 잉크는 아직 처리되지 않는 사람이다. 빨간색은 끝이 난 사람이다.
“이거 진짜 맞죠?” 찬주가 보여준 노트를 보던 킬러의 눈이 동그래졌다.
“잡았습니다.” 형사들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사내의 팔을 굳세게 잡아서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찬주는 얼른 노트를 가방에 다시 넣었다.
잠시 후에 흰색 승합차 크기의 호송차가 가까이 와서 이들을 태웠다. 제일 뒤에 두 명의 형사 사이로 킬러가 양손에 수갑을 찬 채로 앉아 있었다.
앞자리에 두 명의 형사가 또 탔다.
“경장님 요즘 성과가 좋습니다. 킬러를 또 잡으셨네요.”
“녹취록 여기 다 있으니까 뭐 다 불거야. 안 불면 본인만 힘들지 뭐.”
“그 형사님 뭐 하나 좀 물어봅시다. 그 데스노트 정말로 있는 거유, 없는 거유?” 킬러의 관심은 온통 데스노트에 있었다.
“그건 기밀이야 인마.” 말하면서 찬주는 고개를 뒤로 돌려서 양쪽 형사 사이에서 강제 팔짱까지 끼고 수갑 찬 킬러를 반눈으로 돌아보았다.
정찬주 형사는 굳이 말해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이름하고 얼굴만 알면 되는 것 맞죠? 처음 글씨를 쓰면 붉은색이고 상대가 죽으면 검은색으로 바뀌고 맞죠?”
“쟤, 뭐라니?” 찬주 옆에 앉은 형사가 대꾸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킬러는 끝내 이름을 대지 않으려고 엄청 싸웠다고 했다. 찬주의 팀 막내인 담당 형사는 과거 고문 경찰이었다. 다만 그 당시에도 막내로 심부름만 했다는 이유로 아직 경찰 자리를 내 주진 않았다. 하지만 본 것이 있었다. 그는 취조실의 CCTV를 살짝 흐리게 하고는 바로 눈으로 보기만 했던 것들 중에서 하나를 살짝 흉내만 내 보았다.
어차피 상대는 흉악범이었다. 아니 살인마 그 자체였다.
“야, 임먀, 사건에 협조하기 싫어? 최소한 네 이름은 대야 할 것 아니야.” 담당 막내 형사의 목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김. 점. 백.입니다.” 사내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울부짖듯이 흔들리고 흩트려졌다. 고통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재판을 받고 유기한 장소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그는 사형은 면했다. 자신의 숙소에서 사형 면했다고 나름 위안을 삼고 철창을 사이에 두고 잠시 교도관과 얘기를 나누던 그에게 그 순간 심장마비가 찾아왔다.
헉.
이게 뭐야.
누가 심장에 칼을 꽂은 것 같은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헉. 헉. 헉.
같은 시각.
찬주는 거실에서 소주한 병을 꺼내 제육볶음과 혼자 술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옆 소파 위에는 데스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거기엔 이름이 하나 적혀 있었다.
막 쓴 글씨인 듯이 아직 채 잉크가 마르지 않았다.
김. 점. 백.
글씨 하나씩 차례대로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 이제는 정말 팔아야 할 텐데. ’
하루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가끔 하는 소주 한 잔 맛이 이럴 땐 쓰면서도 달콤 쌉쌀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