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재건축을 위해서 뛰어든 H사는 이제 마지막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유명건축회사인 H사의 왕봉렬 부장은 강남 노른자위 땅 이면가에 위치한 김점백 노인의 집으로 찾아왔다. 이 블럭에는 총 스무세대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중에 열 아홉가구와는 이미 계약을 마쳤다. 평당 4천만원 선에서 다들 싸인을 했다. 가구마다 대략 100평 남짓의 땅을 가지고 있어서 현금청산을 원하는 가구에는 40억이란 거금이 주어졌다. 현금청산이 싫은 세대는 조합원으로 편입해서 지어지는 아파트에 이주비까지 현금으로 챙겨주는 좋은 조건이었다.
항상 하는 일이지만 막상 초인종앞에서 서면 긴장되는 것은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왕 부장은 최대한 탁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피하고자 헛기침을 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아, 글쎄. 안 판다니까.”
노인은 오늘도 역시 시퍼렇게 녹슨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왕 부장이 인터폰 통화가 끊길새라 얼른 입을 가져댔다. 아침 출근길에 차 안에서부터 연습한 인사말을 빠르게 말했다.
“어르신, 곧 추석이어서 백화점 선물 좀 챙겨드리러 왔습니다. 안 받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이건 어차피 회사에서 어르신 드리라고 나온 것인데 안 받으시면 제가 챙겨갑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늘도 허탕을 치면 난감한 상황이었다. 왕 부장은 초조한 마음에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그 순간 ‘찌잉’하는 소리와 철제 대문에 붙은 한쪽 출입문이 열렸다. 반가운 마음에 머리부터 들이 밀었다. 왕 부장이 마당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흙에서 나는 올라오는 신선한 풀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당에는 나무와 풀들이 무성했다. 50년 가까이 된 단독주택의 담벼락 쪽에는 매실나무와 살구나무 감나무 등 각종 과실수 나무들이 둘러서 있고
허리까지 오는 잡풀들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행히 잡풀들 사이로 적벽돌이 깔린 부분에는 벽돌사이에 올라온 풀들이 몇 가닥씩만 있을 뿐 밟고 걸을만 했다. 왕 부장은 마당만 보아도 현재 집주인인 노인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집은 미니 2층 양옥집으로 50년 전에는 참 유행하던 형태의 붉은 벽돌집이었다. 붉은 벽돌 위로 담쟁이 넝쿨이 빽빽하게 휘감고 있어서 그건 마치 술래잡기를 하다가 술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녹색 융담요를 뒤집어 쓰고 벽을 향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순간 조금 전에 사무실에서 마주하고 나온 본부장의 모습이 겹쳤다.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방에 들어서니 본부장은 뒷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본부장의 시선은 자신의 방 한쪽 벽에 크게 시야가 확보된 창문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밑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30년이 걸렸네.”
잠시 왕 부장은 본부장 뒤에 서 있었다.
“앉아, 서 있지말고.” 왕부장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면서 앉았다.
본부장은 왕부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 소파뒤에 있던 선물가방 하나를 소파 테이블위에 올려 놓았다.
“이거 H 백화점에서 사온 인삼선물세트야. 다시 가봐.”
“송구스럽습니다.” 왕 부장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왕 부장, 이제 이 집만 계약을 하면 돼. 열 아홉 가구 계약하고 계약금만 50억이 넘어 그거 매달 은행이자 나간다고. 이게 다 회사의 비용이야. 회사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잖아. 이거 되면 보너스에 승진에 알고 있지?”
본부장은 콧구멍까지 힘을 주어서 양 손으로 왕 부장의 손을 꽉 잡았다. 아직도 손이 얼얼한 것 같았다. 왕 부장의 자신의 오른 손을 오리발 모양으로 한번 펴 보았다.
스무 발자국은 넘었다. 숫자를 세다가 까먹었다.
“아니 무슨 선물을 또 들고 왔어. 번번히.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노인의 쉰 목소리가 그를 제일먼저 맞이했다.
노인은 백화점 선물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인 것 같았다. 1층 현관문을 열고 버티고 선 노인의 시선이 왕 부장이 들고 있는 백화점 로고가 새겨진 묵직한 종이 가방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파에까지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가죽이 벗겨진 낡은 소파는 노인의 피부 같았다.
“어르신, 연세도 있으신데 이제 슬슬 정리를 하셔야지 않을까요?”
왕 부장은 노인이 답례로 내어 온 야쿠르트를 빨때로 꽂아 마시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가만있자 내가 올해 여든 두살이지 아마. 하이고 ~ 오래도 살았구먼.”
노인은 돋보기 안경을 벗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안경집에서 안경닦이를 꺼냈다. 눈을 가름히 뜨고는 왕부장을 응시하면서 조용히 닦았다.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왕 부장은 조심히 앉아 있었다.
“글쎄, 그 직책이 뭐라고 했지?”
“왕봉렬 부장입니다. “
“그래, 맞다. 왕 부장. 왕 부장이었어. 나이가 드니 어제 들은 이름도 까 묵어요. 내가 왕 부장 정성을 봐서라도 팔아주고 싶은데 아니 이게 아내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 팔 수가 없어요. 나 죽으면 그때 가지고 가.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어르신이 팔지 않으면 저희 공사가 진행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저희같은 월급쟁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제발 좀 팔아주시면 안될까요? 가격은 섭섭치 않게 쳐 드리겠습니다.” 왕 부장은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나도 팔고 싶지. 그런데 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노인은 말 끝을 길게 끌었다.
협상의 전략상 어르신이 금액을 말해야 본 게임에 진행이 된다. 그런데 왕 부장은 금액 협상은 지금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두 달째 지체되고 있다. 원래는 이 곳 말고도 한 곳이 더 남아 있었는데 지난 달에 그 집은 현금청산을 선택했었다. 차라리 두 집이 남아 있을때는 여유가 있었다. 이제 본부장도 나서서 왕 부장을 압박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어르신” 왕 부장이 재차 물었다.
노인의 입술은 굳게 닫혀서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암튼 안 팔아, 안 판다고.”
왕 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데 이 고집불통의 노인은 절대 안된다고만 하니 가슴 속에서 열불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저 어르신 시원한 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왕 부장에게는 벌떡 일어난 핑계가 필요했다.
노인은 이미 소파에 막 앉아서 자리를 꼬아서 일어나가기 귀찮았는지 주방쪽으로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저기 정수기 있어, 봐봐 보면 옆에 컵도 있어.” 또 말에 리듬을 살짝 두어서 말끝은 살짝 길게 끈다. 왕 부장은 노인의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고객이니 그것도 참아야 했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마루바닥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군데군데 갈라지고 패여 있었다. 값싼 합판의 특징처럼 뾰쪽하게 끝이 일어난 합판 끝들이 손톱 끝의 생채기들 마냥 올라와 있어서 양말을 신었는데도 발바닥에 닿아 까끌거렸다. 컵을 들어서 정수기에 찬물버튼을 눌렀다. 주방 싱크대는 니은자였는데 그 왼쪽 끝에 가스레인지가 있고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오른쪽 끝에는 왕 부장이 서 있는 정수기가 놓여 있었다. 왕 부장의 대각선 방향 가스레인지 바로 옆에는 시멘트로 발린 벽이 있고 그 벽 싱크대쪽으로는 작은 불투명 유리가 반 쯤 껴진 쪽문도 있었다.
“어르신 이쪽으로 문이 하나 있네요. 옛날 집에는 다 이랬죠?”
“그렇지, 보통 그쪽 마당에 장독대를 두고 장도 퍼오고 했으니까.”
왕 부장은 선채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시원했다.
“어르신, 여기는 건축도면하고 좀 틀리네요?”
“어? 여기 주방공간이 너무 작아서 마누라가 좀 넓혀달라고 해서 그냥 넓혔지.”
“신고는 안하시고 하셨나보네요. 저기가 아는 도면하고는 조금 틀리네요.” 이미 다른 가구들의 건축도면을 다 봐 둔터라 대략의 표준 도면으로 지어진 건물의 1층은 눈에 이미 익은 상태였다.
“그게 40년전인데 그 당시는 신고는 무슨 그냥 다 했어. 이 동네가 다. “
왕 부장은 이 순간을 틈이라고 생각했다. 협상을 할때는 항상 상대의 틈을 노려야 한다고 신입사원때 사수가 말했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틈이 있는 법이야, 그 틈이 안 보이면 네가 지는 거지. 네 틈을 이미 상대가 봤다는 뜻이거든. 사수는 현명했었다. 지금은 밀어붙여야 할 타이밍이었다.
“아, 이건 문제가 됩니다. 지금 보시면 이쪽 거실 벽과 여기 주방쪽 벽 마감이 다르잖아요. 다 원목으로 오다가 이쪽에만 시멘트로 마감이 되어 있거든요. 지금 주방 문 옆으로는 이렇게 보시다시피 금이 가 있는 상태이구요. 제가 보기엔 2미터 정도를 확장하신 것 같습니다. 맞지 않나요?” 왕 부장은 금이 가 있는 벽 쪽의 시멘트를 손 끝으로 툭툭쳤다. 이미 위에부터 벌어져서 내려오기 시작한 벽과 벽사이에 겨우 버티고 있는 시멘트 덩어리들이 주방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아니 뭐 하는거야? 당장 나와. 이쪽으로 ” 노인이 고함을 빽 질렀다. 그리고는 왕 부장쪽으로 다가와서는 팔을 잡아서 거실 현관쪽으로 끌었다.
“알았으니까 당장 나가.”
“네? 무슨....”
“당장 나가라고. 당장.” 노인은 히스테리를 부리듯이 입가에 흰 거품을 물면서 소리를 질렀다.
왕 부장은 ‘삐익’하는 쇳소리가 나는 대문소리에 어깨를 움추렸다가 대문이 닫히자 시계를 보았다. 12시 정각이었다. 점심시간에 부동산 사무소에 들리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았다. 골목 사이를 천천히 걸어서 큰 길가로 나갔다. 조금 걸어가니 작은 백반집이 하나 보였다. 오늘의 정식 메뉴를 시키고 밥이 나오자 천천히 식사를 했다. 그의 머리속은 온통 노인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벽을 뜯었을때 그 노인의 히스테리는 조금 지나쳐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차도 한잔 마시고 법인카드로 여유를 부렸다. 중요한 것은 이 노인의 집에서 동의서를 받아가는 것이다. 지금 회사에 일찍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동의서만 받으면 9박 10일 유럽여행을 간다고 해도 보내줄 것이다. 왕 부장은 유럽여행을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노인의 집 근처에서 일부러 간판과 유리창에 해 놓은 썬팅이 제일 낡고 오래 되어 보이는 부동산 사무소를 골랐다. 목표를 정해놓고 준비물을 챙겼다. 인근 약국에 들려서 시원한 박카스를 골라서 한 박스 샀다. 부동산 사무소에 들어서자마자 왕 부장은 박카스 박스부터 뜯었다. “안녕하세요, 의뢰 좀 하려구요. 참,박카스 좀 같이 드시죠. 저도 목이 말라서 사 왔어요. 여기 남은 건 두시고 드시구요.”
허연 머리에 각진 검정뿔테를 쓴 초로의 부동산 소장은 막 들어와서 너스레를 떨고 있는 남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으나 더운 여름에 흰 와이셔츠에 목 끝까지 당겨 맨 넥타이나 그가 들고 들어온 박카스 박스를 보고는 경우가 없지 않은 남자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344-15호 말이죠. 어떤 분이신가요?”
부동산 사무소 소장은 금방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목으로 막 넘어간 시원한 박카스가 그의 말문에 도움을 주었다.
“길가에서 조금 들어간 부지연장집 말하는 거죠. 파란 대문집, 거기 주인을 제가 잘 알지요. 근데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왕 부장이 명함을 내밀었다.
H종합건설사
부장 왕봉렬
010-XXXX-XXXX
“거기 매입작업 좀 도와주세요. 사례는 섭섭잖게 하겠습니다. “
“그 양반 쉽지 않아요. 접촉은 해 봤을 것 아닙니까? 여기 H사에서 작업 다 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아직 거기만 못했구먼요.” 소장이 명함을 한번 집어서 왼손으로 안경대를 잡고는 이마 위 쪽으로 들고는 가는 눈을 하고는 명함을 한번 더 내려다 보았다.
“무슨 사연인지 끝내 안 팔려고 하시네요.” 왕 부장이 본론을 말했다.
소장은 즉답대신에 일어나서 책상위에 있던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담배 태우쇼? ”
왕 부장은 이미 담배를 끊었지만 기꺼이 양 손으로 받았다.
“네, 그럼요.”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담배라도 피워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깟 끊었던 금연의 결심을 고집하다가 회사의 월급이 끊기는 수난을 겪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그만큼 절박했다.
둘 사이의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담배 연기가 가게 안에서 뿌옇게 둘의 사이 만큼이나 불투명한 회색으로 떠 있었다.
소장은 양복입은 사내와 박카스병 그리고 담배의 조합이 맘에 들었다.
“그 파란 대문집 말이요, 사모님이 집을 나갔다고 들었어요. 경찰들이 오고 난리가 났었지. 아마도. 한 사십년도 더 된 얘기요. 그 이후로 아들 하나 있었는데 결혼하고 아버지하고 인연을 끊었다고 들었지, 우린 여기 있으면 별의별 얘기들을 건너건너 들으니까 대충 다 알지. 거기가 부지연장집이라 옛날에는 인기가 별로 없었소, 거긴 혼자서는 개발이 어렵거든. 그래서 앞집인가가 한번 사서 넓히겠다고 덤볐다가 나가 떨어졌지. 협상하자는데 응하지도 않고 가격 얘기까지는 가보지도 못했지. 그냥 무조건 관심이 없고 안 판다고 해서 우리 여기 앞 저기 보이는 부동산에서 중개를 했는데 결국 그 앞집 산 사람은 뒤에 있는 파란 대문집도 계약해 준다는 말을 믿고 계약을 했다보더라고. 한번 계약했는데 취하가 되나 안되지. 그래서 결국 거기 소장이 나서서 손발이 되도록 빌고 ...그런 일이 있었소 아무튼.”라고 말하며 혀를 ‘쯧쯧’하며 찼다.
“아, 사모님은 결국 못 찾았나요?”
“못 찾았지, 당시에 바깥양반이 뭐 그 집 사모랑 많이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결국 집을 나갔다고 했지. 그런데 경찰수사도 다 엉망이야, 그 사람 좀 일찍 죽은 형이 그 당시 검사였어요, 그 당시 검사는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는데, 소문에는 압수수색만 해도 밝혀질거라고 했지, 그런데 현직 검사인 친형 둔 덕분인지 경찰수사하고 한 달인가 지나서 그냥 유야무야 되고 말았지.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소. 내 박카스 한 병 마시고 취했나, 별의별 말을 다하네요 초면에.”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일이 있었군요.”
순간 왕 부장 머리속에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파란대문집의 노인은 아내의 자취가 묻어 있어서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노인은 한번도 실종이라는 단어를 쓴 적도 없었다. 실종한 아내가 무슨 자취가 남아 있겠는가. 그 벽 속에 어쩌면 아내가 있을 터였다. 자신이 우연히 건드린 벽의 갈라진 틈을 만지는 순간 노인이 소스라치게 히스테리같은 반응을 나타낸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렇군요. 한 병 더 드세요.”
왕 부장은 얼른 박스에서 아직 시원한 박카스를 두병 꺼내서 한병은 따서 소장에게 건네고 자신도 마른 목에 시원한 에너지 음료를 부었다.
회사로 복귀하니 본부장의 호출이 왔다. 본부장실 앞에서 노크를 하니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앉아. 왕 부장, 어떻게 됐어?”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시면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역시 하하하 역시 왕부장이야. 알았어 나가봐.”
왕 부장은 그날 저녁 노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왕 부장” 노인의 목소리가 훨씬 밝게 느껴졌다. 아까 소리를 질러서 본인도 미안했을터였다.
“어르신 다름이 아니고 제가 회사에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실수? 무슨 실수?”
“아, 그게....” 일부러 왕 부장은 시간을 끌었다.
“뭐야 무슨 실수를 했는데?”
“실은 어르신 댁에 불법건축물이 있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아니, 그게 뭐야? 당신 뭐야? 아이 참 왜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고 다녀. 당신 그 명예훼손으로 고소할터니 그리알아.”
“어르신 흥분을 가라앉히시구요. 그래서 아마 원상복구나 철거 명령이 나올 겁니다.”
“응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에 들어갑니다. 집달리라고 해서 사람들이 와서 포크레인으로 직접 부수게 됩니다. 강제 집행들어가는거죠. 잘 아시잖아요.”
노인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조용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압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잖아요. 저는 어르신 편이구요. 내일 찾아 뵙고 진행사항 체크해 드리겠습니다. 오전 10시에요.”
이번에는 왕 부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틀날 아침 일찍 노인을 찾았다.
노인은 소파 앉아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자네의 제안은 뭔가?”
“도로에서 많이 들어온 막다른 길에 붙은 부지연장집이지만 큰 도로에 붙은 가구들과 동일한 4천만원으로 제안드립니다. 그리고 불법건축물 수사가 없이 일차 제가 나서서 현장에서 특수 저희 회사 보안팀을 데리고 사장님께 전혀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저에게 전권을 주셔야 합니다.”
“왜 눈을 감아주는건가?”
“눈 감아 드리는 것 아닙니다. 기브앤테이크죠. 저희 회사에서 이 공사가 못 들어가면 저희는 매달 몇 천만원의 이자를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변호사는 사건의뢰를 받으면 의뢰인의 비밀을 철저하게 보장해 드립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차원으로 이해해 주시면 됩니다.”
“경찰에 신고가 안된다고 어떻게 믿지?” 노인이 왕 부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희 특수공사팀이 와서 먼저 깨끗하게 처리를 하고나서 계약을 해 주시면 됩니다. 어르신께서 이대로 잡혀가면 저희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권의 권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잖아요.”
“똑똑한 친구구먼...그렇게 합시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이곳 공사에 동의한다는 싸인만 부탁을 좀 드립니다.”
왕부장이 공사동의서를 내밀었다.
노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공사동의서에 싸인했다.
특수공사팀은 일주일 후 새벽 일찍 투입되었다. 집 앞에는 특수폐기물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특수공사팀이 날아와서 해당 벽을 해체하고 모든 벽돌과 시멘트는 폐기물 처리 신고된 트럭으로 옮겨 실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게 깔끔하게 처리한 다음 해당 철거한 벽은 다시 샌드위치 패널을 세워서 임시가벽으로 마감했다.
모든 철거가 마무리되고 난 다음날 오전에 왕 부장이 다시 노인을 찾았다. 이번에는 본 계약서를 들고 간 것이다. 노인은 계약서에 인감도장을 날인했다. 계약서 날인후 계약금은 바로 노인 통장에 입금되었다. 노인이 악수를 청했다.
“왕 부장, 고맙네. 덕분에 잘 처리되었군”
“제가 할 일인데요. 뭐.”
왕 부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제일 먼저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을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드디어 계약서 도장 찍었습니다.”
“역시, 왕 부장, 자네가 해 낼 줄 알았어. 수고 많았어.”
"다 본부장님 덕분입니다." 앞에 있지도 않은 본부장을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급한 보고 전화를 끊고 보니 막내 딸에게서 문자와 와 있었다.
[ 아빠 , 요즘 피곤해 보이던데 컨디션 괜찮아요? ]
얼른 계약서가 든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답장을 썼다.
[ 아무 문제 없지, 우리 막내 딸 사랑해요. ]
딸에게 문자를 보내고 왕 부장은 막 도착한 택시를 탔다.
회사에 계약부서에 계약서를 제출했다.
이미 본부장은 임원들과 새로운 프로젝트의 축하를 위해서 자리를 비웠다.
왕 부장은 일찍 퇴근을 서둘렀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통닭하나 사서 가족들과 조촐한 기념을 축하할 생각이었다.
또 하나의 어려운 난관을 극복했다.
이제 정년까지는 굳건히 회사를 다닐 수 있을터였다.
물론 제대로 하자면 신고를 하고 해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회사의 프로젝트는 날아간다.
심지어, 흉흉한 터라고 소문이 나서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자신이 재단하지 않아도, 악인들은 벌을 받는다.
살아서 받는 것이 더 좋다.
이 세상에서 벌을 받을 수 있으면 회개할 기회라도 최소한 주어진다.
죽으면 더 잔인한 벌을 받는다.
지하철을 나와서 퇴근길에 횡단보도에 서서 검은 하늘을 내내 바라보았다.
그저 비명으로 사라진 분의 안녕을 비는 수 밖에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