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실은 나 때문에 보이스피싱이 시작되었다.
2024년 10월 10일 (동창회 모임이 있는 날)
올해 서른다섯 살이 된 윤석이는 B 자동차 판매 대리점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성실히 살고 있지만 그의 박봉으로는 아이들 3명을 키우기엔 벅차다.
주말에는 살림에 도움이 되고자 야간 대리운전도 부업으로 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그가 고등학교 때 사귄 단짝으로 고등학교에서 가장 예뻤던 아이였다.
세희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콜센터에서 일했지만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아이들도 훌륭히 잘 키우고 있었다.
부부는 가난했지만 매주 일요일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간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도하고 자신들의 불량한 마음을 씻으려고 얘 쓴다. 그들은 사실 지은 죄도 별로 없었다. 박봉에도 헌금을 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보이면 주머니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 넣기도 했다.
그게 저 아래의 있는 악마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남녀공학이었던 동기들 중에서 윤석의 아내인 세희를 짝사랑해보지 않은 친구는 없었다. 늘 상냥한 미소에 예쁘고 몸매도 좋았다. 친구들의 경쟁을 다 물리치고 결혼한 윤석이는 스스로 행운아라고 늘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다.
수근이가 동기모임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윤석은 한 달 전부터 잡힌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듣고 명함을 많이 준비했다. 아무래도 명함을 많이 뿌리면 그만큼 자동차 영업이 잘 될 확률이 높아진다. 윤석은 새로운 명함까지 새로 팠다.
윤석은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시간이 한 20분 즈음 남기자 식당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모두 12명 즈음 모였다. 제일 나중에 식당으로 들어온 친구는 금수저에 집안도 빵빵한 수근이었다. 세 개의 테이블이 꽉 찼다.
누군가 수근이가 들어오자 한마디 했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나? 그냥 아버지 사업체 나가서 경영수업받고 있지. 아들이 나 하나니까.”
그랬다, 수근의 아버지는 중견회사를 운영하고 있고, 누나와 여동생은 이미 시집가고 이제 아들은 그 혼자였다. 그는 지역에서도 소문난 부자였다.
“수근이가 세희를 좋아했었지?”
“죽자 살자 했지, 결국 세희는 윤석이를 선택했었고.”
“에휴, 수근이랑 살았으면 부잣집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살 텐데, 윤석이는 자동차 영업사원이잖아. 지금 세희는 얼마나 후회를 할까.”
윤석이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자 동기들은 말을 멈췄다. 그가 자리에 앉아 술이 금방 몇 순배 더 돌았다.
취기가 무르익을 때 즈음 누군가 수근에게 물었다.
“차 바꿨다면서? 기왕이면 윤석이한테 차 좀 팔아주지.”
‘차’라는 단어만 들으면 언제나 윤석의 귀를 쫑긋 세워졌다.
하지만 지금 하는 얘기는 친구들이 그를 한 방 먹이는 멘트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약 올리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에이, 그러고 싶었는데 거기는 내가 찾는 모델이 없어서.”라고 수근이는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취했다.
어차피 차는 이미 산 것이고, 친구들이 말하는데 다른 토를 달만한 것도 없었다.
“맞아, 수근이 차는 벤트리잖아.”
일행 중 누군가 뻔한 답을 누군가 했다.
2층 식당 코너의 룸은 외벽이 통유리여서 한눈에 주차장이 보였고 당연히 그 가운데 떡하니 주차된 수근의 신형 승용차가 보였다.
은색 벤트리였다.
그런 화제는 윤석을 불편하게 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가지고 온 명함지갑을 그냥 뒷 주머니에 넣어 두기로 했다.
“아직 담배 피우는 사람 있어?”라고 윤석이 말했다.
친구들은 모두 수근이의 새로운 애인 무용담에 푹 빠져서 있었다. 윤석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냥 혼자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마당에는 절반은 주차장으로 나머지 절반은 시퍼런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 잔디밭 끝으로 등나무로 한껏 멋을 낸 흡연구역이 있었다.
윤석이 한 발자국을 잔디밭에 딛는 순간 소나기가 ‘쏴아’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빗물들이 마치 수도꼭지를 틀려다가 잘못 눌러서 샤워기에서 나오듯이 머리와 얼굴에 튀고, 풀냄새도 확 올라왔다.
순간 윤석은 그냥 여기 처마밑에서 담배를 피울까 하고 망설였지만 이미 내디딘 발 쪽으로 힘을 더 싣기로 했다. 불과 30미터 남짓에 흡연구역이 있었다.
두세 발자국 더 가는 순간이었다.
‘번쩍’ 하고 번개가 쳤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나타난 신사 복장을 한 남자였다.
머리는 하얗고, 슈트는 몸에 딱 맞았다. 흰머리 사이로 붉은 끼가 도는 뿔이 그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하도 나타나서 이젠 식상할 정도였다.
“또 왔어.” 신사가 말했다.
“알고 있어요.”
“선택만 해 봐. 네가 지금 여기서 누구든지 인생을 바꿔서 살고 싶다면 우리가 그렇게 해 줄게.” 그는 윤석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렇지만 어떤 삶인지 알아야죠.” 윤석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건 당연하지만 겉으로 딱 보면 모르나, 오늘 봤잖아. 은색 벤틀리에, 멋진 삶 말이야..”
“무조건 그런 것이 좋았다면 성실하게 살지도 않았겠지요.”
그전부터 온 제안이었다. 다만 윤석은 눈으로 보기 전에는 지금의 소박한 삶을 그냥 원했다. 부대끼고 부족한 대로 서로 위하면서 살아온 삶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수근의 슈트와 근사한 이태리제 소가죽 구두와 은빛 벤트리를 보면서 그의 마음은 흔들렸다.
부의 간극은 너무 커 보였다. 평생 쫓아가도 따라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할래? 바꿔줄까? 말까?”
“만약 한번 바꾸면 다시 되돌릴 수 있나요?”
“그건 안되지.” 신사는 쿨하게 답했다.
“그건 불공평한 계약이죠. 당신은 양쪽 정보를 다 알고 있고, 저는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건 애초 게임이 안 되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하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한 달만 살아보고 결정을 내리면 안 될까요?” 윤석은 작정한 듯 말했다.
“.................” 신사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싶었다.
“자넨 항상 나를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다른 인간들과는 많이 달라. 그래서 난 자네에게 관심이 가나 봐. 그냥 내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는다고나 할까. 아무튼 난 자네의 삶에 관심이 매우 많아. 친구.”
“이렇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제게 관심을 가져주신다니 이상한 일이군요. 아무튼 한 달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난 당신이 말하는 것을 덥석 물만큼 어리석진 않아요. 이렇게 가난하게 살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윤석은 여유롭게 반응했다.
“한 달이면 후회하지 않겠나?.”
“적어도 제가 결정하는데 후회는 없겠죠. 참, 이 한 달은 저만 살아보는 것 맞죠? 제 아내는 그 사이 그냥 혼자 살게 해 달라고요.”
“자네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맞지. 오케이. 그럼 자네의 제안을 윗선에 물어보고 올게.”라고 말하고 신사는 사라졌다. 그동안 무조건 거절한 윤석이 한 달의 맛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니 뭔가 더 진전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윤석은 공중에서 물방울 채로 멈추었던 비가 ‘쏴아’하고 다시 머리와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흡연구역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근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몇몇의 친구들이 2층 테이블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1층 가로등 밑 흡연구역 쪽에 나타난 윤석을 보면서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건 마치 어두운 강당 끝 핀조명이 유일하게 비추는 무대 위에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주변은 컴컴한 데 그 흡연구역 쪽에만 가로등 서너 개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흡연구역 입구에서 비와 조명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잠시 서 있었다.
빗방울이 다소 약해졌기에 굳이 지붕이 있는 흡연구역의 안쪽으로 들어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물방울이 바닥에서 조금 튀더라도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윤석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을 후하고 내뱉었다. 빗물 사이로 연기가 퍼져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빗방울이 다시 멈췄다.
신사가 다시 나타났다.
“오케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네.” 신사는 만면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계약을 원하면 나랑 악수하면 된다네.” 신사가 윤석 쪽으로 손을 들어서 내밀었다.
윤석은 신사와 악수를 했다.
신사와 악수를 한 효과는 윤석이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고, 밤 12시가 되자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아침 7시, 습관처럼 윤석은 눈이 뜨였다.
팀장 주재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습관처럼 눈을 힘없이 떠서는 알람시계를 찾았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대리석 바닥이 안방까지 깔려 있었다. 마호가니 원목침대 위에 하얀 영국산 면으로 된 침대시트에 놀란 그는 자신의 옆에 누운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매끈한 등이 보였다.
연예인 다희였다. 맞아, 수근이의 와이프였지. 순간 윤석은 자신의 소원이 먹힌 것을 알았다.
자신의 팔이 다희의 목을 감고 있었다. 다희가 고개를 돌려서 자신에게 키스를 했다.
순식간에 키스를 당하면서 윤석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웬일이야, 아침부터 키스를 다하고.” 윤석이 얼른 키스를 마치고 한 말이다.
윤석은 친구 수근이에게서 들은 말이 있어서 한 말이었다.
“서프라이즈지. 뭐. 암튼 어제는 코 안 골더라. 그래서 선물이었어.” 다희가 웃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굳이 그의 아내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다희가 일어나서 옷을 입으면서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내 침대에 올라와서 자는 것 불편해. 앞으로 이렇게 하려면 미리 얘기 좀 해 줬으면 해.”
그제야 윤석은 다희와 수근이 각방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자신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냥 한 달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뿐인데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식사 내내 수근의 아내 다희는 신문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둘 사이는 생각보다 냉랭한 것 같았다. 이런 것을 쇼윈도 부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신의 옆에는 아내보다 더 가까이 가정부가 바싹 다가서 있었다. 그가 집을 나서는데 2층에 있던 아내는 나와 보지도 않고 가정부가 앞치마를 한 채 배웅을 해 주었다. 젊디 젊고 매력적인 가정부는 거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키스를 해 주었다.
“햐, 이 놈 봐라. 한 집에서 가정부하고도.”
윤석은 고개를 저었다. 수근의 집무실은 신논현역 2번 출구 쪽에서 걸어서 12층 짜리 건물의 제일 꼭대기에 있었다. 출근하니 비서가 신문을 한 움큼 놓으면서 엉덩이로 교태를 부리면서 나갔다.
회사의 자산은 그가 밖에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회사에는 두 개의 큰 빌딩이 있었다.
빚도 하나도 없이 자산 1천억이었다. 기존에 수근이가 운영하던 회사는 매년 순이익이 50억씩 따박따박 월세처럼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윤석은 집무실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알아서 다 돌아가. 삼촌이 다 잘하고 있어.” 언젠가 친구 수근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회사에 대해서는 신경 쓸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었다.
전화가 울려서 받았다.
“형님, 오늘 점심 약속 장소 보냅니다. 상장사 대표들과 정기모임이에요. 형 회사 근처니까 늦지 말고 오세요. ”
같은 상장사 대표들과 점심시간부터 일인당 10만 원씩이나 하는 정식에 소주가 곁들여졌다. 소주자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고 그는 취했다.
“오늘은 웬일로 어디 가서 한잔 더 하자니까 형님. 2차를 마다하는 거야.” 후배 상장사 대표의 앙탈 같은 말을 뒤로하고 SUV 뒷자리에 탔다.
원래 그의 아내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다.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운전기사에게 말해서 자신이 살던 집을 향했다.
낡은 아파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시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로 향했다.
먼 발취에서 아내를 보았다. 변두리 작은 건물 3층에서 일하는 모습은 옆 건물 옥상에서 다 보였다.
그의 요청대로 아내는 혼자였다. 그는 아내의 1층 맞은편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그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아내가 나오길래 서둘러 따라가서 말을 붙였다.
“저... 혹시.”
아내가 화들짝 놀랐다. 조금 더 수척해 보였다.
“어, 수근이구나.”
아내의 눈에는 자신이 친구 수근이로 보였다. 그리웠던 아내는 그전에는 없던 흰머리가 늘었고, 얼굴은 수척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윤석이가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갈지는 몰랐지.” 조용한 어조였다.
“남편이 간 지 얼마나 되었지?”나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얘들 초등학교 때니까 그게 벌써 한 3년 되었나.”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대단한 놈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나 시나리오 기억들까지 마치 잘 짜다가 실 하나가 터진 양탄자의 구조 패턴을 바꾸듯이 그들은 체계적으로 다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내가 도와줄 방법이 있으면 말해줘. 도움이 되고 싶네.” 윤석은 조금이라도 더 아내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미안해, 수근아. 난 현재 전혀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어. 이 한 잔의 커피면 충분해. 남편이 먼저 갔어도 난 그이와의 추억으로 사는 하루하루가 소중해. 이것이면 충분해. 고마워. 먼저 일어날게”
그녀는 윤석의 말을 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은 채 휙 일어나서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조금 더 아내와 앉아 있고 싶었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외간 남자와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은 불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이 수근이로 보이는 것이니.
아내를 만나고 돌아온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잠들지 못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날 방도가 있다고 했던 과거 속담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그런 좋은 기회가 아닐까.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서 돌아가는 것은 동창회 다음날일까 그날일까. 아니면 한 달이 지난 후 일까.
일단 한 달이 지난 후라면 시간차순이라 일은 간단했다. 그냥 빌딩을 처분하고 그 돈을 지금 슬픔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전달해 주면 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실제 지금의 이 상황은 이 일을 꾸민 작자들이 만든 허상일 뿐이었다.
지금 이런 한 달의 약속을 하면서 이 일을 기획한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윤석은 그것을 파고들기로 했다. 삶의 과정을 점프시키는 것은 절대 그들의 영역이 아닐 것이었다.
윤석의 생각은 거기까지 뻗쳤다.
이젠 모험이었다.
문제는 그냥 돌아갈 때인데 이 때는 자신은 정보만을 가지고 간다.
‘이 기억을 사라지게 할까?’라는 생각은 사실 윤석이 한 달 내내 한 생각이었다. 집요하게 그 생각만을 했다.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항상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틀림없이 살면서 앞으로도 그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후회하면서 살기를 원할 것이었다. 어쩌면 그 부분을 잘 파헤치면 의외의 큰돈을 벌 기회가 있을 것만 같았다.
윤석은 다음날부터 출근하면서 신문을 끼고 살았다. 각종 신문도 보고 미디어도 보았다.
지난 십칠 일간 했던 패턴을 반복했다. 더는 그도 힘들었다. 복습이면 충분해. 더는 필요 없어.
비즈니스데이로 십칠 일간으로 실제 날짜는 3주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났다.
약 24일 동안 그는 경제신문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고 했지만 인터넷도 뒤지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까지 파고 드니 어느 정도 이해가 조금씩 되곤 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유튜브를 찾아서 하루종일 강의를 들었다. 출근하자마자 매일 그는 경제신문을 읽고 커피를 하셨다.
그렇게 약속한 한 달이 흘렀다.
뿔 달린 신사가 나타났다.
“자, 윤석 군, 지금까지 내 제안에서 거의 다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네. 내가 이 얘기를 굳이 하는 것은 자네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네. 어때? 돈이 좋지 않은가. 기존의 가난뱅이로 살 텐가? 지금의 부자로 살 텐가? “
신사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인간은 결국 돈과 권력에는 굴복하는 법이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런 것을 해 주는 것은 자신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윤석이 표정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혹시라도 그의 의도를 신사가 알아차릴까 봐 신경이 쓰였다.
“뭐라고?” 신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좋은 부자의 삶을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난 이해가 되지 않는 군. 자네는 정말 연구대상이야.” 신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사가 윤석을 노려보았다. 윤석은 신사의 시선을 피해 바닥을 쳐다보면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허허, 뭘 그렇게 중얼대는가. 주문이라도 외우는 겐가. 그나저나 지금까지 자넬 이렇게 봐 왔지만 이렇게 긴장한 모습은 처음 보는군. 자네 나한테 뭐 숨기는 것 없나?”
“무슨.” 윤석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하긴 참 나로서는 아쉽게 되었군.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자네의 선택을 존중하겠네. 그럼. ”
그렇게 신사는 오른손을 한번 들어 보이는 시늉만 하고는 번쩍하고 사라졌다.
다음 날 눈을 뜨니 윤석은 다시 돌아와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달력을 보았다.
2024년 10월 11일 (동창회를 마친 다음날 아침)
눈을 떴다. 옆을 돌아서 아내부터 살폈다.
엉덩이 큰 것을 보니 아내 세희였다.
자신은 지난 한 달을 잘 보내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왔군.”
그는 졸린 눈으로 얼른 건넛방 구석에 책상에 앉아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마구 미친 듯이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건 마치 시험을 보기 직전에 외운 커닝페이퍼 같은 암호들이었다.
점심에 반차를 내고 아내와 함께 은행을 찾았다.
“네네, 전세자금대출을 좀 받을게요.”
그렇게 만들어진 종잣돈은 정확히 3억 원이었다.
3억 원의 돈은 그가 사는 종목마다 상한가를 쳤다.
지난 30일간 그는 커닝페이퍼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첫날 3억 원은 다음날이 되자 30%가 올라서 3억 9천만 원이 되었다. 하룻만에 9천만 원이나 벌었다. 다시 그다음 날 산 종목은 30%가 올라서 5억 7백만 원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정확히 17일 날까지 상한가 종목을 다 외우고 돌아왔다.
17일째 상한가를 맞추자 그의 증권계좌 잔고는 199억이 되었다. 오후에 증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일반인 부분 대회 1등입니다. 상금 5억 원을 드릴 터이니 한번 증권사로 방문을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 한번 강의 좀 부탁드립니다.”
그는 그 이후는 외우지 못했다.
떠오려고 기억하고 했으면 했을 것이지만 그는 중단했다. 딱 열일곱 번의 상한가면 충분했다.
아니 그 이상의 돈은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윤석이 세금을 내고 남은 돈 중에서 사업자금을 사용할 돈 50억을 뺀 나머지 돈을 그녀에게 보여주었을 때 세희는 좋아서 길길이 날뛰었다.
윤석은 그냥 세희가 그렇게 돈 걱정이 없이 살 수 있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좋았다.
이런 부부의 행운과 행복한 기운은 저 아래로 전달되었다.
뿔 달린 신사는 호출을 받았다. 땅속 깊은 곳 거대한 동굴의 중앙광장 가운데였다. 그곳엔 무시무시한 대빵이 평지보다 약간 높은 돌의자 위에 앉아서 신사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보기에 넌 또 당했어.” 그의 목소리를 삼중의 울림, 세 겹의 높낮이가 있었다.,
“아, 가서 혼을 내줘야 할까요?”이젠 중고참이 된 신사가 살짝 올려다보고 말했다.
“뭘 혼내줘? 원래 저쪽 소속 사람이야, 우리가 유혹한 것 자체 상호 불가침 약속을 어긴 것인데 너라면 대놓고 내가 뭐 마약이라도 했소 하고 가겠다는 거야?”
“아, 네 그렇군요.” 뿔 달린 신사가 고개를 숙였다.
“우린 이미 저 쪽과 수만 년 전에 상호 젠틀하게 하기로 약속한 것을 잊었어? 박해를 가해서 얻은 게 뭔데. 저쪽의 세만 더 얻게 할 뿐이야. 이미 로마시대에 증명이 되었지. 박해는 전혀 도움이 안돼. 저들에겐 그냥 먹이를 주는 것이라고. 거꾸로 물질적 풍요를 주는 것이 더 저들의 대오를 흐트러 놓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야. 혹시 몰라, 이제 돈이 왕창 들어갔으니 여느 부자들처럼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으니 이제 기다리는 수밖에.” 대빵이 말했다.
“그렇군요.”
“내가 말했잖아. 한국인들은 보통 놈들이 아니라니까. 내가 전에도 그렇게 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을 강조했는데 또 당했어. 또 넌 신입도 아니잖아. 네가 밑에 얘들한테 뭐라고 변명할 거야?” 대빵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직도 가슴에 새길 내용이 공간이 남아 있니? 이미 가슴에 새긴 것들로 알아둬야 할 것들이 넘쳐날 것 같은데. 도저히 내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한 대 좀 맞자. “
대빵의 화염으로 이글거리는 손이 신사의 귓방망이를 향해 풀 스윙을 시작했다.
‘퍽’
뿔 달린 신사가 한 십 미터 정도 나뒹굴었다. 그의 뺨에 문신처럼 붉은 화인의 뺨자국이 선명했다.
‘한국인들은 두고 봐, 내 가만 안 나둘거니까. 감히 나를 속여.’
신사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한국에 보이스피싱이 시작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