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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Oct 01. 2024

이상형

지하세계를 이끄는 6명의 여성 CEO가 정기모임을 가진다. 



6성급 호텔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수준을 말해주었다.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주메이라를 예약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급히 장소를 바꾸었다. 미혜를 포함한 8명의 여자들은 어제 이곳에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왔다. 이번 여행은 막 파리올림픽을 구경하고 이대로 그냥 헤어지는 좀 아쉽다면서 미국 맨하탄의 소호 쇼핑거리까지 돌고 온 참이었다. 


멤버중의 한 명이 위로를 받고 싶은 일이 있거나 골든벨을 치면 모이는 모임이다. 골든벨을 치면 그 친구가 모든 비용을 다 내준다.  


저녁 식사는 일행 중 한명의 최고 VIP룸 전용 다이닝룸에서 하기로 했다. 다이닝룸은 코너가 바다뷰를 보여주고 있어서 한눈에도 쾌적했다. 가운데 파티션 가벽이 있어서 바다뷰가 보이는 쪽에는 다이닝룸에는 직사각형의 대리석 식탁위에 하얀색 자카드 패브릭 식탁보가 깔려 있었다. 테이블은 원래 스무명까지 앉을 수 있는 자리지만 쇼파형 의자를 배치하면서 여덟 명의 자리를 널찍하게 배치했다.


벽으로 둘러싸였지만 한쪽 벽은 바다뷰가 일부 보이는 파티션 가벽의 안쪽에는 라운드 형태의 쇼파가 있고 간이 화장실이 문 입구 옆으로 붙어 있었다. 


지하세계를 이끄는 여성 CEO들의 등장으로 호텔 직원들은 사뭇 긴장하고 있었다. 


여자들 앞에는 은제 포크 4개와 나이프 4개 그리고 티스푼이 놓여 있었다. 

메인 요리는 이미 미쉘이 주문을 해 둔 상태였다. 호텔 직원들은 최대한 여성들을 직접 쳐다보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터라 시선은 늘 바닥을 향했다.  


푸아그라를 곁들인 샐러드가 제일 먼저 테이블에 올라왔다. 

그 다음은 에피타이저로 캐비어와 샥스핀 스프가 나왔고, 트러플 버섯을 곁드린 알래스카산 연어냉채가 입맛을 돋우었다. 접시는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었는데 미혜가 아는 것은 딱 하나였다. 로얄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오벌 접시는 정말 친한 친구의 집들이에 갔을때 미혜가 선물한 것이었다.  


와인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모엣샹동이 나왔다. 다들 술에는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다. 


8명의 여성들은 반바지에 탱크탑부터 정장스타일까지 모두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감이었다. 


“이번 여행도 이것으로 끝이네. 다들 뭐 샀어?” 샤넬의 신상 투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말했다. 그건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복장에서 착안한 투피스 형태의 드레스다.  


“나는 이번에 나온 루이비통 신상을 샀지.”


“아직도 살 것이 남았어?”


“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샀어.”


“너 그것 있잖아. 내가 아는 것만도 10개도 넘는데 또 산거야?”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미혜도 여기에 정회원 멤버였다. 입회비만 100억을 냈다. 입회비는 평생회원이 되는 조건이고, 대신 골든벨을 친 사람이 매년 1등석 항공권을 보내주고 이런 여행을 보내주니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연말에는 푸짐한 선물도 받았다. 작년 겨울에는 회장이 포르쉐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이들은 모두가 전세계에서 모인 세계 최고의 갑부들이지만, 그 어떤 공식적인 집계에도 이들의 정체는 나오지 않았다. 


모임의 회장은 미국의 미쉘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제약회사의 실질적인 오너다. 대학교 재학중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재산을 그냥 물러받았다. 언론에 보도된 재산만 10조가 넘는다. 대부분 위탁관리 중인데 5% 이자로 안정적인 수익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돈을 쓸데가 없어.” 미쉘이 또 한탄을 했다. 


“남자라도 사귀지 그래?” 옆에 있던 미혜가 말을 건넸다. 


“알잖아. 내가 남자를....” 


“그래, 네 취향을 누가 모르겠니. 우리 모두가 비슷한 취향인데 호호호.” 미혜는 미쉘의 어깨를 쳐 가면서 웃었다. 


“캠벨 전 남자 친구 봤던가?” 미쉘이 물었다. 


“난 아직 못 봤는데, 넌 봤어?” 미혜가 답했다.


“진작에 봤지. 둘이 동거할때 놀러도 갔었는데.” 


미쉘이 시계를 보더니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


“그럼 일어나서 얘기해도 되지.” 미혜가 속삭였다.  


미쉘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양팔에 낀 팔꿈치까지 온 흰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답답한 듯이 샤넬 원피스의 제일 윗 단추 하나를 풀렀다. 그리고 와인잔을 들어서 작은 티스푼으로 하고 두번을 쳤다. ‘재엥재엥’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회원 여러분, 오늘 우리 왜 모였는지는 알고들 있지요? 잡담하지 말고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서 한마디씩 돌아가면서 말씀해 주세요. 오늘의 행사를 하는데 여기 계신 분들에게 조언이 되게, 장난치지 말고.저는 제일 마지막에 말할테니까요. 우선 제 맞은쪽부터 말해주면 좋겠어요.” 미쉘의 시선이 자신의 앞쪽에 앉은 하나코를 향했다. 


그녀는 일본 지하경제의 이끄는 재계 몇 손가락안의 유일한 여성 오너였다. 하나코는 반바지에 어깨아래로 가슴이 반쯤 드러난 탱크탑 옷을 입었는데 그녀의 목 아래부터는 이레즈미 문신이 전신을 휘 감고 있어서 마치 원피스를 입은 듯이 착시 효과를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는 남성처럼 뒤를 바싹 깍아 올린 스포츠 머리 타입이었다. 


“요즘보면 항상 내가 먼저 애기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처음 말고 끝에 얘기 좀 하게 해주길 바래. “ 그녀가 맞은 편에 앉은 미쉘을 쳐다보자 미쉘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이상형이라 어디보자....흠, 난 머리가 긴 남자는 별로야. 내가 보는 얘들이 다 그런 타입이라서 그런가. 나 말고도 여기 더 말해줄 사람들 많으니 난 이걸로 패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왼편에 앉은 소피아를 향했다. 소피아는 금발에 옅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난 키가 큰 남자가 좋더라. 같은 값이면....호호호.” 그 말에 다같이 웃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소피아가 턱으로 자신의 왼편을 향했다. 


소피아에 왼편에 앉은 호주에서 온 아멜리아는 가장 어린 나이였다. 이제 막 삼십대 중반을 넘었을 뿐이지만 금발머리한 호주 전통의 백인으로 남자들의 목뼈 킬러라는 별명이 있었다. 실제로 아름다운 그녀를 보다가 목뼈가 나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희고 깨끗한 목은 길었고, 입술은 양귀비꽃처럼 붉고 마치 오일이라도 바른 듯이 윤기가 흘렀다. 


“글쎄, 난 캥거루를 많이 봐서 그런가 활기차고 통통튀는 남자가 좋더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근육질의 허벅지가 탄탄한 남자 정도.”


미혜가 아멜리아의 말에 반응했다. “그래, 그런 걸 말벅지라고 하지.”


그 말에 다들 또 한번 웃음이 터졌다.


다음 여자로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그녀는 아랍의 왕족으로 눈 아래를 가리는 옅은 검정 실루엣 형태의 니캅 베일을 착용하고 있었다. 본인이 발언할 차례가 되었지만 굳이 니캅을 벗지는 않았다. 얇고 투명한 재질의 니캅은 오히려 얼굴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녀의 눈은 흑단색이고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눈썹은 짙고 눈에는 짙은 쌍커플이 있었다. 코는 오똑한 콧날에 입술은 옅은 분홍빛깔로 가름한 얼굴에 딱 어울렸다. 여자는 이름은 자밀라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자밀라가 니캅 아래에서 투명한 입술을 열었다. “저는 낙타같은 남자를 좋아해요. 강인하고 튼튼해서 저 사하라 사막에서도 굳세게 맞설 수 있는 남자 말이죠. 저는 무엇보다 눈썹이 짙은 남자를 선호하죠. 뭐 다른 것을 볼 수도 있지만 눈썹이야 말로 남자의 기질이 보이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랍 여자들이 히잡이나 부르카,니캅 같은 얼굴에 두르는 천으로 눈과 눈썹만 서로 볼 수 있어서 제가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를 보는데 무슨 눈썹이 중요하겠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제일 중요해요.”


미혜는 자밀라를 보면서 아랍 전통의 여성 복장을 하고 나온 모습이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왕에게 천일야화를 들려주었던 세헤라자드 공주가 저런 복장이 아니었을까 하고 순간 상상했다. 자밀라의 글래머스한 옷차림은 시스루 스타일과 만나니 매혹 그 자체 처럼 보였다. 


“이제 그대의 차례에요.” 자밀라가 자신의 앞에 앉은 미혜를 향해 양 손바닥을 모아서 펼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둘은 각별히 친한 사이였다. 


이윽코, 다섯번째 차례가 된 미혜는 좌중을 한번 돌아 보았다. 그녀는 장미꽃 무늬가 수놓아진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착한 남자가 좋아. 다들 그렇지 않아? 온순하고 말 잘듣고 착한 남자 말이야.”


“외모만 보고 어떻게 알아?” 두 사람이 사이에 있는 관계로 미쉘이 테이블 앞으로 고개를 낮추면서 눈을 가늘게 떠서 미혜를 응시했다. 


“에이, 왜 몰라. 암튼 내가 원하는 남자는 깊은 쌍커플을 지니고 있어야 해. 아니면 적어도 맑은 눈망울을 지녀야 한다고.” 미혜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소리없는 미소를 지었다. 


미혜의 왼쪽은 글로리아였다. 그녀는 마치 그리스 여신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반이상 드러난 하얀색 원피스는 육감적인 동시에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까지 대변했다. 


“나는 피부가 보들보들한 남자가 좋더라, 여기에 싱그러운 샴푸냄새까지 나면 최고지.” 


이번에도 미쉘이 대꾸를 해 주었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아니야?”


미쉘의 말이 또 한번 웃음을 가지고 왔다. 다들 입가에서 웃음이 한번 파도쳤다.  


글로리아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캠벨이 앉아 있었다. 흑진주같은 피부는 누구보다도 탄력있고 빛이 났다. 검정 드레스를 입었는데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그리고 긴 다리 덕분에 허벅지까지 올라온 타이트한 검은 원피스는 누구보다도 잘 어울려 보였다.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고 이렇게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은 고마운데 이상형에 대해서 여기 있는 다들 골랐는데 난 안 고르면 안될까? 헤어진지 얼마 안되서 사실 나는 조금 슬프다고...” 캠벨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리면서 양 팔을 벌렸다. 패션 포인트로 착용한 타이티산 최고급 백진주 목걸이는 그녀가 왜 패셔니스타인지 잘 알려주고 있었다.   


“오케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되었으니 빼줄께. 대신 식사할때는 뒤로 빼면 안돼. 알겠지?”


캠벨이 대답대신 혀를 내밀어서 치아로 깨물면서 장난끼어린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녀의 행동에 맞춰서 목에서 진주 목걸이도 찰랑거렸다. 그건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때 선물이기도 했기에 오늘 같은 날은 각별히 잘 어울린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캠벨이 난감해 하는 표정을 보면서 모임의 회장인 미쉘이 말을 이어받았다. 


“뭐 한명만 빼고 다 서로의 이상형을 들으니 좋네, 캠벨의 이상형이야 안들어봐도 우리가 잘 아니까. 강아지상을 특히 좋아하지. 참 내 이상형은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야. 오늘 같은 캠벨 생일에는 그 남자로 부터 생일축하 노래라도 듣고 싶네. 그래, 잘 들었고 오늘을 위해서 다같이 건배 한 번 하자고. 치어스.”


여성들이 모두 앞에 놓인 모엣샹똥 스파클린 와인을 손 끝으로 들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룸안에 퍼졌다. “치어스"


VIP 여성들의 이야기들은 호텔 직원에 의해서 모두 메모되었다. 고객의 취향을 최대한 적극 반영하는 것은 6성급인 이 호텔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전채 요리들이 더 나왔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서 메인요리가 나오기까지 시간은 1시간이 더 걸렸다.  


이윽코 기다리던 메인 음식이 나왔다. 랑그르 치즈에 스페셜 스테이크와 별도의 고기를 먹을 때 입맛을 돋우기 위한 레드 와인이었다. 


머리에 얼굴 길이보다 긴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쓴 호텔 주방장이 서빙하는 직원들과 같이 방에 들어섰다. 웨이터들이 여성들의 테이블 앞에 하나씩 음식을 놓는 사이에 테이블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설명했다. 


“저희 호텔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이 호텔의 메인 쉐프 아마모토입니다.” 주방장이 목소리를 높이자 여성들의 시선이 주방장을 향했다. 


여성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주방장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 드시는 음식은 최대한 여러분들의 이상형을 반영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아주 허벅지가 말벅지라고 불릴 정도로 튼튼한 청년이었습니다.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소유자였습니다. 눈가에 깊은 쌍커플이 있었고, 아주 착하고 성실했으며 노래도 곧잘 부르곤 했지요. 무엇보다도 강아지상이었습니다. 아 참 머리는 요리전에 짧게 깍게 했습니다. 카페인 샴푸로 위생적으로 목욕도 시켰습니다. 마지막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메인요리에 올라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희 호텔은 고객의 만족이 최고이니까요. 협조해 주신 캠벨에게 이 모든 수고와 영광을 돌립니다. 일부 아시는 분들도 있지만 바쁘셔서 만나지 못했던 분들은 각 쟁반 밑에 QR코드를 찍으시면 어떤 고기를 드시는 지 잘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아무쪼록 이곳에서 아주 즐겁고 행복한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가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방장의 손짓에 비로소 바하의 음악이 양쪽 귀퉁에 놓인 거대한 진공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악이 나오자마자 주방장은 목례를 했으나, 테이블에 앉은 여인들의 허기진 손짓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면서도 고개를 두어번 가로 저으면서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미혜가 자신에 앞에 앉아 있는 자밀라에게 입모양을 활용해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남자친구가?”


“야, 몰라서 물어? 바람 말고 뭐가 있겠어? 그것도 둘도 없는 절친이었나 봐.”


“아....” 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음악소리가 커서 둘의 대화는 캠벨에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캠벨이 모른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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