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The life of lines, 2024>
주말에 오랜 친구와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법고를 치는 스님이었다. 둥둥 울림을 느끼며 혼신을 다해 법고를 치는 스님의 등과 그 뒤로 반짝이는 야경을 보는데 그 감각들의 합이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웠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북의 소리도, 채로 가장자리를 칠 때 나는 신기한 소리도, 그것들이 합해져 계속해서 바뀌는 크기와 리듬도 좋았지만 제일 웃겼던 건 스님이 한바탕 치시고 에휴하고 한숨을 쉬실 때였다. 드디어 오늘도 하루 일과가 끝났구나 하는 한숨이었으려나.
이후 범종을 두 번씩 직접 칠 수 있었는데 종소리가 아래로도 퍼져 고통받는 영혼도 도울 수 있다며 소리에 실어보낼 소원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의 소원은 보통 성취(~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나 나에게 안녕을 가져다줄 존재의 등장(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소원을 빌었다.
세상에 따뜻함과 뿌듯함이 널리 퍼지길.
내 안에도 벅차도록 따뜻한 마음이, 따뜻함을 잃지 않은 뿌듯함이 번지길.
고통 앞에서 맞잡은 손이 늘어나길.
절에서 올해를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조금 무거운 얘기가 될 것 같지만 한 달 전 우리 학교 아이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료 선생님들과 조문을 다녀왔는데 모니터에 사진으로 비친 아이의 모습이 너무 앳되고 어렸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선택을 한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묻고 싶지만 더 이상 물을 수 없다는 게 힘겨웠다. 아이를 알던 친구들도, 다른 동료 선생님들도, 아이의 부모님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미안함과 속상함이 섞인 그리움, 안타까움. 아이가 편했으면 좋겠다. 좋은 곳에 갔으면 좋겠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고, 사별은 삶에 따라오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자, 다른 사람과 관계맺고 유대감을 느끼려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일부'(애도상담, Stephen J. Freeman, 2019)라고 한다. 나의 아픔은 너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렇기에 이 연결이 좀 더 네게 도움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 누구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누구는 그치, 나도 그런 생각들어, 그런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지라고 말했다. 둘은 다른 형태지만 위로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같은 말이다. 위로받은 나는 힘들어하는 아이의 친구들을 위로한다. 그렇게 삶의 순간을 함께 헤쳐나간다.
나의 세상은 무엇으로 구축되고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할 때 분명한 단 한 가지는 결코 맥락없이, 배경없이, 다른 존재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슬픔을 겪을지라도 나는 더 큰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다. 그 넓은 세상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고 싶다. 내가 이루고 세상에 기여할 것이 다른 이를 고려한 것이었으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한다. 내가 얻는 것이 다른 이의 슬픔과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만물은 원소, 분자, 원자 등과 같은 요소로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만, 덩이는 그러한 요소로 환원되지 않는다. (...) 구리 한 덩어리와 주석 한 덩어리를 예로 들어보자. 구리는 구리이고 주석은 주석이다. 두 덩어리가 서로에게 직접 접근할 방법은 내부에서 만나 융합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의 관계는 그 즉시 새로운 덩어리인 청동을 구성하게 되고, 그 자체의 환원 불가능하고 불가해한 본질을 갖는다. 이는 아마 너와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다면 그 관계는 너도 나도 아닌 새로운 어떤 존재를 만들지 않는가.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 제각기 자신의 무언가를 산출하지 않는가. (...) 사물은 그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객체에 불과할 것이다. 어쨌건 사물의 관건은 그것이 발생한다는 것, 즉 선을 따라 계속해서 나아간다는데 있다. (...) 생명은 서로의 내면에서 만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정서의 분위기에 잠겨 각자의 길로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다. 생명은 자신을 스스로 매듭으로 묶을 수 있다(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 팀 잉골드,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