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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리스의 상상력

어떤 도박이든 당사자들만 합의하면 인정

by 기록

제목인 카케구루이는 도박광으로 해석한다고 합니다. 賭ける (카케루)는 내기, 狂う (쿠루우)는 미치다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남태의 로컬디스크 블로그 참고)

도박과 관련된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우선 영화에서는 타짜 시리즈나 신의 한 수 시리즈가 호평을 받아 본편 이후 속편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많은 패러디물로 이어집니다. 애니나 만화 중에서는 도박 묵시록 카이지, 타짜, 카케구루이 등이 있습니다. 두 작품도 본편 이후 속편이 나와 인기가 있고 시장성도 충족시켰음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들 작품들을 즐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저는 인생을 바꿀 만큼의 큰 보상.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론, 주인공 버프도 있지만 주인공이 져서 바닥부터 시작하는 경우 기대했던 결과가 깨지는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로 즐거움이 생긴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가 도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도박 관련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탐사보도 세븐, 인터넷 게시물 '강원랜드의 무서움' 참조

위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된 사진 자료 중 일부입니다.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노래하는 경찰이던 주인공이 도박에 빠져 목숨까지 끊으려 했습니다. 통장에는 58원 밖에 없어 스스로 인생이 비참하다며 자신을 성찰합니다. 이 분이 사는 곳은 강원랜드 주변에 도박으로 전재산을 날린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이며 끼니를 해결할 돈이 없기에 매주 3번씩 오는 무료 도시락을 받아서 생활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2개 받아서 나눠 먹고 오면 또 받고 그렇게 버틴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굶어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며 죽은 자리를 보여줍니다. 지금 시대에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과거 바카라로 천만 원을 딴 행복함을 잊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이 마을에 산다고 합니다.

이렇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어가는' 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옷을 입고 어디론가 가십니다. 딸이 용돈으로 30만 원을 보내줘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시 원점입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생활로 다시 돌아가서 삶을 이어가십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극도의 배고픔과 끝내 죽음까지 맞이하면서도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해를 입히지 않은 것을 보면 도박이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문제에 빠진 것을 빼면 선량하신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애니에 대한 글은 여러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어서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문학을 감상하는 관점. 독서의 관점에서 이 애니를 접근해 봤으면 합니다. 문학이라고 하면 개인이 전달 의식을 가지고 삶의 한 단면을 선택하여 보이지 않는 어떤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모습을 갖도록 하는 것(=형상화)이라고 봅니다. 이 작품에서는 도박에 빠진 한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런데 빠졌다고 봐야 할지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는 도박하시는 분들과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 애니의 주인공 자바미는 도박이라면 가슴 떨려하는 모습에서는 일반적으로 도박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과 다르게 도박에 가슴 떨려하면서도 주변의 사소한 변화들을 모두 활용하고 심리전을 펼치면서 흥분하는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함께 가져갑니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이야기에 몰입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봅니다.


자바미는 도박이 주는 쾌감을 위해서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는 여자입니다. 이런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위에서 제시한 강원랜드 주변에서 일어한 실제 사례를 떠올리시면 될 듯합니다. 누구나 친구와 간단한 내기를 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거는 것은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 정도 감내할 수 있는 내기(도박 유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큰 10만 원 정도의 내기를 하면 내기 비용을 내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애니에서는 일반인들이 경험해 보지 않은 신체의 일부를 걸고 목숨을 걸며 내기를 합니다. 내가 경험했던 영역에서 겪어봤던 감정의 기억이 상상력을 통하여 경험해 보지 않은 도박 사례로 이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여고생이 몸을 걸고, 신체를 걸고, 목숨을 거는 등 다소(?) 애니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이란 것은 현실에 대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표현하는 것이고 사회에서는 이런 문학의 존재 방식을 인정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강원랜드에서 도박으로 인해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어 굶어서 돌아가신 분들과 애니 속에 신체를 걸고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문학적 표현(형상화)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사람은 그러한 정보를 카케구루이, 도박 묵시록 카이지를 보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상상력으로 나의 경험과 연결하고 작품에 빠져들고 공감하고 재미를 느낀다고 봅니다.


도박 묵시록 카이지는 카케구루이처럼 예쁜 그림도 아니고 예쁜 여학생 멋진 남학생들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도박에 빠진 일반 사람들이 나오기에 더욱더 현실감이 드러나고 심리전 중에 특유의 고민하는 표정과 패했을 때 절망하는 표정이 과장되게 나와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카게구루이도 도박만화의 특유 표정 묘사가 있습니다. 큰 판돈을 둔 결정적 도박 순간에는 마치 여주인공이 성적 흥분을 하는 것과 유사한 표정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도박이 성사되지 않았을 때는 너무나도 실망하는 표정으로 포기한 사람에게 경멸의 표정을 보입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억지스러운 표정이지만 보는 이에게 재미와 긴장감을 주는 꼭 필요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도박하는 모습을 즐겁게 보는 독자(영상 시청을 포함한 개념)의 마음은 어떠한 작용이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는 도박빚을 진 사람들을 높은 두 구조물 사이 좁은 길을 만들어 두고 반대편에서 유리문으로 거부들이 그 길을 누가 건너오는지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내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타인의 목숨을 건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리 만족(동일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카케구루이, 도박묵시록 카이지, 타짜, 신의 한 수와 같은 작품들을 보는 것도 떨어지면 죽는 외길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와 유사한 작용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이 이러한 작품을 감상하는 상상력으로 잠시나마 해방되는 과정의 작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규범이란 억압을 깨고 몸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일상에 맞추더라도 정신만은 자유롭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찾고 범죄인 도박과 현재 일상을 뒤엎어 버릴 만큼 큰 보상이 있는 도박을 다루는 작품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카케구루이는 특수한 고등학교를 설정하여 이뤄지는 작품이기에 이 작품을 다른 친구들에게 어떤지 물었을 때 현실성이 떨어져서 몰입이 조금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처음부터 너무 도박의 현실적 성격이 커서 부담스럽고 불편한 작품보다는 일탈의 간접경험을 위한 시작 작품으로 감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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