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에서 커닝한 사람 접니다

by 이은설

면접장에서 커닝한 사람, 접니다

“면접 커닝 들어보셨어요?”

이렇게 질문하면 고개를 갸웃하겠지요. 커닝이라 하면 학교 시험에서나 하는 짓이지, 엄숙하고 긴장된 면접장에서 무슨 커닝이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 그 면접장에서 아주 당당하게 커닝을 했습니다. 그것도 두 눈 뜨고, 면접관도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영 시니어 인플루언서 최종 면접 6월 27일 금요일 15시 30분 아래 장소로 15시 10분까지 오시기 바랍니다.” 문자를 받고 멍했습니다. “어라? 내가 뭘 했더라?” ‘서울시 시정 홍보 어쩌고’라고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났지만, 솔직히 뭘 하려 했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서류 통과했다고 하니 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면접장은 5호선 광화문역 근처,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35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싶어 넉넉히 나섰습니다. 지도를 켜고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면접이람….’ ‘나이가 뭐라고 하면 되지.’ 두 마음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마음은 서로 다투었지만, 발은 면접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근처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어서 크게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마당이 넓고 5층 높이 정도의 건물 꼭대기에 ‘동그라미 재단’이라고 간판이 있었습니다. 입구와 문에 동그라미 재단 글씨가 있었습니다.

2층 면접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2시부터 면접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면접은 3시 30분부터였지만 제가 도착한 시간은 3시, 스텝 한 사람이 이름을 받고 명찰을 주었습니다.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지원자가 제법 많아 보였습니다. 오른쪽에 작은 강의장이 있었는데 책상과 의자가 있었습니다. 가방에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2차 합격 통지는 받았지만, 동그라미 재단이 어떤 곳인지 뭘 하는 곳인지 내가 할 일이 뭔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면접관이 나에게 무엇을 물을지도 궁금했습니다. 챗GPT에게 물었습니다. “구 안철수 재단이며, 공정한 기회를 만들고 변화를 실험하고 혁신을 키우는 곳”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대충 외우고 이념 정도만 머릿속에 넣은 채 재단의 로고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먼저 나온 사람에게 뭘 묻더냐고 물었습니다. 어렵지 않으니 쉽게 하면 된다고만 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냥 하지 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시간이 되어 면접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면접관 세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40대 정도의 나이로 짐작되었습니다. 체격은 세 분이 비슷했지만, 피부색은 맨 앞에 앉은 분이 제일 검었습니다. 얼굴은 검었지만, 미소를 띤 얼굴이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앉은 분이 얼굴이 흰 편인데 차분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세 분 면접관 모두 표정은 온화했습니다. 다들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셔서 조금은 긴장이 풀렸습니다. 면접자도 세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다섯 명인데 두 사람이 불참했습니다.

저는 네 번째 자리에 앉았고, 양쪽에는 중년의 아저씨 두 분이 있었습니다. 면접관이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서울시 정책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왼쪽 아저씨가 먼저 대답했습니다. “저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퇴직했고요, 지금도 OO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매일 서울시에서 메일도 받고요. 서울시 정책에 대해서는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면접관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어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서울시 정책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2017년에 서울로 왔고, 서울 시민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상반된 대답을 들은 면접관들의 얼굴이 동시에 살짝 올라갔습니다. 웃음인지 당황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는 겁니다. 확실히 ‘정직은 최고의 전략’이 맞긴 맞나 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정을 어떻게 홍보하시겠습니까?”

저는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지금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데, 유튜브를 배워서 함께 브랜딩 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오른쪽 아저씨가 “블로그, 인스타, 밴드로 열심히 홍보할 생각입니다.” 하시더군요. 그 순간, 저도 얼른 덧붙였습니다. “아, 맞다! 저도 밴드 있습니다.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그 말에 면접관 세 분이 모두 웃었습니다. 오른쪽 아저씨는 9988 손목 닥터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하루 200원씩 모으고 걷기 운동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손목닥터 9988을 사용합니다. 남산 걷기 챌린지를 갔다가 사진이 아까워서 포스팅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당일 행사는 잘 진행되었는데, 사후관리가 조금만 더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면접관들이 또 웃으셨습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유쾌한 면접’ 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면접 자리는 대답 잘하려고 고민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괜히 긴장해서 헛소리도 하게 되는데요. 저는 옆에 앉은 두 아저씨 덕분에 말문이 트였습니다. 옆에서 하는 말 듣고 살짝살짝 내 말 보태는 그야말로 ‘커닝 면접’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 세 분이 일어나서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면접을 한 게 아니라. 동그라미 재단 담당자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이 면접은 제 책 《나는 꿈을 이루는 요양보호사입니다》가 가장 큰 무기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손에 명함은 없었지만, 책 한 권이 저의 존재를 대변해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책이 곧 나올 예정이고, 아침마당 출연이 제 꿈입니다.” 보통 ‘자신감을 가져라’, ‘당당해져라’라고 말들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책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모두가 저만의 무기였습니다. 자이언트에서 하는 ‘서평 쓰는 독서모임’ ‘천무’에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발표한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당당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그 무기는 책이고, 글이고, 달리기 기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무기를 가지고 계신가요?

합격 여부에 연연하지 않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말을 할 때도 더 자유로웠습니다. 서울시가 이런 활동을 통해 시니어의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합격해도 좋고, 떨어져도 괜찮습니다. 오늘 저는 면접장에서 커닝도 했고, 웃음도 얻었고, 제 무기가 무엇인지 더 뚜렷이 확인하고 왔습니다. 가방에는 책이 있었고, 마음속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또 하면 되지.’ 이 말처럼, 저는 계속 또 해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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